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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광석 Aug 18. 2023

하양나비

이유를 모르는 울음,   별의 작은 반짝거림은 달이 없음을 잊게 했다. 

 아들이 시골에 오두막을 하나 준비했다. 손자들이 자라나니 자연과 접하는 기회를 주고 싶어서란다. 강원도 양양군 현남면으로 우리나라 젊은이들이 서핑을 하기 시작한 후부터 각광을 받고 있는 곳이다. 바다에서 걸어 10분 정도의 아담한 산 아래 정남향집이다. 마당에는 오래 손을 보지 않아 손톱보다 작은 들꽃들이 많이 피어 있다. 주름잎나물, 민들레, 별꽃, 털별꽃아재비, 달개비 등 귀여운 야생화들이 앙증스럽게 옹기종기 모여 있다. 아주 작은 부전나비가 꽃 속에 머리를 박고, 초가을이라 그런지 하양 나비가 나풀거리며 하늘 높이 위태롭게 날아오른다. 45년을 같이 살아온 아내와 함께 며칠 묵었다. 어느 별이 많은 날 밤 꿈 이야기다. 

  

 삶은 밤이나 장작불에 구운 고구마를 가끔 주신다는 옆집 할머니가 돌담 너머로 아내와 이야기를 나눈다. 해변에서 서핑을 하던 젊은이가 사고로 죽었다는 얘기다. 너무 안 됐다고 자기 피붙이가 죽은 양 안타까워한다. 꿈이라 그렇겠지만, 여기 오두막에는 와 본 적도 없는 딸과 일곱 살 외손자가 뜬금없이 나타나 그 이야기를 듣고 있다. 아직 학교도 안 간 어린아이가 울기 시작한다. 외손자가 지 엄마에게 가보자고 한다. 빠른 걸음으로 칠팔 분이면 갈 수 있는 거리이니 못 가볼 것도 없다. 딸아이는 죽음의 현장을 아이에게 보여주고 싶지 않은가 보다.  “벌써 병원으로 갔을 거야! 가지 말자” 고 타이른다. 그래도 손자는 가보자고 조르기를 멈추지 않는다. 난감해진 딸아이가 나를 뒤돌아본다. 도움을 요청하는 눈치이다. 내가 나서서, 죽는다는 것은 우리와 같이 있던 사람이 우리를 영영 떠나는 일이며, 죽음은 무서운 이별이라고 설명을 했다. 엄마는 네가 무서워할까 걱정이 되어 가지 말자고 하는 거라고. 처음에는 이야기를 알아듣는 듯하더니, 내가 너무 무서운 얘기를 했는지 울음보가 터져버렸다. 처음보다 더 크게 엉엉 소리 내어 온 동네가 떠나갈 듯이 울어 젖힌다.  땅이 꺼지고, 하늘이 쪼개지도록 눈물을 줄줄 흘리며 목에 핏줄이 서도록 서럽게 통곡을 한다. 왜 저리 슬피 우는 걸까? 이별은 저리도 슬픈 일인가? 내가 다 눈물이 나려 한다. 상관없는 사람일지라도 그 누군가의 죽음이라는 이야기를 처음 접한 어린아이의 여린 감성일까? 무서움일까? 저 어린것이 저토록 슬피 우는 건 무슨 연유일까? 꿈이다. 시계를 보니 두 시 반, 한밤중이다. 나는 누운 채로 생각에 잠겼다.
 
 초등학교 일 학년 겨울방학 때에 어머니가 돌아가셨다. 나이는 어리지만 다섯 살과 두 살의 동생을 둔 장남이었다.  맏이었기에 상주로서의 역할을 해야 했다. 너무 많이 울어도 안 되고, 너무 울지 않아도 안 되는 상주가 되었다. 굴건을 쓰고 상복을 입은 어린 상주가 오동나무 지팡이를 짚고 한겨울의 한파에 펄럭이는 상여 뒤를 따랐다. 적당히 곡도하고 적당히 바람을 피하기도 하며. 지금 생각해도 어머니의 장례를 일곱 살 외상주는 혼자서 기특하고 대견할 만큼 잘 마쳤다.  그러나 슬퍼서 통곡을 하는 울음을 울어 본 적이 없다. 어머니가 돌아가셨다는데 어찌 눈물이 안 나겠는가!  내 기억에는 그리 슬피 운 기억이 없다. 울어야 할 이유가 충분함에도 슬픈 울음이 없었다.
 
