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멍

by 간질간질

밥그릇을 앞에 둔 강아지보다 빠른 종종걸음으로 화장실을 들락거리던 돌멩이가 뭐라고 웅얼거린다. 나이가 들면 몸이 제 기능을 못하는 것이 자연의 섭리라지만 최근엔 화장실에 들락거리는 일이 빈번해지고 있다. 게걸스럽게 먹는 스타일도 아닌데 스트레스로 인한 과민성 대장증후군 때문이라 여겨진다. 코로나 19로 얼어붙는 경기로 회사에서 실적 압박이 심한 때문일 거다. 평소라면 돌멩이 입에서 '돌 부딪히는 소리'가 나오자마자 무서운 표정으로 '닥치고 삼켜!'라는 신호를 보냈지만, 요즘엔 카페에서 들리는 백색소음이려니 하는 마음으로 너그러이 넘기고 있다.


혼자 들어간 화장실에서 불쾌한 천둥소리와 더불어 하수도 터진 소리가 들린다. 천둥 소리야 우렁차지 불쾌하지는 않을 테고 하수도가 터진 것도 아니다. 돌멩이의 몸 한쪽 귀퉁이를 뚫고 쏟아져 나오는 액체의 분출 소리다. 수제비는 중국 소설이 떠올랐다. 온갖 구멍에서 피를 토하고 죽었다는 이야기. 만약 돌멩이가 분출하고 있는 것이 몸속의 피라면 얼마나 살 수 있을까라는 궁금함이 생겼다. 가볍게 고개를 저었다. 궁금하다고 돌멩이가 피를 싸도록 바라는 것은 아니니까. 몸의 구멍에서 피를 토하고 죽는 장면은 가장 유명한 소설 중 하나인 '삼국지'에도 등장한다. 관우를 사로잡아 죽게 만든 여몽의 최후.

"나는 황건적을 쳐부순 뒤로 삼십여 년이나 천하를 거침없이 종횡했다. 그런데도 네 놈은 하루아침의 간사한 꾀로 나를 해쳤구나. 비록 살아서 네놈의 고기를 씹지는 못했다마는 죽은 이제라도 여몽 이 도적놈의 넋은 데려가야겠다. 나는 한수정후 관운장이다"
그 소리에 더욱 놀란 손권은 황급히 장수들을 이끌고 계단 아래로 내려가 엎드렸다. 그러자 여몽은 갑자기 뒤로 자빠지더니 몸의 일곱 구멍으로 한꺼번에 피를 쏟고 죽었다. 그 끔찍한 광경에 모든 장수들은 한결같이 두려움으로 몸을 떨었다.
아마도 이 일은 민간에 떠도는 관공의 전설을 '연의'를 지은 이가 그대로 받아들인 듯하다. 여몽이 형주를 차지한 뒤 얼마 안 돼 원래부터 시달리던 병이 도져 죽자 생겨난 민간의 수군거림이 부풀려져 이루어진 전설이었다.
<삼국지, 나관중 지음, 이문열 평역, 민음사 8권>

소설에서는 '일곱 구멍'이 나온다. 온갖 기괴함과 그로테스크함이 가득한 무협소설에 등장하는 전문용어(?)들은 한자로 이루어져 뭔가 그럴듯해 보인다. '수리수리 마수리'처럼, '아브라카다브라'처럼. '운기조식', '만년한철'같이 모양만 사자성어인 '칠공분혈'이란 단어가 몸의 일곱 구멍에서 피를 토하고 죽는 경우를 말한다. 일곱 개의 구멍이라고 했지만 아홉 개라고도 한다. 아홉이라. 얼굴이 제일 많을 테니 세어본다. 눈구멍 두 개, 콧구멍 두 개. 귓구멍 두 개. 그리고 뚫린 입 구멍 모두 7개다. 남은 것은 두 개. 하나는 똥구멍. 그리고 하나는 소변 구멍. 수제비의 의식은 다음으로 흐른다.


진지한 척 좋아하는 남자들 중에 여자에게는 구멍이 하나 더 있으니 열개라 주장하기도 한다. 이렇게 말하면 논리적으로 보인다고 생각하는 것일까. 소수는 진지함이겠지만, 대부분은 '구멍'에 환장한 수컷들이 돌려 말하는 19금 이야기일 뿐이다. 남자들의 아닌 척, 고상한 척하는 뽐새들을 보고 있으며 호색한이 정장을 빼 입은 채 자신의 덜렁거리는 물건을 지퍼 밖으로 흔들고 다니는 것 같다. 실제로 벌어질 수 있다는 사실을 사회 지도층 인사가 증명해 보였다. 누가 붙인 칭호인지 몰라도 '사회지도층'이란 판사님께서 자기 물건을 내놓고 다니다 경찰에게 잡힌 사건은 10년도 되지 않은 우리나라 제주도에서 벌어진 일이다. '구멍'이란 단어를 피하려는 의도인지, 더 적나라한 의식을 보여주려는 건지 몰라도 윗입, 아랫입으로 열 번째 구멍을 부르기도 한다. 이렇게 따지려면 수백만 개의 땀구멍은 대체 뭘까? 머리에도 수백만 개의 모공이 존재한다. 모공은 말 그대로 털구멍. 땀구멍과 털구멍이 같은 것인지 다른 것인지에 대한 토론 없이 그저 생식기에만 몰두하는 남자들의 오래되고 뻔하고, 지루하고 그들만 좋아하는 이야기다.


