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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광석 Sep 01. 2023

할머니와 땅콩죽

할머니 사랑, 어머니 사랑

 땅콩을 넣은 멸치볶음을 놓고 아내와 둘이서 밥을 먹었다. 방금 볶아서인지 맛이 있었다. 

“멸치볶음이 맛있네! 근데 땅콩죽은 어떻게 끓일까?” 

“왜 그렇게 땅콩죽 땅콩죽 하는 거예요?”  

“아~~! 그건, 옛날에 어느 여인이, 땅콩죽을 끓여 주었는데, 아주 맛이 있었거든!” 

아내의 눈꼬리가 올라간다. 나는 얼른 

“아~~! 그 여인이 바로 우리 할머니야!” 

그 순간 밥을 입에 넣은 채로 밀려오는 할머니 생각에 눈물이 줄줄 흘러내리고 꺽꺽 통곡이 터질 것 같았다. 밥을 삼킬 수가 없었다. 휴지로 눈물을 닦으며 입에 있던 밥을 겨우 넘기고 ‘안 돼, 참아야 해!’라며 마음속으로 애를 쓰는데도 진정이 안 됐다. 아내가 “왜 울어요?”라고 물었다. 그러나 ‘할머니 생각이 나서 운다’라고 설명을 할 수 없을 만큼 격해 왔었다. 아내가 주는 뜨거운 물을 마시니 조금 가라앉았다. 돌아가신 지 50년도 더 지났는데 이게 무슨 일인가?


 청정지역 임실에 사는 죽마고우가 땅콩을 보내왔다. 농약과 비료를 사용하지 않고 지은 땅콩이라 맛있을 거라고 했다. 역시 달고 향이 구수하여 여느 땅콩과는 확연히 차이가 있었다. 친구가 날 생각하여 보내준 고마운 땅콩이니, 변하지 않게 오래오래 먹을 맘으로 냉장고에 소중히 보관하여 두었다. 이러한 토속식품을 유난히 좋아하는 아내에게 “언제 땅콩죽이나 한번 끓여 먹읍시다.”라고 부탁하였다. 그런데 두어 달이 지나도 땅콩을 꺼내 보려고도 하지 않는 아내에게 섭섭해 있던 차에 그 친구가 또 택배를 보내왔다. 


 골판지를 잘라 박스를 만들고 골판지 안에는 스티로폼을 잘라 붙였다. 안에는 땅콩이 수북이 들어있고 참기름병 하나가 빼꼼히 내다보고 있다. 까치가 둥지를 틀 듯 손이 많이 간 상자 안에 까치알 대신 참기름 한 병, 나는 그만 웃고 말았다. 참기름 한 병을 시간과 정성을 들여 꼼꼼히 포장하여 보낸 친구의 자상함과 성의가 나의 마음을 적시고도 남았다.  아내도 파안대소했다. 난 또 땅콩죽 타령을 했다. 내 말은 들은 척도 하지 않고 멸치볶음에 땅콩을 듬뿍 넣고 볶았다. 프라이팬의 멸치와 땅콩을 타지 않게 저으며 도왔다. 의외로 멸치볶음이 맛있었고, 땅콩도 고소하고 식감이 좋았다. 


 초등학교 4학년 때였다. 할머니께서 땅콩 반 바가지와 물에 불린 쌀을 주시며 “학독(돌확)에다 갈아라.”라고 말씀하셨다. 땅콩과 쌀을 학독에 넣고 물을 조금 부은 후에 풋독(줌돌)으로 갈아 대니, 아이의 힘이었지만 어렵지 않게 갈렸다. 쌀과 땅콩이 뿌연 콩물로 갈리면서 우유 빛으로 군침이 돌았다. 냄새마저 고소했다. 그걸로 땅콩죽을 끓여 주셨다. 할아버지와 할머니, 동생 셋 그리고 나, 여섯 식구가 머리를 맞대고 맛있게 먹었다. 할머니는 “많이 먹어라. 많이 먹어.”하시며 내 죽그릇에 더 주시곤 하셨다. 그날 먹었던 땅콩죽의 맛과 향 그리고 색깔, 할머니의 모습이 돌연 떠올라 터져 나온 눈물이었다. 


 살림은 넉넉지 않았지만, 할머니는 언제나 단정하셨다. 머리는 하얬지만, 아침마다 참빗으로 단정히 빗어 쪽을 짓고 오래된 은비녀를 꽂으셨다. 어머니가 일찍 돌아가신 우리 집은 할머니가 주부였다. 장손인 나는, 할머니께서 어린 손자들 때문에 고생을 많이 하신다고 생각했다. 항상 도와드려야 한다는 생각이 많았지만 어디 도움이 되었겠나 싶다. 


 할머니가 끓여 주신 땅콩죽을 먹던 손자는, 칠십을 훌쩍 넘긴 할아버지가 되었다. 그런데도 할머니가 그립다. 할머니 생각이 나면 시간과 장소를 가리지 않고 눈물이 울컥 난다. 사랑은 내리사랑이라 했던가! 할머니로부터 받은 사랑을, 귀엽고 예쁜 손자들에게 모두 갚고 가야 할 텐데. 손자들이 조금 더 크면 집에 불러 땅콩죽을 끓여 함께 먹어야겠다. 할머니 얘기도 하면서. 그러면 저승에 계신 할머니가 “이쁘다. 이쁘다.” 하시며 내 머리를 쓰다듬어 주실 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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