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by 간질간질

돌멩이는 책을 내기로 마음먹었다. 누가 내주겠다고 한 건 아니지만 자기 이름으로 된 책을 내겠다는 목표를 스스로에게 부여했다. 그다음 할 일은 무엇일까? 벌써 벽이다. 해법으로 조상의 지혜를 빌어 온다. '금강산도 식후경' 우선 뭔가 먹기로 한다. 무엇을 먹을까 새로운 벽을 만났다. 보통의 월급쟁이와 같은 깊은 고민에 빠졌다.


수제비는 어떻게 돌멩이의 희망을 상처 주지 않고 막을지 진지하게 고민 중이다. 책을 낸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돌멩이는 모른다. 그렇다고 무조건 막을 수는 없다. 연예인이 되고 싶어서 안달인 아이들에게 명확하고 직설적으로 '넌 되기 어려우니 하지 말아야 한다'라고 말할 용기를 가진 부모는 없다.


돌멩이는 밥을 먹고 나서 배가 부르니 여유를 찾았다. 일단 잘하는 걸 해보기로 했다. 보고서 쓰기. 사무직 직장인들의 돋보이는 장점은 보고서 쓰기다. Task를 객관적으로 바라보기 위한 수단이기도 하지만, 나는 할 일을 다 했으니 이후 결정은 보고서를 읽고 '승인'한 당신들 책임이라는 것을 알려주기 위한 수단으로 더 많이 사용된다. 그래서, 보고서는 결론이 명확한 듯하면서 모호하고, 온갖 조건과 가정이 들어있지만 그럴듯해 보인다. 장밋빛으로 칠해져 있지만 온통 가시 투성이다. 어떻든 결론은 항상 같다. 난 할 만큼 했으니 당신이 결정해.


수제비는 글로 먹고살았다. 글로 먹고 산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안다. 돌멩이가 글로 먹고 살 생각을 하는 것처럼 글쓰기를 참 쉽게 생각하는 것도 우습다. 마치 회사를 그만두면 '택시 운전이라도 하지'라고 말하는 것과 비슷하다. 택시 운전은 운전면허증이 있다고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글쓰기도 마찬가지다. 한글을 알고 자판을 두들길 줄 안다고 글로 먹고살 수 없다. 세상 모든 일이 그렇다. 아는 것과 실행하는 것이 다르고, 실행하는 것과 성공하는 것도 다르다. 수제비는 깊은 호흡을 한다. 노트북 액정에 김이 서릴 만큼 깊고 짙은 숨이다.


돌멩이는 일단 숫자를 뽑아본다. 그동안 썼던 글의 데이터를 모은다. 보고서의 핵심 중 하나. 나에게 유리한 데이터는 잘 보이게 만들고, 불리한 데이터는 말하지 않아야 한다. 유리한 데이터가 있는지 뽑아본다. 전체적인 조회수. 처참하다. 두 자릿수의 조회수는 숨 쉬는 것만큼이나 당연한 일이다. 죽은 사람이 아니라면 숨은 붙어 있듯이 글을 팔아서 먹고 살려면 읽어주는 독자수가 두자릿수는 되어야 한다. 사실, 두자리수는 죽은것이나 다름없는 수준이다. 돌멩이가 쓴 글의 조회수는 죽지 않았다면 냉동인간이 분명한 상황의 호흡수만큼이나 낮다. 살아있지만 죽을 날을 받아놓은 것이라 말해도 반박하기 힘들 정도다. 숨만 붙어 있는 사람이 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딸 것이라 믿고 돈을 배팅 할 사람은 우주 어디에도 없다. 그 정도는 안다. 돌멩이는 다른 데이터를 찾아본다.


수제비는 최근 '소설 쓰시네'라고 말한 법무부 장관의 사건이 떠 올랐다. 누구나 쉽게 내뱉는 말이다. '소설 쓰고 있네'. 거짓말하지 말라는 우회적인 표현. 이걸 가지고 소설가 협회에서 '공개사과'를 요구했다. 소설가 협회답게 화려한 문장을 구성했다. '허구'와 '거짓말'을 구분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하지만, '소설 쓰고 있네'라는 말을 하는 모든 국민들에게 사과를 요구하지는 않는다. 아마도 말한 사람이 고위공직자이기 때문 인 것 같다. 돌멩이가 책을 내겠다고 글을 쓰면 소설일까? 그 소설은 허구일까? 거짓말일까? 아니다. 돌멩이는 책을 내면 그림이 들어가는 것을 만들고 싶다 했으니 아마도 동화책이 될 거 같다. 돌멩이가 동화책을? 또 한 번 노트북 액정이 뿌옇게 변할만큼 깊고 짙은 숨을 내뱉는다.


