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코올이 돌멩이를 자극한다. 술을 평소 찾지 않지만 열이 뻗치면 갑자기 알코올의 빈자리가 강하게 느껴진다. 니코틴도 마찬가지다. 회사에서 줄담배를 피던 사람들도 회사를 벗어나면 담배 생각을 잊는다. 어지간한 중독이 아니면 1주일 휴가를 가도 담배 한 개비 없이 잘 산다. 알코올과 친하지 않던 돌멩이는 요즘 술이 늘었다. 낮술도 마다하지 않는다. 얼굴은 붉게 검붉게 변하지만 홀짝홀짝 잘 받아 마신다.
의학적인 지식이 없는 문돌이 돌멩이. 돌멩이에게 중독이란 부족한 것이 있을 때 부족한 '그것'으로 메꾸지 않고 '다른 것'으로 때우는 '속임 물질 호출 현상'으로 이해하고 있다. 월급쟁이들은 스트레스를 받으면 스트레스를 해소하기 위한 근본 문제를 해결 해야 하는데, 대부분 문제를 일으키는 사람이 갑의 위치에 있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다른 것으로 스트레스를 해소하지 않고 억누르곤 한다. 대표적인 것이 술과 담배. 중독물질의 야비한 점은 스트레스 상황이 되면 제일 먼저 튀어나와 악마의 이를 드러낸다. 절대 먼저 다가오지 않지만, 손만 뻗으면 잡을 수 있기 때문에 쉽게 속임 물질을 다시 받아들이게 된다. 결국 스트레스가 생기면 속임 물질들이 나를 호출한다. '어이! 나와 미팅할 시간인 것 같은데?'
의지가 강한 사람이라면 참겠지만 대부분은 못 이기는 척 또 넘어간다. 싸다. 대가는 적은 돈. 그리고 약간의 수명이다. 아주 조금만 요구하니까 조금씩 조금씩 수명을 내주게 된다. 임계점을 넘으면-수명이 다하면- 다른 세상으로 데려간다.
돌멩이의 스트레스는 갑질 때문이다. 태생이 을인지라 갑질에 익숙하지 않고 갑의 위치에서도 을처럼 굴고, 갑에게도 을처럼 굴고, 을에게도 을처럼 행동한다. 초식동물들은 혼자서도 초식동물이고, 집단으로도 초식동물인 것과 같다. 육식동물은 혼자서도 육식이고, 여럿이어도 육식이다. 어찌 보면 갑과 을은 태어날 때부터 정해지는지 모르겠다.
돌멩이가 오늘 술을 마시면서 연달아 담배를 피우는 이유는 갑질에 당하고 갑질 했다고 당했기 때문이다.
첫 번째 이야기는 같이 일하는 회사의 팀장에게서다. 같이 일하는 월급쟁이들끼리 무슨 갑질이냐고 묻는다면, 엄연히 노예제에서도 대장 노예가 있었다고 말하고 싶다. 갑질 하는 노예들의 특징은 같은 을에게 갑처럼 굴고, 진짜 갑에게는 나긋나긋하다 못해 녹아버릴 만큼 을의 행동을 보인다는 것이다. 이런 류를 돌멩이는 '쇠 껌'이라고 불렀다. 나에게는 '쇠'처럼 빡빡하고 날카롭게 굴지만, 갑을 만나면 수십 번 씹은 껌처럼 흐물거린다.
두 번째 이야기는 같이 일하는 상사에게서다. 같은 동료끼리 무슨 갑질이냐고 묻는다면, 노비들 사이에서도 장유유서가 있었다는 것을 말하고 싶다. 장유유서를 따지는 노비의 특징은 자기 친구들에게는 한없이 부드럽지만, 자기 친구들에게 해가 되거나 자기의 면-가오라고 하지-이 상하는 일이 생기면 표독스러운 주인처럼 변한다. 이런 류를 돌멩이는 '선택적 갑질 조절 장애'라고 불렀다. 돌멩이에게 '왜 자기 친구에게 갑질을 했냐'라고 갑질을 해댔다.
돌멩이는 한껏 대들어 봤지만 결론은 중독물질 소환이다. 돌멩이에게 한 없이 나긋한 중독물질들은 최후의 순간이 올 때까지 을의 소임을 다한다. 어느 담배 한 개비도 왜 자기를 중간에 껐냐고 항의하지 않고, 남에게 줘도 불평하지 않고, 끝까지 피우다 가래침 덩어리에 넣어도 항변하지 않는다. 술 한잔도 한 숨에 들이키든, 여러 번에 나눠 마시든, 먹다가 버리든 시키는 대로 널브러진다. 몸에 들어간 물질들은 위장과 간을 해치지만 거부할 수 없도록 들키지 않게 기술적으로 해를 쌓아둔다. 그리고 아주 조금씩 조금씩 수명과 맞바꾼다.
돌멩이는 수제비에게 카톡을 남긴다.
"오늘 늦어"
수제비는 답장한다.
"ㅇㅇ"
긴 설명도 녹아 내리는 고백도 질책도 없는 사막같이 건조한 카톡. 이렇게 돌멩이와 수제비의 일상이 흐른다.
책을 쓰겠다는 돌멩이가 언제 첫 장을 시작할지 아무도 모른다. 돌멩이도 모르는데 독자가 알리 없다. 글쓴이도 모르는데 수제비라고 알까. 저자가 몰래 귀띔을 해준다. 얼마 전에 댓글이 달렸는데 째지게 글을 잘 쓴다는 댓글을 보고 돌멩이의 입이 째졌다고... 그래서 아냐고? 아니 아무도 모른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