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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광석 Sep 10. 2023

버스킹

꿈에 물을 주다.

  봄이다. 여린 떡잎이 움트는 봄이다. 양지바른 밭둑 어린 새싹을 만나는 것은 커다란 반가움이요 기쁨이다. 꽃을 보는 사람은 만개한 꽃을 좋아하고, 꽃을 키우는 농부는 꿈이 있는 새싹이 반갑다.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는 희망을 볼 수 있기 때문이다. 꿈을 꾸고 있는 새싹이 세상이 자기를 보아주기만을 기다리지 않고 ‘나 여기 있어요’라고 세상을 향하여 외치는 것이 버스킹이다. 


  낯설고 두렵지만, 광명을 보려고 스스로 알을 깨고 나온 위대한 병아리이다. 세상을 향한 출발의 시점이며 성숙을 위한 첫걸음이다. 콩을 맷돌에 갈아 콩물을 만들어도 간수를 넣어야 두부가 되듯이, 준비만 하는 사람은 완성할 수 없으며 성공도 할 수 없다. 설령 실패하더라도, 방안에서만 노래를 부르다 그만둘 수는 없지 않은가? 성공의 법칙이 있다면 실패의 법칙도 있을 테니 말이다. 


  버스킹에서 배운 실패의 법칙은 훗날 그의 삶에서 다시 일어날 수 있는 저력이 될 것임이 틀림없다. 어느 대기업 총수가 즐겨 썼던 말이 “임자 해 봤어?”였다 하지 않는가! 기타 하나 들고 혼자 정거장 앞까지 나오는 가수 희망생의 용기에 뜨거운 박수를 보내고 싶다.


  버스킹은 길거리 공연을 일컫는 외국어이다. ‘길거리에서 공연하다’는 의미의 버스크에서 유래된 용어이며, 그러한 사람을 버스커라 부른다. 사람이 지나다니는 곳이면 어디나 좋다. 노래를 부를 수 있으면 된다. 몇 명이라도 들어주는 사람이 있으면 더욱 고맙다. 아직 피기 전 여리고 풋풋한 봉오리 가수의 뜨거운 노래다. 

  

  길거리 공연의 종류에는 노래, 무용, 그림, 행위예술 등이 있다. 서양에서 많이 만날 수 있는 거리 예술이다. 유럽 여행 중, 관광지에서 유명한 조각 또는 인물로 분장을 하고 꼼짝 않고 서 있는 퍼포먼스를 본 적이 많다. 파리의 몽마르트르 언덕에서는 수준 높은 길거리 그림을 만날 수 있으며, 이탈리아 베네치아의 산 마르코 광장에 가면 파파로티 버금가는 가수들의 버스킹을 들을 수도 있다. 서울 남산에도 인물화 또는 일러스트를 그려주는 화가들을 여름에는 많이 만날 수 있으며, 대학로, 홍대 앞에서도 거리공연을 자주 볼 수 있다. 많은 사람이 가던 길을 멈추기도 하고, 들어주는 사람 하나 없는 때도 있다. 


  극장의 공연 또는 미술관의 작품을 감상하려면 입장료를 지불한다. 마찬가지로 버스킹을 감상할 적에도 조금이라도 성의를 표하는 것이 에티켓이다. 우리에게는 버스킹 예절이 생소하기도 하지만, 버스커에게는 박수와 함성 그리고 작은 성의가 큰 힘이 되어 내일도 다시 거리로 나올 수 있게 할 것이다. 


  JTBC 방송국의 ‘비긴어게인’이라는 프로그램이 있었다. 우리나라 가수들이 독일의 베를린, 네덜란드의 암스테르담, 이탈리아의 소렌토 등 유럽의 각지를 돌며 버스킹을 하는 프로그램이었다. 최고의 가수들이 펼치는 거리공연이라서, 많은 사람이 박수를 보내 주었다. 서양인 사회에서 동양인이 버스킹을 하니 신선하기도 하고 신기하기도 했으리라. 그보다 가수들의 열정과 실력에 매혹된 것은 아닐까? 한국 문화의 높은 수준을 알리는 기회로 버스킹을 활용했다는 의미 있는 프로그램이었다. 


  비 내리는 저녁나절 처마 밑에서 비를 피하는 어린 수탉처럼, 후줄근한 모습으로 노래를 부르고 있는 버스커를 만날 때가 있다. 아직은 정체성이 확립되지 않아 실력이 모자라고 완성도 또한 부족하다. 부끄러운 미완성이라는 것을 자기도 잘 알고 있기에 가슴 졸이며 나선 자리인데, 아무도 제 목소리에 관심을 두는 사람이 없다면 얼마나 의기소침할까? 첫걸음인 버스킹에서 꺾이고 마는 버스커들도 많으리라. 


  길거리 공연은 우리나라보다 일본이 더 많다. 인구 2~3만의 소도시 기차 정거장 앞에서 기타 하나로 목청을 높이는 어린 가수들을 자주 만날 수 있었다. 같은 학교에 다니는 친구로 보이는 여학생 둘이 책가방을 깔고 앉아 고개를 쳐들고 노래를 듣고 있는 정경은 너무도 진지하여 귀엽기도 하고 뭉클하기도 하였다. 


  일본 시코쿠의 이마바리(今治)라고 폭신한 고급 타월이 유명한 작은 도시의 기차 정거장 앞에서 버스킹을 하는 청년과 대화를 나눌 기회가 있었다. 

"몇 시간이나 노래를 하세요?"
 "제가 하고 싶은 만큼요. 보통 3시간 정도 합니다."
 "힘들지 않아요?"
 "아니요, 전혀 힘들지 않아요."
 "근데 지금 듣는 사람이 한 사람도 없네요?"
 "창피하지요. 엄청!!"
 "근데 왜 이렇게..."
 "저의 선생님이 말씀하셨어요. 버스킹은 모르는 사람 앞에서 노래를 할 수 있는 배짱을 키워주고, 저의 실력이 얼마나 부족한지를 알게 해 주고, 사람이 하나도 없는 공연은 실패를 이겨내는 용기를 키워준다고. 집에 가면 피곤하고 내가 지금 뭐 하는 짓인지 모르겠어요. 그래도 내일 다시 기타를 들고 나오게 됩니다. 꿈이 있으니까요. 꿈에 물을 주어야 하니까요." 
 "훌륭하신 선생님이시네요."
 나는 엄지손가락을 높이 추켜올리며 미소를 보냈다.


우리의 삶도 항상 버스킹이 아닐까? 

요즈음 나는 글쓰기 버스킹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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