싸다구씨가 어렸을 땐 동네에 약장수가 돌아다녔다. 약장수는 종합 엔터테이너의 원조다. 사람이 많이 모이는 시장 옆 공터에 자리 잡곤 마당놀이의 정통 후계자임을 뽐내듯 사람들을 빨아들였다. 철사로 직접 만든 목에 건 마이크는 멀리서도 약장수의 아우라를 뿜어내는 레어템이다. 약장수를 상징하는 것은 '이것 한번 잡숴봐~'라는 문장을 쇳소리가 섞인 저음으로 내뱉는 발성이었다. 이제 이런 발성을 들을 일은 없다. 간혹 TV에서 흉내 내는 것이 있었지만, 그 당시 싸다구씨를 비롯한 동네 꼬마들이 흉내 내는 말투를 지금 들을 방법은 없다. 그나마 지금까지 내려오는 약장수의 발성은 열정적인 부흥회를 인도하는 목사님들의 발성이다. 쇳소리에 절인 저음의 반복적이고 쉼 없는 발화는 지나가는 사람의 귀에 꽂혀 낚시질하듯 사람들을 끌어 모았다.
약장수는 처음부터 약을 팔지 않는다. 약을 파는 것이 목적이지만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충분한 담금질과 준비과정을 거친다. 쇠사슬에 목이 묶인 빨간 조끼를 입은 원숭이 쇼도 하고, 웃통을 벗어제낀 대머리 아저씨의 차력쇼도 곁들여진다. 특별한 볼거리가 없던 시절에 공짜로 벌어지는 종합 콘서트는 한번 낚은 사람들의 시선과 발걸음을 주위에 묶어두는 마법을 부렸다. 사람이 사람을 부른다고 삼삼오오 모인 군중은 어느새 비집고 나서야 볼 수 있는 인산인해가 되었다.
돈이 안 되는 어린아이들이 앞자리를 잡고 죽치고 앉으면 '애들은 가라'라는 말로 아이를 뒤로 밀어내고 돈을 낼 깜냥이 되는 어른들을 앞으로 모셨다. 하지만, 절정을 향해 꼭 필요한 생체 실험용 아이 하나는 남겨뒀다. 그 아이는 모든 사람들이 보는 앞에서 약을 먹고 효능을 증명할 고귀한 증거가 될 터였다.
만병통치약이라 했지만 싸다구씨가 봤던 것은 못살던 국민을 괴롭히던 회충약이었다. 아이가 약을 먹고 나면 아이 바지 속에선 살아 있는 회충이 꾸물꾸물 빠져나왔고 약장수는 아무렇지 않게 회충을 집어 들고선 '이거 보시오!'라고 당당히 외쳤다. 적장과의 일대일 대결에서 승리한 후 적장의 목을 베 높이 쳐드는 것과 같은 세리머니에서 약장수의 퍼포먼스는 절정에 달했다.
이후 홀린 어른들은 '돈을 건네며 약을 받아갔고, 실험체가 된 아이 손에도 수고비쪼로 돈푼 어치가 쥐어졌다. 약장수는 어떤 병도 어떤 것도 '이거 한번 잡숴봐!'라는 말로 모두 해결할 수 있도록 만들었고, 구경하던 사람들은 믿었다. 그걸 먹고 회충은 잡을지 몰라도 건강에 어떤 영향을 끼칠지 아무도 몰랐고 관심도 없었다. 그저 약을 먹으면 모든 병이 나을 것이라 믿을 뿐이었다.
싸다구씨가 약장수 기억이 떠 오른 것은 뉴스 때문이다. 요즘 정부에서는 '이것 한번 잡숴봐!'라며 '압수수색'이란 약을 팔고 있다. 사람이 죽어도, 금융이 잘못돼도, 정치인이 마음에 안 들어도 '압수수색'이란 해결책이면 된다고 흔들어댄다. 정말 만병통치약인지 모르겠지만 사라진 약장수를 다시 만난 기분이 든 것은 싸다구씨가 너무 오래 살았기 때문이다. 아니면 기묘한 세상에 살고 있던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