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제비가 스스로의 정치성향을 밝힌 적이 없다. 스스로 색깔을 분명하게 표현하는 사람들에게 데인 이후로 더 심해졌다. 사람들은 스스로 '가치'에 대해 이야기하고 주장하고 지지한다고 말할수록 실제 생활에서는 그 가치를 가장 우습게 여기고, 내팽개친다. 회사에서도 흔히 만나는 상사들이다. '소통'을 주장하는 상사들일 수록 답정너 스타일이고, '수평'을 이야기하는 상사일수록 권위적이다. '창의'를 외칠수록 기존에 하던 대로 하는 것을 바란다. 회사란 그런 곳이다. 회사의 뻥튀기 조직인 사회 역시 마찬가지다.
"잡놈의 새끼들"
수제비가 얘기한 잡놈이 여당인지, 야당인지 알 수 없다. 177석의 슈퍼 여당임에도 결정을 하지 못한 채 끌려간 여당을 욕하는 것인지, 선거에서 진 것이 확실함에도 여전히 땡깡을 부리는 야당을 욕하는 것인지 모른다. 아니면 국회의원들을 싸잡아 얘기하는 것일 수도 있다.
"지금 매우 위험한 발언과 모호한 야기를 한꺼번에 했어"
수제비가 날카롭게 쏘아봤다.
돌멩이는 돌스럽게 무표정한 얼굴로 설명을 시작한다.
"잡놈이라고 했는데, 놈은 남자를 뜻하는 말이야. 하지만, 국회의원은 절대 남자로만 구성되어 있지 않아. 수제비는 지금 여성 국회의원들을 포함시키지 않았다면 '성인지 감수성'의 문제가 있는 거고, 여성 의원들은 문제가 없고 남성 국회의원들만 이야기한 거라면 이것 역시 '정치적 올바름'에서 한참이나 떨어진 이야기를 한 거라고. 남녀 상관없이 국회의원들을 포함했어야 했다면 '잡것들'이라고 했어야 해. 여성의원을 포함시키지 않은 의도였다면 수제비는 더 문제가 있는 거야. 직장 내 성희롱 교육부터 다시 시작해야 돼"
"그렇군. 미안해 잡것아!"
돌멩이는 눈썹을 5mm 정도 꿈틀거렸다.
"모호한 이야기를 설명해 줄게" 돌멩이는 아무렇지 않은 듯 눈썹 수평을 맞춘 후에 다시 이야기를 시작했다.
"잡놈 아니.. '잡것의 새끼들'이란 표현이야. 새끼들에 악센트가 있다면 아무리 국회의원들이 밉다고 해도 그렇지, 결과적으로 국회의원들의 부모님을 욕한 거야. 부모님들이 갑자기 '잡것'이 돼버리니까. 아무리 국회의원들이 밉다고 해도 부모님을 엮어서 욕하면 안 되지. 연좌제야. 옛날에 빨갱이로 엮어서 사람을 잡던 매우 질 나쁜 행동이라고"
잠시 숨을 쉬더니
"이 경우가 아니라고 해보자. 잡것과 새끼가 동등한 의미로 쓰였다는 가정이지. 그럼 줄여서 잡것들. 잡스러운 새끼들이라고 볼 수 있겠네. 그래도 문제가 생겨. 아무리 화가 난다고 해도 사람에게 욕을 한 거잖어. 게다가 국민을 대표하는 국회의원들을 대상으로 쌍욕을 했네. 모욕죄가 성립되지 않을까?"
수제비의 근육이 꿈틀거린다.
"공개적으로 한 게 아니라서 나만 입을 다물면 문제가 없을 것 같긴 하다. 다행이다. 그치?"
수제비는 호흡법으로 마음을 다스리는 중이다.
"잡스러운 이야기를 많이 하다 보니 job이 떠올랐어. 요즘 Job을 잡지 못한 젊은이들이 많아. 스티브 잡스가 무덤에서 돌아와도 잡(Job) 문제는 해결하기 어렵겠다. 흐흐흐흐"
수제비는 조용히 노트북을 치우고, 받침으로 쓰던 잡지(雜紙) 한 권을 슬며시 꺼내서 날렵하게 돌멩이의 뒤통수를 가격했다.
"잡귀(雜鬼)야! 물렀거라!"
퇴마의식을 끝낸 수제비는 조용히 노트북을 다시 열고 작업을 시작한다. 저녁에는 잡탕밥을 먹고 싶다는 생각이 수제비의 머릿속을 채웠다. 아니. 잡채로 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