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도말고 할 수 있는 것이 없었다.

by 간질간질

올리비아는 뒤숭숭한 분위기에서도 열심히 일을 한다. 신은 성실하게 일하는 자를 돌보신다는 믿음 때문이다. 올리비아는 신실하다. 본인은 아니라고 하겠지만 주위 모든 사람은 올리비아의 신실함을 잘 아고 있다. 신도 인정할 것이다. 비록 신이 먹을 것을 직접 주지는 않지만...


올리비아는 할아버지를 찾아갔다. 동생 올리버가 사라진 이후 또 다른 가족과 헤어지기 전에 한 번이라도 더 만나봐야겠다는 생각에 횟수가 잦아지고 있다.


"어서 오너라"

할아버지는 털에도 윤기가 없고 거동도 불편하지만 다행히 정신은 괜찮다.

"잘 지내고 계시나요?"

"늙으면 빨리 죽어야 할 텐데 그래도 네가 자주 찾아오니 고맙구나"

"빨리 죽을 거라뇨. 그런 말씀하지 마세요. 모든 생명은 신에게 달려 있는 것이잖아요"

"허허 그렇지. 그래. 할애비가 잘 못했다"


올리비아는 말없이 할아버지의 풀을 챙기기 시작했다. 소박한 나무 탁자와 나무 그릇에 풀을 나눠 담고 먹기 시작했다. 신실한 올리비아는 밥 먹기 전에 신에게 감사하는 기도를 잊지 않았다.


"너는 언제 결혼할 거니?"

"신이 준비한 양을 만나게 되면 하겠죠"

"결혼해야 할 텐데 말이다. 가정을 꾸려야지. 가족만이 너를 지켜줄 수 있단다"

"신이 지켜주실 거예요"

"맞다. 신이 지켜주시지. 하지만, 신도 너의 가족을 통해서 지켜주시는 게야. 직접적으로 신이 너를 구원해 주지는 않는다. 그건 아주아주 먼 옛날의 이야기지. 요즘은 신이 직접 개입한다기보다는 너같이 신실한 양들을 통해서 나타나시는 것 아니겠니?"

"네. 노력해볼게요"

올리비아는 더 이야기하고 싶지 않았다. 결혼 이야기가 나오면 할아버지가 원하는 대답인 '곧 할게요'라는 말이 나올 때까지 반복되었다. 몇 번의 시간이 지나 올리비아는 할아버지에게 맞춰 이야기를 끝내는 것이 가장 짧게 마무리하는 방법임을 깨달았다.


"난 손주를 보고 싶긴 하지만, 그것도 욕심인 것 같구나. 네 동생이 사라진 후에 이젠 너만 걱정이 된다. 너는 또 쓸데없는 이야기라며 나를 나무라겠지만 난 언제 죽어도 이상하지 않은 나이가 되었잖니. 내가 너를 언제까지 지켜줄 수는 없을 테니. 너를 지켜줄 배우자를 만나야 한다"

"마을은 늑대들이 지켜주고 있으니까 괜찮을 거예요"

"늑대들이? 자기밖에 모르는 도둑 같은 놈들이 무슨 양을 지킨단 말이냐?"

"하지만, 늑대들을 데리고 온 것은 양이잖아요?"

"욕심 많은 것들이 재앙을 불러들인 거지. 늑대 주변에서 늑대의 힘을 등에 업고 양들을 괴롭히는 것들이지. 사기꾼 양에게 어리석은 양들이 속은 것이야"

할아버지는 늑대들을 믿지 않았다.


"개들이 있으니 늑대들이 함부로 하지는 못하지 않을까요?"

"개들이? 능력도 없으면서 이게 맞네, 저게 맞네 하면서 헛것만 좇는 무능력한 것들이 어떻게 양들을 지켜?"

"그래도 개들은 양들을 잡아먹지는 않잖아요?"

"그 능력 없는 것들은 이상만 좇다 보니 북쪽의 이리들에게 양마을을 통째로 넘기려 하지 않냐? 이리는 변하지 않는다. 이리들은 언제나 우리들을 노리고 있는데 그놈들하고 싸우지 않으려 한다니 골 빈 놈들이지"

할아버지는 개들을 신뢰하지 않았다.


"알겠어요. 개나 늑대나 우리와는 다르니까요. 적어도 원로원에 있는 양들은 좀 낫지 않을까요?"

"원로원이? 자기 잇속만 챙기면서 어떻게든 일반 양들을 등치려는 것들이 우리 편을 든다고? 원로원은 자기 이득이 된다면 양 수백 마리쯤은 얼마든지 팔아먹을 이기적인 놈들이다"

할아버지는 원로원에 아무런 기대감이 없다.


"결국 가족뿐이다. 피붙이 말고는 믿을 수 없어. 그러니 어서 가정을 꾸리고, 이 할애비 걱정을 좀 덜어주려무나"

"네. 알겠어요"


올리비아는 할아버지 집을 나서면서 깊은 한숨을 내뱉었다. 어제 저녁 가장 친했던 친구가 찾아왔었다. 그 친구는 결혼한지 1년도 되지 않아 남편과 헤어졌다. 친구에 따르면 남편은 무능력한 개와 같고, 시댁은 욕심많은 늑대와 같고, 주변사람들은 이기적인 원로원과 같았다. 그 친구는 밤새 결혼하지 않은 올리비아를 부러워했다. 올리비아는 집에 돌아가서 신에게 기도했다. 그것말고 할 수 있는 것이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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