남자들의 윗구멍에 자기들의 물건을 물려주면 지저분한 이야기가 덜 새어 나올까? 수제비는 피식 웃으면서 고개를 저었다. 자기의 물건으로 자기 입을 틀어막을 만큼 크기를 가진 사람은 없기 때문이다. 그토록 크기에 집착하는 남자들인데 자기 얼굴에서 가장 큰 구멍 하나 막을 수 없다는 사실을 부끄러워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담뱃갑에 부착된 금연 사진 중에 하나가 담배를 남성의 물건에 빗댄 것이다. 담배를 계속 피우면 아래로 축 처질 것이라는 암시를 보여준 것이 의외로 효과가 좋았다. 특히 중년의 아저씨들은 '그거 말고.. 다른 것으로'라며 피했던 사례를 흡연실에서 종종 나눈다.


수제비의 상상은 계속되었다. 남자들이 아래쪽에 달려 있는 힘 빠진 담배를 입에 물기 위해 낑낑대는 장면. 담배 개비를 입에 문채 '내 것이 가장 크다'라고 자랑하는 모습이 머리에서 떠 올랐고 기괴함과 우스꽝스러움에 낄낄거렸다. 더 생각해 보면 기름 낀 뱃살로 둘러쳐진 거대한 배를 가진 남자들은 자기 물건을 절대 입에 넣을 수 없을 터였다. 아니, 사람의 신체구조로는 불가능할 것이다. 굽혀지지 않는 허리에 힘주느라 핏줄이 튀어나오고 검붉게 달아오른 얼굴의 남자들이 가득한 장면에 다다르자 수제비는 '하하하하' 참지 못하고 크게 웃고 말았다.


몸의 구멍에서 수 차례 액체를 분출시켜 얼굴이 허옇게 질린 돌멩이가 화장실 문을 빼꼼 연다. 갑자기 문 밖에서 낄낄거리는 수제비가 왜 그런지 궁금했기 때문이다. 수제비는 설명 없이 문을 닫으라 턱짓을 했다. 돌멩이와 막역한 사이라고 해도 돌멩이의 몸에서 분출된 액체의 냄새를 즐길 변태는 아니다. 비록 수제비의 머릿속은 변태스러운 상상으로 가득하지만 말이다. 아뿔싸, 빵꾸가 날지 모르는 가계 재정에 대해 돌멩이와 이야기를 해야 하는 것도 기억났다. 구멍 뚫린 몸에, 구멍 뚫린 가계부에, 구멍 뚫린 하늘의 비가 내리면 딱 어울리겠다. 수제비는 코로나 19로 움직이지 않는 사람들 때문인지 오염없이 예쁜 5월의 하늘이 좋아 괜히 창밖만 바라보고 앉아있다. 습관처럼 틀어 놓은 TV에서는 이태원 클럽으로 구멍 뚫린 방역 이야기가 계속 나오지만 아무것도 들리지 않는다.


희멀건한 돌멩이가 패잔병처럼 화장실을 나온다. 뭐라도 먹어야겠지만 밥은 부담스러워할 것 같고 죽을 만들기는 귀찮다. 수제비는 냉장고에서 두유 하나를 꺼내 친절하게 빨대까지 꽂아서 돌멩이에게 건넸다. 돌멩이는 두유를 받는다. 그러더니 빨대를 뽑아 들고 기빠진 목소리로 이야기를 한다.


"여기 빨대가 있잖아. 빨대에는 구멍이 몇 개라고 생각해? 하나일까? 두 개일까?"


얼마 전에 외국 커뮤니티에서 열띤 토론이 벌어졌던 주제다. 빨대에 구멍이 있는 것은 모두가 동의하지만, 구멍은 몇 개라고 해야 할까? 양쪽이 뚫려 있으니 두 개? 연결되어있으니 한 개? 수제비는 아무 말 없이 자기가 먹을 두유를 챙겨서 방으로 들어갔다. 돌멩이가 죽을 만큼 아프지 않다는 것을 수제비는 확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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