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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광석 Oct 22. 2023

이름

행복해지는 열쇠


 산책을 하는 중에 자주 보이는 꽃의 이름을 알고 나면 그 꽃에 대한 친밀감이 급상승한다. 꽃 이름을 불러주며 걷는 기분은 꽃 이름도 모른 채 걸을 때보다 한결 상쾌하다. 이름을 외우고 불러주는 실천은 내 삶이 행복해지며 세상이 행복해지는 출발점이다.  


 누군가의 이름을 불러준다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 김춘수(1922-2004) 시인의  ‘꽃’이 생각난다. ‘하나의 몸짓에 지나지 않았던 그가, 내가 비로소 이름을 불러주자,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되었다’ 아직 온전한 개체로 자리 잡지 못한 미약한 풀꽃 하나도 이름을 알고 불러 줌으로써 정확히 인식되며 친근하게 다가가게 된다.  


 이름을 불러 줌으로써 사물의 모습이나 성격 등 정체성이 애매한 객체가 추상의 세계에서 명확한 인식의 세계로 들어온다. 이름이란 들여다보아야 보이는 별꽃, 꽃마리, 봄까치꽃처럼 희미한 관념을 뚜렷한 존재로 만들어 준다. 


 김소월(1902-1934)이 ‘초혼’에서 읊고 있는 이름이란, 떠나가 버린 님을 향한 집념을 담은 외침이다. 님이 떠나간 후에 닥쳐오는 외로움과 슬픔을 견디느라 처절하게 부르짖는, 목숨과 바꾸더라도 붙잡고 싶은 열정의 몸부림이다. 원망 하소연 애원이 되기도 한다. 

 

 “그 아름다운 곳을 가로수 길이라고 불러선 안 돼요. 그런 이름에는 아무런 뜻도 낭만도 없으니까요. ‘기쁨 가득 새하얀 길’ 어때요?”라고 쓴 칼럼을 읽은 적이 있다. ‘빨간 머리 앤’은 자기 상상력으로 어떤 사물의 이름 짓기를 좋아했다. 강원도 양양 제비꽃은 서울 보라색보다 진하고 선명하다. 나도 흉내 내어 양양 제비꽃에게 ‘자수정 영혼’이라는 이름을 붙여 보았다. 


 이름은 그릇과 같은 것이다. 쌀을 담으면 쌀그릇이요, 금을 담으면 금그릇이다. 민주주의를 담으면 민주주의 사회요, 사회주의를 담으면 사회주의 사회이다. 그릇을 금으로 만들었든 나무로 만들었든 재질이 문제가 아니라 내용물이 그릇의 가치와 이름을 정해 준다. 우리 회사 직원이 첫아이를 낳은 후에 이름을 ‘지율’이라 짓고, 어떠냐고 물어 왔을 때 해 준 말이다. 선생님처럼 살다 가면 선생님 지율이가 될 것이며, 스님처럼 살다 가면 스님 지율이가 될 것이다.  


 동네 사람이나 자주 만나는 사람도 이름을 불러주면 놀래고 기뻐한다. 풀꽃도 이름을 불러주면 반가워 깨어난다고 한다. 다른 사람의 이름을 얼마나 많이 알고 자주 불러 주었느냐에 따라 그 사람의 삶의 내용이 정해진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루스벨트 대통령은 백악관의 청소부 이름까지도 기억해 두었다가 만날 때마다 불렀다고 하지 않은가. 강철왕 카네기는 어렸을 적에 자기가 키우는 토끼에게 이웃 친구들의 이름을 붙여주고 토끼들에게 풀을 뜯어다 주게 했다는 이야기도 너무나 유명하다. 


 사람에게 있어서 자기 이름은 가장 애착이 가며 소중한 것이다. 호랑이는 가죽을 남기고 사람은 이름을 남기라고 했다. 이름을 남기려고 예나 지금이나 비석을 세웠다. 풍광 좋은 깊은 산 큰 바위에 빨갛게 남겨진 이름들을 보자. 한낱 낙서에 불과한 글씨를 새기느라 아득한 바위에 매달렸을 석공의 노고가 고소(苦笑)를 자아낸다. 그 사람에게는 애지중지 버리지 못하고 남기고 싶은 금쪽같은 이름이다. 


 그토록 소중한 이름을 자주 불러 주자. 이름을 불러주는 것은 인사를 하는 행위다. 항상 강조하듯이 인사는 ‘내가 먼저 큰 소리로’ 해야 한다. 그리하면 상대방이 행복해지고 내가 행복해진다. 또 세상이 행복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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