돌멩이는 구독자를 살펴봤다. 조회수가 높은 글을 많이 가지고 있는 사람들일수록 구독자가 높다. 돌멩이는 그동안 구독자를 신경 쓰지 않았다. 구독자도 돌멩이를 신경 쓰지 않았다. 구독자수 5명. 수제비도 구독을 하지 않는다. 구독자 다섯 명에게 진심으로 축복을 기원하면서 다른 데이터를 찾기 시작했다. 수제비에게 구독을 시키면 그래도 6명은 될 것이라 계산했다. 그럼 가짜 계정을 하나 만들어서 7명. 그래도 두 자릿수 구독자를 만들려면 3명이 부족하다. 다른 데이터를 찾아본다. 길이 여러 갈래라 힘든 것도 있지만, 돌멩이는 하나라도 길을 찾아야 한다.


협회라는 단어가 수제비에게 주는 느낌은 부정에 가깝다. 개인적인 경험이겠지만 '협회'라는 말이 주는 무게감은 신뢰보다 압박에 가깝다. 협회는 기본적으로 이익집단이다. 협회는 어떤 고상한 이야기로 포장을 해도 결국 같은 일을 하는 사람들의 이익을 극대화하기 위해 뭉친 모임이다. 그렇기에 협회는 기본적으로 이익에 민감하고, 주장함에 있어 편향적이며, 개인은 숨긴 체 집단행동에 익숙하다. 최근 많은 이슈를 만들어 내는 개인이 있지만 집단 중엔 협회가 많다. 지난 경험 중에 하나. 수제비가 커피 관련 취재차 커피 매거진을 만드는 곳을 방문했었다. 그 자리에서 '바리스타'자격증에 대해 물어봤지만 영 대답이 시큰둥했다. 나중에 알게 되었지만 수제비가 호감으로 던진 바리스타 자격증을 주는 협회는 커피 매거진을 만드는 집단과 대립하고 있는 곳이었다. 전문가 집단인 협회와 협회가 부딪히면 가장 아이러니한 일이 서로가 상대방을 '비전문가'라고 주장한다는 점이다.


돌멩이는 한참을 뒤지다 결국 하나의 지표를 찾아냈다. 아니, 발굴했다. 총 조회수 대비 좋아요의 비율. 글당 평균 '좋아요'비율이라고 부를 수 있다. 돌멩이의 주장은 자신의 글을 사람들이 매우 좋아한단다. 근거가 바로 글을 읽은 사람의 숫자인 조회수 중 50%가량이 좋아요를 누른다는 것이다. 자기의 글이 아직 알려져 있지 않지만 알려지기만 하면 - 출판만 해주면 - 50%의 사람은 좋아할 수밖에 없다는 '데이터에 기반한 근거'라는 주장이다. 몇 번의 조회수가 발생했는지는 말하지 않고 계속해서 50%, 절반만 주장한다. 습관적으로 글을 읽고 '좋아요'를 누르는지에 대한 분석도 없다. 주장을 돕는 데이터가 아니면 모두 배척이다. 돌멩이는 해당 자료로 PPT를 열고 기획서를 쓰기 시작했다. 월급쟁이들 특히나 책상에 앉아서 문서를 만드는 분야의 사람들은 서류를 잘 만든다. 회사에서는 통하지만, 시장에서는 통하지 않는다. 다 알고 있는 사실을 월급쟁이들만 모른다.


수제비는 돌멩이의 글을 좋아한다. 하지만 돌멩이의 글 묶음을 사서 볼 생각은 없다. 수제비가 취재차 만났던 사람 중에 우리나라 제일의 대형서점에서 디지털 일을 하던 본부장이 있다. 본부장은 입이 걸었던 사람이다. 전자책 시장이 열리자 제일 먼저 수익을 가져다준 것은 일종의 장르물이었다고 한다. 장르물이라 하니 뭔지 모르겠다면 '성인물'을 에둘러 말하는 거다. 수제비가 종이책으로 만들면 더 잘되는 거 아니냐고 물었다. "이런 쓰레기 같은 걸 종이책으로 만들면 나무에게 미안하죠! 하하하" 본부장은 명료했다.


돌멩이는 수제비를 앞에 두고 장황한 PT를 시작했다. 자신의 글이 얼마나 훌륭하며, 진흙에 묻혀 있는 진주 같기에 누군가 진흙이 손에 묻는 사소한 번거로움을 감내하면 큰 보물을 얻게 될 것이라는 주장이었다. 수제비는 돌멩이의 책을 내 줄 출판사는 없으며, 자가출판을 고려하는 것이 좋지 않겠냐는 생각이 들었지만 직접 말하지는 못했다. 길고 지루하고 자기도취 가득한 돌멩이의 PT가 끝났다. 수제비는 상기된 얼굴로 피드백을 기다리는 돌멩이에게 무슨 말을 할지 잠시 머뭇거렸다. 그리고 조심스럽게 입을 뗐다.


"돌멩아. 나무 좋아하지?"

돌멩이는 당연하다며 고개를 끄덕인다.

"나무에게 해 끼치지 말자"

"난 그런 적 없는데?"

"알아. 앞으로도 그러자고"

수제비는 멋쩍게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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