白(백)

by 간질간질

얼굴이 허옇게 뜬 수제비 때문이었다고 돌멩이는 말했다. 이제 돛이나 키 없이, 별자리나 태양 없이, 나침반이나 GPS 없이 돌멩이의 기억과 의식이 흐르는 대로 따라가 본다. 왜 그랬을까?


페북에 올린 독백(獨白)

'보톡스보다 효과 좋은 물질 발견! 자기 전 한 스푼 이스트를 먹으면 주름이 쫙 펴진다' 돌멩이가 올린 피드다. 돌멩이는 인스타보다 페북을 더 좋아한다. 이유는 인증용 사진을 찍지 못하기 때문이란다. 그래서 돌멩이의 페북에는 대부분 '더보기'가 나온다. 페친들은 '더보기' 버튼을 누르는 대신 '좋아요'만 누르고 나간다. 친한 친구가 술을 마시고 돌멩이에게 "너는 차라리 블로그를 하지 왜 페북에 그렇게 주절대는 거야?"라고 말하기 전까진 몰랐다. 이 일 때문일까? 돌멩이는 그 날 아침 자고 있는 수제비의 얼굴을 찍어서 올렸다. 턱 아래쪽에서 앵글을 잡아 볼이 도드라져 보이도록 연출했다. 말할 수 없는 성공이었다. 수제비에게 혼백이 털리도록 욕지거리를 들었다. 주변인에 따르면 '전화가 왔는데 돌멩이가 전화를 안 받고 있다고 생각했죠. 얼마나 미친 듯이 카톡이 울리고 울려서 회의하는데 안마의자 위에 앉아있는 줄 알았다니까요!" 전화가 아닌 줄 어떻게 알았냐는 말에 동료는 돌멩이의 불안한 눈빛과 떨리는 손가락, 초점 잃은 눈동자에 토하러 화장실을 달려가는 것 때문이었다고 했다.


SNS는 방백(傍白)

수제비가 분노한 이유는 모두가 보도록 올렸다는 이유다. 돌멩이와 수제비는 SNS 친구가 아니다. 돌멩이의 친구들만 보는 SNS에 올린 것이기 때문에 돌멩이는 'private'을 강조했다. 수제비는 "너의 쓸모없는 친구들에게 사진을 던진 것은 public 한 공간에서 외친 것이나 다름없기에 '방조(傍助)'한 것이나 같다!'며 단 칼에 기각했다. 그리곤 바로 대한민국에는 존재하지 않는 싱가포르의 '태형'을 선고하고 실행했다.


자백(自白)

돌멩이는 모진 고문에 가까운 태형을 못 이겼는지, 아니면 스스로의 죄를 깨달았는지 술술 자백하기 시작했다. 순순히 수제비의 심문에 '맞다'며 모든 죄를 인정했다. 돌멩이가 자백한 조서 내용을 보면 아침에 일어나서 옆에 있는 수제비의 얼굴을 보니 너무 하얗고 예뻐서 사진을 찍을 수밖에 없었노라는 명분이었다. 평소에 하지 않던 짓을 하게 된 이유로는 전날에 떠 오른 새 하얗고 동그란, 그러면서 선명하고 아련한 보름달 때문이었노라고 덧 붙였다. 더군다나 코로나 19로 사람들이 덜 움직이고 덜 나가 다니다 보니 공기의 질이 좋아져서 달이 더 선명하게 보였노라는 말도 덧붙였다. 그래서, 자기도 모르게 친구들에게 아름다운 수제비의 얼굴을 자랑하고 싶었다며 선처를 바란다는 반성문으로 마무리했다. 사람들은 칭찬에 약하다. 성별이나 연령에 상관없이 '예쁘다. 잘 생겼다. 아름답다. 멋지다'는 말을 하면 흰소리하지 말라면서도 좋아하는 것이 사람이다. 수제비는 '내 외모가 뛰어나긴 하지...'라며 한 숨 참는다. 하지만, 수제비가 보는 앞에서 페북의 포스트를 삭제했으며, 핸드폰의 갤러리에서 지웠으며, 구글 포토에 연동된 것도 챙겼고, 지운 후 휴지통으로 들어간 것 까지 삭제하고서 '허락 없이 수제비의 사진을 사용하는 경우에는 팔과 다리 중 수제비가 지정하는 한쪽을 몸에서 분리하는 것에 아무런 불만을 제기하지 않겠다'는 신체포기 각서에 서명했다. 적당히 사인해주고 마무리 지으려던 돌멩이는 순간 망설였다. 수제비가 정자로 덧붙인 한 구절 때문이다. '분리하는 방법은 수제비가 선택할 수 있으며, 분리를 위해 사용하는 도구도 수제비가 정할 수 있다'


돌멩이의 고백(告白)

