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대쪽 사람을 그린다고 생각해봐''
돌멩이가 입을 뗐다. 이번에도 난자와 정자 이야기인가? 지난번 바퀴벌레를 맨손으로 찍어 죽이듯 같은 마음가짐으로 돌멩이의 등판과 뱃살에 나한장을 날려주었더니 한동안 눈에 띄게 줄어들었는데. 오늘은 금요일. 수업시간에 얌전하던 중고등학생들이 쉬는 시간 종이 울리면 밥그릇을 앞에 둔 강아지마냥 도시락을 거칠게 풀어 재끼고 밥을 처먹듯, 직장인들은 금요일 저녁이 되면 착한 직장인 거죽을 미친 듯이 풀어헤치곤 오덕의 자아를 뽑아내지 않던가. 금요일 저녁이니 직장인인 돌멩이의 뇌에 얼마나 많은 아드레날린이 뿜어져 나올까 싶어 그냥 두고 보기로 한다.
주 5일 근무제는 1998년 노사정협의회에서 3년에 걸쳐 난상토론을 거친 후 2002년부터 시행, 2004년 7월부터는 알만한 기업들이 도입을 했다. 벌써 15년도 넘은 세월. 일주일에 6일을 회사에 나갔다는 것을 알지도, 상상도 못 할 시간이다. 사실, 주 6일제와 주 5일제 사이에 격주 토요일 휴무제라는 변종의 기간이 있었다. 90년대 후반 IMF 직전에 도입된 제도였기에 꼰대들은 그때도 지금도 회사에서 엉덩이를 붙이고 있지 않으면 나라가 망한다고 주장한다. 엉덩이를 빨리 떼서 망한 나라가 궁금하다. 꼰대들은 의자를 떼고 달아난 사람들에게 카톡이란 족쇄를 채워놓곤 만족해한다. 아무튼, '라때 월드'의 네버엔딩 스토리들.
돌멩이를 비롯 회사에서 임금을 받는 노동자들의 피는 금요일 오전이면 예열되기 시작해 퇴근과 함께 끓어 오른 후 회사 문을 나서면서 폭발한다. 보통 사람이면 냄비 뚜껑이 넘치는 정도, 곱게 자란 사람도 압력밥솥의 증기 배출 정도는 한다. 가장 미친 부류가 돌멩이 같은 류다. 따지 않은 2.0리터짜리 콜라를 미친 듯이 흔든 다음에 뚜껑을 따버리는 짓. 순간적으로 콜라를 장렬히 흩뿌리며 불금을 맞이한다. 평소라면 지금쯤 정신줄을 놓은 돌멩이는 계속해서 돌 부딪히는 소리를 내고 있을 테지만 조용하다. 미친개에겐 몽둥이가 약이라는 말이 맞다. 몽둥이의 물리적 속도가 만들어내는 에너지의 강렬한 기억을 잊지 않은 돌멩이는-정확히는 돌멩이의 등짝과 배짝이 돌멩이의 찾기 힘든 뇌에게 살려달라 매달렸겠지만- 지금 막걸리의 김을 빼듯 뚜껑을 수저로 퉁퉁 두들기는 말 걸기를 하는 중이다. 미친 듯이 뿜어낼지 아니면 살살 김을 뺄지 돌멩이의 조약돌 뇌는 바쁘게 움직인다.
''어떻게 그릴래?''
대답이 없는 잠시를 견디기 힘든 듯 돌멩이는 재차 묻는다. 빨리 김을 빼내 든, 폭발을 하든 해야 할 텐데 시간이 흐르니 오줌보가 터질 듯한데 화장실 문을 열어주지 않는 상황에 처한 것 같다. 대체 내가 왜 그려야 하는지가 더 궁금했지만 참는다. 미치기 직전의 사람은 사람이라 보면 안 된다. 사람의 형상일 뿐이다. 게다가 돌멩이는 바퀴벌레와 우열을 가리기 힘든 지적 생명체가 아니던가. 피하는 게 낫다. 돌멩이의 머릿속에서 땅콩 뇌가 요란하게 움직인다.
''너는?''
경륜이 담긴 되받아 치기. 애매할 땐 상대방에게 되묻는 게 최고.
''내 앞에 꼿꼿하게 서 있으면서 날 노려보는 거. 보통 그렇게 그릴 거 같지 않아? 영어로는 against''
'얼쑤! 꼴에 영어는. 게다가 그럴듯한...' 속내 대신 고개를 끄덕이며 ''그렇겠네''라고 짧게 던졌다.
''이건 어때? 나하고 딱 붙어서 등지고 서 있는 거야. 영어로 back''
'지화자! 영어를 두 번이나. 게다가 그럴듯하게. 두 번이나!' 눈을 약간 크게 떠주며 ''그럴 수도 있겠다'' 답했다.
반려견을 키우거나 말 못 하는 아이들과 대화하는 법은 표정을 풍성하게 하는 것이다. 표정은 백 마디의 말보다 때로 훨씬 더 강렬하다. '사랑한다'라고 말하는 것보다 눈을 떼지 않고 쳐다보는 것이 더 진실되다. 말에는 마음을 담기 힘들지만 표정에는 마음이 담긴다. 사람의 몸에 깃든 영혼은 혀보다 표정으로 더 잘 빠져나간다. 영혼의 울림인 마음도 그렇게 표정으로 더 빨리, 깊게 보내진다. 이번 표정에 '마음'은 담겨있었다. 정확히는 '감탄'의 마음이다. 훌륭하다는 것이 아니라 살다 보니 별 희귀한 장면을 보게 되었다는 놀람의 감탄.
''뭐가 더 짜증 날까? 뭐가 더 반대쪽일까?''
'너!'라고 말하고 싶지만 삼킨다. 불금의 시간에 들어간 돌멩이를 터져버리게 만들 날카로운 말은 삼가야 한다. 터져버린 돌멩이의 광기를 잠재우는 시간과 에너지와 지겨움이 싫기 때문이다.
"지구 '반대쪽'이라고 말할 땐 aginst? back? 어떤 경우야?"
바늘로 찌르지 않고 프레스로 지긋이 그러나 강하게 눌러줬다. 터져선 안된다. 돌멩이의 불금이 시작되어서는 안 된다. 북반구의 사람들은 남반구의 사람들이 거꾸로 매달려 있다고 생각한다. 북반구는 정상이고, 남반구는 뭔가 이상하다는 지극히 자기 위주의 생각일 뿐이다. 세계지도의 한가운데를 차지하는 바다가 극동 아시아인들에게는 태평양이겠지만 유럽과 북미의 사람에게는 대서양인 것과 같다.
돌멩이가 움찔했다. 순간 돌멩이가 준비하던 '불금의 거품'이 조용히 가라앉고 있는 것이 보였다. 돌멩이의 커다란 머리에 그어진 두 개의 눈이 종이 두장만큼 크기로 벌어졌다 닫히면서 김이 새 나갔다. 불금의 거품은 사라졌다. 돌멩이의 난동 부리던 조약돌 뇌가 빠르게 안정화되면서 새로운 빛을 향해 달리는 것이 보인다. 돌멩이의 커다란 머릿속을 돌아다니는 뇌는 다닐 곳이 많아 좋겠다.
''넌 천재야!''
돌멩이는 거품이 빠진 얌전한 본래의 모습으로 돌아갔다. 조용히 자기의 방문을 열고 사유의 세계로 들어간다.
수제비는 평화롭게 책을 펼친다. 평화의 불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