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만좀 해! 자꾸 그러면 다른 방으로 갈거야!"
더운 날 저녁 책을 읽고 있는 수제비의 옷 속에 손을 집어 넣는 돌멩이. 수제비는 처음엔 표정으로, 그다음엔 말로, 다음엔 손짓으로 결국 사자후를 날리며 폭발했다. 침울해진 돌멩이는 얇고도 작은 눈의 각도를 낮춰 최대한 불쌍해 보이는 표정으로 수제비에게 자비를 구한다.
"자꾸 그러니까..."
여름 저녁 땀 먹은 내의처럼 늘어진 돌멩이의 목소리. 혹시 돌멩이가 사과라도 하려는가 싶은 생각이 들 때
"어렸을 때 지퍼를 '자꾸'라고 말하지 않았어? 나 어렸을 땐 어머니가 늘 '자꾸 올려라' 그랬었는데..."
돌멩이가 죽으면 땅에 묻기 전에 돌멩이의 뇌만 빼내 원심분리기에 넣고 돌려 봐야겠다고 수제비는 다짐했다.
"국어사전에서는 '자크'라고 등록되어 있고, '지퍼(zipper)'의 잘못된 표현이라고 나와. 자크든, 자꾸든 자끄든 어떻게 부르는건 큰 의미가 없지 않을까? 팬츠(Pants)를 빤쓰라고 부를때 빤쓰가 맞네 틀리네 따질 필요도 없는 것 처럼 말이야. 브래지어도 마찬가지지. 브라자면 어때? 일본어로 brother를 '브라자'라고 부른다고. 웃기지?"
'원심분리기에 돌멩이의 뇌를 돌리는 일을 꼭 돌멩이가 죽은 후에 할 필요는 없지 않나?'라는 생각이 수제비의 머릿속에 떠오르자 묘한 쾌감과 흐르는 땀방울이 청량하게 느껴졌다. 죽고 나서 뇌를 분리하는 방법이 있지만 뇌를 분리하면서 동시에 죽게 하는 방법도 있을 터였다. 어쩌면 돌멩이는 뇌를 분리해도 계속해서 나불거릴 수 있을지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돌멩이라면 가능할 것 같다는 믿음. 더욱더 실험하고 싶은 욕망이 꿈틀거렸다.
"그럼 왜 지퍼를 '자크'로 불렀는지는 설이 두가지가 있어. 국어사전에 나오는 설명은 독일계 지퍼 생산회사의 이름이 '자크(jack)'였다고 해. 아마 이 단어는 일본에서 들어오면서 일본발음처럼 자끄, 자꾸로 전해지지 않았을까? 또 다른 설명으로는 zipper의 영어 단어가 chuck(처크)인데 이 단어의 발음에서 왔다는 것도 있어. 어느 것이 맞는지 솔직히 관심은 없어"
관심없는 이야기를 하는 돌멩이의 뇌를 이해하는 것은 이미 포기했고 다만 입에 지퍼를 채우고 싶었다. 아니. 영원히 입을 닫게 만들고 싶었다. 수제비는 즉시 실행해야 한다는 확신이 있었지만 무더운 날씨가 막았다. 돌멩이의 머리에서 뇌를 꺼내기 위해서는 상당한 육체적 에너지를 소비해야 할 것이고, 많은 운동 에너지는 수제비의 몸에 많은 열을 내게 할 것이고, 열 때문에 엄청난 땀을 흘려야 했을 것이다. 수제비는 땀 흘리는 것과 끈적거리는 것을 지극히 싫어했다. 이상하게도 돌멩이의 뇌 분리과정에 수반될 피를 치우는 것보다 몸에서 흐르는 땀이 더 싫었다. 수제비는 피식 입꼬리를 올리곤 샤워실로 향했다. 돌멩이는 수제비가 자기의 이야기를 재밌어 했다고 믿었다.
돌멩이는 한참이 흐른 후에 땀을 흘릴 만큼 덥지 않았다면 '즉시 실행'했을 거라는 수제비의 고백을 수제비의 멀티 인스타 계정에서 발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