수제비가 잠든 것을 확인한 돌멩이는 방으로 들어가 조심스레 노트북을 켰다. 그리고, 브런치를 띄웠다. 카카오에서 만든 SNS로 오로지 글 쓰는 것에 최적화되어 있다는 것을 강조하는 밋밋한 플랫폼이다. 이 곳은 돌멩이가 작가의 꿈을 키우기 위해서라는 명분으로 혼자만 사용하는 비밀 일기장이다. '작가 신청'은 했지만 몇 번 떨어졌다. 돌멩이에겐 중요하지 않았다. 혼자만의 일기장인데 남들이 모르면 어떻단 말인가? 더군다나 작가가 된들 브런치를 알거나 이용하는 사람은 희귀하다. 혼자만 보든 공개하든 상관없지 않은가? 사실, 작가라는 것도 구실이지 그냥 끄적이고 싶었을 뿐이다. 페북이니 인스타니 하다못해 블로그만 해도 사람들이 많이 사용하지만 브런치를 사용하는 사람은 별로 없기 때문에 특히나 인터넷 서비스에 무관심한 수제비의 시선을 피하기도 좋다. 카톡 프로필 사진과 배경화면을 바꿨다가 수제비의 '왜 바꿨니? 무슨 뜻이니?'를 설명하기 위해 정화하게 2시간 37분 동안 고문당한 것도 브런치로 도피하는 데 결정적 역할을 했다.


단백질(蛋白質)

돌멩이의 고백이 담긴 일기를 몰래 읽어본다.

"보름달이 참 밝았다. 보름달을 보면서 집에 돌아오는 길의 날씨는 환상이었다. 이런 날은 버스를 타야 한다. 정확한 시간에 도착하는 대신 지하철은 시각과 후각의 즐거움을 앗아간다. 매캐한 먼지와 어둠의 공간을 움직이는 지하철은 음산하고 암울하다. 상암동에서 9711 버스를 타고 강변북로에 들어설 때 보이는 투명한 노을과 강물의 빛은 나를 소녀로 돌려놓는다. 모든 것이 아름답고 모든 것이 눈이 부시다.


길이 막혔지만 버스에서 내리기 전까지 알지 못했다. 노을이 사라지고 어둠으로 바뀌었지만 먼저 떠오른 보름달이 시계를 볼 수 없도록 시선을 쥐고 놔주지 않았다. 벨을 누르지 않으면 외국의 거리까지 데려다줄 것 같았다. 버스에서 내렸을 때 밀려오는 공허. 먹먹함. 막연한 상실감.


빌딩 때문에 들락날락 거리는 보름달 때문이었다. 평소에 들르지 않는 편의점에 들러 '호빵 없어요?'라고 물어봤지만, 손님에게는 영 관심 없는 아르바이트 생은 마스크를 한 채로 '없어요'라고 뚝 떨어지게 말한다. 겨울이 되지 않고 여름을 앞둔 시점에 호빵이 있을 리는 없지.


집에 와선 허전함에 습관적으로 냉장고 문을 열었다. 보이는 것은 없다. 물, 우유, 여기저기서 사놓은 레트로 음식들. 곰팡이 핀 야채, 부모님들이 줬지만 아무도 먹지 않는 물김치. 그러다 눈에 띈 달걀. 갑자기 달걀을 삶아야겠다고 생각했다. 하나는 적고, 세 개는 많고 두 개는 적당했다. 옛날에는 흰 달걀이 대부분이었는데 이제 갈색 달걀이 대부분이다. 달걀 파동이 났을 때 수입한 달걀은 흰색이었지만 다시 모두 갈색 달걀이다. 겉에는 얼마나 닭들을 괴롭히지 않고 달걀을 훔쳐왔는지 밝히는 '동물 인증 어쩌고'가 붙어 있다. 닭 입장에서야 어떻게 대우하든 달걀은 털리는 것인데 인간의 인간을 위한 계란 포장이다.


계란을 삶았다. 첫 번째 것은 껍질이 잘 벗겨지지 않아서 울퉁불퉁 채로 입에 바로 넣었다. 두 번째는 충분히 찬물에 담그고 조심스레 껍질을 벗겼다. 얇은 표피를 잘 걷어냈다. 뽀얀 흰 살이 나왔다. 단백질이다. 사람들은 단백질이 무슨 뜻인지 알면서 모른다. 단백의 뜻은 계란 흰자다. 누가 번역했는지 몰라도 그렇게 쓴다.


뽀얀 단백을 보고 있자니 행복했다. 변태같이 입에 넣었다 뺐다를 하면서 즐겼다. 계란 두 알에 행복하다. 누가 내게 최저임금만 평생 준다면 얼마든지 승진이나 연봉 인상에 목숨 걸지 않고 살겠다. 서울이 아니라 지방에서, 지방이 아니 산골에서라도 살 수 있다. 얼마나 행복했는지 하얀색 달걀 껍데기를 벗기자 탱탱 거리는 흰자가 튀어나오는 꿈까지 꿨다.


눈을 떴는데 눈 앞에 탱글 거리는 단백질이 있다. 수제비의 부은 볼이었다. 나는 사진을 찍지 않을 수 없었다. 들키면 목숨이 위험한 걸 알았지만, 작은 행복을 준 어제의 일이 고스란히 담겨 있는 수제비의 뽀얗게 살이 오른 볼을 영원히 간직하고 싶었다. 그리고 혼자 알기 싫었다. 꼭 알리고 싶었다. 내 작은 행복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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