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의 의미
비 올 때 우산은 엄마 같다.
몸을 활짝 열고 나를 안아준다.
난 우산의 손을 꼭 잡는다.
군산초등학교 4학년 이성훈 군의 시다. 비 내리는 날, 우산을 엄마에게 비유한 이 군의 시는 두고두고 가슴에 남는다. 비 오는 날, 우산에서 양팔을 벌리고 가슴으로 안아주는 엄마의 포옹을 느끼다니 기특하고 갸륵하다. 우산 손잡이를 잡으며 엄마의 손을 꼭 잡는다는 어린이의 표현은 또 얼마나 예쁜가.
‘삶이란 우산을 펼쳤다 접었다 하는 일이요, 죽음이란 더 이상 펼치지 않는 일이다. (중략) 비를 맞으며 혼자 걸어가는 사람에게 우산을 내밀 줄 알면 인생의 의미를 아는 사람이다. 세상을 아름답게 만드는 건 비요, 사람을 아름답게 만드는 것은 우산이다. 한 사람이 또 한 사람의 우산이 되어 줄 때 한 사람은 또 한 사람의 마른 가슴에 단비가 된다.’
위의 내용은 김수환 추기경님의 ‘아름다운 우산’이라는 글의 일부분이다. ‘세상을 아름답게 만드는 건 비요, 사람을 아름답게 만드는 것은 우산이다.’라는 구절이 참 좋다. 비는 산천초목을 촉촉이 적셔 새싹을 움트게 하며 새로운 생명이 태어나게 하니 세상을 아름답게 하는 것이 맞다. 그러나 이 시의 비는 다르다. 우리가 살아가며 겪어야 하는 고난을 말한다. 고난을 겪으며 인내하고 이겨내는 짱짱한 사람으로 성장한다. 또 하나 중요한 것은 다른 사람의 고난이 얼마나 힘든지도 알게 해 준다. 그래서 다른 사람의 메마른 가슴에 단비가 되어 주는 우산의 자비를 배우게 해 준다.
비 오는 날, 퇴근길 지하철은 언제나 많은 사람들로 어깨를 부딪히며 걷는다. 오르고 내리는 많은 승객들로 계단은 북적인다. 우산에서 빗물이 떨어지고, 바닥은 젖어 번쩍거린다. 머리에 책가방을 이고 달리는 중학생, 신문지를 얹고 뛰는 청년, 편의점에서 산 작은 비닐우산으로 머리만 가리고 종종걸음을 치는 아가씨 등 비 오는 날 퇴근길 풍경은 모두가 바쁘다. 저 앞에서 노란 비옷에 노란 장화를 신고, 진홍색 우산을 든 젊은 여인이 화사한 꽃이 되어 축축하게 젖은 빗길을 걸어온다. 여인의 다른 손에는 검은색 긴 우산이 또 하나 들려 있다. 비가 오는데도 아름답다.
우산이란 비가 내리면 절실하고, 없으면 난감하고, 있으면 고맙고, 해가 나면 귀찮아지는 인연이다. 집에 도착하면 조금 전의 고마움은 잊은 채로 아무 데나 던져두는 사람도 있고, 절이라도 할 것처럼 소중하게 물기를 털고 말려 두는 사람도 있다.
비가 내리는 날 우산이 손에 있으면 행복하다. 학교를 다녀와서 책가방을 마루에 던지면서 “엄마!”하고 부르면 “아이고, 어서 와라. 배고프지?” 화답해 주는 엄마의 목소리만큼 반갑고 안도한다. 어려서부터 엄마가 계시지 않으면 미래가 난감해지고 삶이 가여워진다. 45년 전 결혼식 때에 어머니 자리에 고모님이 앉았을 때 어머니의 존재는 얼마나 절실했던가? 또 얼마나 낯설었던지 모른다. 그런 엄마도 내 자식 생기고 일이 바빠지면 아무렇게나 던져두는 우산처럼 잊히는 걸까?
비를 맞으며 혼자 걸어가는 사람에게 우산을 내밀어 줄 줄 안다면 인생의 의미를 아는 사람이라 했다. 우산을 내미는 사람은 자기 입장에서의 삶의 의미는 알 수 있을지 모르겠으나 비를 맞고 가는 사람을 이해하는 데는 부족함이 있다. 배고픈 사람에게 식사를 제공하는 것은 자비이며 적선이다. 그러나 그 사람이 얼마나 배가 고픈지, 배가 고프면 얼마나 힘들고 비참해지는지 알 수 없다. 자비와 적선의 의미는 자비와 적선이 필요 없는 세상을 만드는 것 아니겠는가? 비를 맞으며 걸어가는 사람이 있다면 내가 받는 우산을 접어 두고 함께 비를 맞으며 걸어야 참 자비이고 참 적선이 되리라.
뜨거운 햇볕 아래를 걸어온 사람만이 당산나무 그늘의 시원함을 아는 법이다. 세차게 내리는 여름비를 맞으며 걸어보지 않으면 우산의 고마움을 모른다. 세상의 어떠한 세찬 비도 다 막아주었던 우산 같은 엄마도, 돌아가시고 나서야 가슴을 치며 뉘우치고 슬퍼한다.
‘비 올 때 우산은 엄마 같다. 몸을 활짝 열고 나를 안아준다. 난 우산의 손을 꼭 잡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