 지금도 이해하지 못하는 울음이 하나 있다. 내가 초등학교를 다닐 때는 4월이 신학기였고, 국민학교라 불렀다. 무 장다리 꽃 위로 누구의 영혼일지 모르는 하양 나비가 나풀거리는 삼월 하순이었다. 종업식을 마치고, 봄방학이 시작되는 날이었다. 일 학년에서 이 학년으로 올라가는 데, 담임선생님이 새 선생님으로 바뀌게 된 것이다. 그 얘기를 할머니가 차려 주시는 점심을 먹으며 밥상머리의 할머니께 말씀드렸다. 할머니께서 “어이구~~!! 그래서 우리 손자가 이렇게 기운이 없구나!!”하고 역성을 든다. 억눌려왔던 울음 샘을 건드린 것일까? 할머니의 따뜻한 역성 한마디에 그만 울음보가 터져 버린 것이다. 조금 전 꿈속에서 울어 젖히는 저 일곱 살 손자가 우는 듯한 울음을 터뜨린 것이다. 할머니가 난감해서 어쩔 줄을 몰라하시던 모습이 지금도 생생하다. 울어야 할 이유가 분명하지 않음에도, 너무나 슬프게 울었던 기억이 아직 지워지지 않는다. 
 
 학교를 다니면서 만난 첫 번째 담임선생님, 지금도 잊히지 않는 이름 이희지 선생님, 오십 대 후반쯤 되었던 여자 선생님이었다. 돌아가신 우리 어머니보다 훨씬 나이가 많았다. 그런데 왜 그리도 선생님과의 이별이 슬펐을까? 나는 아직도 그 울음을 이해할 수가 없다. 연유를 모른다. 남달리 예뻐하여 주시지도 않았고, 공부를 잘한 것도 아니었다. 특별한 기억이 없는 선생님이셨다. 엄마와의 영원한 이별의 장례식 때에도 그렇게 크게 울지 않았던 울음이 왜 그날 터졌던 것인지 그 이유를 아직도 모른다. 어머니와의 이별과 선생님과의 이별에는 두어 달의 시차가 있다. 어머니가 1월에 돌아가셨고, 3월에 담임선생님과 헤어졌으니 말이다. 


 그 두 달 동안에, 죽음이라는 이별의 의미를 알게 되었던 것일까? 선생님과의 이별을 통하여, 엄마와의 이별의 슬픔을 확연히 이해하고 실감하였을까? 그리하여 울음보가 터졌던 것일까? 난생처음으로 슬프게 울었던 봄날의 기억이, 지금 꿈속에서 울어 젖혔던 손자의 울음을 보며 생각이 난다. 딸아이의 난감 해하는 모습이 할머니의 주름진 얼굴과 겹치며 나의 눈물은 점점 더 뜨거워진다. 


 옆에서 편안히 자고 있는 아내가 눈치채지 못하게 방문을 열고 밖으로 나왔다. 강원도의 하늘엔 별이 총총하다. 하늘을 우러러 “할머니 보고 싶습니다.” “선생님 보고 싶습니다.” 작은 소리로 불러본다. 뜨거운 눈물이 별빛을 흐린다. 선생님과의 이별은, 두 달 전의 엄마와의 이별을 다시 불러내어 내 앞에 보여주며 알게 해 주었다. 엄마의 죽음이 분명한 현실임을 자각하도록 해 주었다. 꿈속에서 보았던 손자의 울음은 어머니와의 영원한 이별을 다시 한번 생각나게 해 주었다. 그래서 그렇게 울었던 것이다.


 이 타이밍은 또 무슨 의미일까? 어머니가 돌아가신 지, 이희지 선생님과 헤어진 지, 67년이 지났다. 내 나이 칠십 대 중반을 지나고 있다. 고향도 아니고, 사는 집도 아닌 아들이 이제 막 준비한 생소한 곳에서 꿈으로 나타내 보여주는 이유가 무엇일까?  마당 뒤쪽 풀숲에서 두꺼비가 꾸르륵꾸르륵 운다. 내가 별을 보고 울고 있으니 두꺼비 저놈도 별을 보고 우나 보다. 

‘두껍아! 너도 엄마가 죽었니?’

‘두껍아! 하늘의 별도 운다. 너와 나 그리고 저 별 우리 셋이서, 엄마 없는 이 밤을 울어보자.’ 


 저 별의 작은 반짝거림 만을 바라보다, 달이 없음을 모르듯이, 할머니의 따뜻한 사랑만을 바라보다, 어머니의 뜨거운 모성애를 잊고 있었던 두 달이었을 거라고 정리를 해본다. 삼월 하순 장다리 꽃밭의 그 하양 나비는 어머니의 영혼이었다. 어머니는 항시 그리웠고, 가슴 한편에 고이 접어 간직했던 어머니 나비의 날개 짓은 오늘까지 내 가슴에서 그리움으로 살아 펄럭였던 거라고….   그렇게 정리를 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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