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네북

by 간질간질

2021년이 되고 나서도 넉 달이나 지나간다. 코로나는 잡힐 듯 잡힐 듯 다시 살아난다. 새해가 되면 정치 이벤트 중에 하나가 대통령 신년 기자회견이다. 기자회견에도 별 감흥이 없다. 그냥 대통령은 이야기를 하는 것이고, 기자들은 이때다 싶어서 하고 싶은 말을 지껄이는 것이다. 우리나라 언론의 신뢰도가 세계 최하위라고 말해봤자 기자들이 인식 할리도 없고 변할 리도 없고 무엇보다 기자들의 기사를 마음 깊이 새길 리도 없다. 지나가던 차에서 경적소리를 한번 낸 것이라 치거나, 비 오는 날 지나가던 차에서 물이 좀 튀겼다고 생각할 일이다. 죽겠다고 질문하는 것도 아니고 죽겠다고 목매다는 것도 아니고 그냥 귀찮을 뿐이다. 좀 조용하면 좋겠고 영양가 있는 이야기를 하면 좋겠다는 생각뿐이다. 서울시와 부산시 선거도 지났다. 별 감흥이 없다. 커뮤니티에서 읽은 글 중에 돌멩이와 수제비의 감성을 건드리는 문구가 하나 때문에 투표는 꼭 한다. 자신의 투표와 결과에 상관없이 투표를 한다.

“정치를 외면한 대가는 가장 저질스러운 인간들에게 지배당한다는 것이다”
(One of the penalties for refusing to participate in politics is that you end up being governed by your inferiors) -플라톤

이 말을 실제 플라톤이 했는지, 플라톤이 말한 의도가 '민주주의를 옹호하고 참여를 독려'하는 것인지는 알 수 없다. 그리고 알 생각도 별로 없다. 블랙유머로 수제비가 가장 좋아하는 커뮤니티 밈 중에 하나가 미국의 대통령 링컨의 사진 옆에 '인터넷에 유명인들의 사진과 글이 있으면 그대로 믿는 것은 바보 같은 일이다'라고 써 놓은 것이다. 아주 낮은 단계의 fake다. 링컨이 살았던 시기엔 인터넷이 아니라 컴퓨터도 없었기 때문에 이 밈 자체가 거짓이지만 상관없다. 죽자살자 '그거 아닌데! 틀렸는데!'라고 떠들어봤자 사람들은 그래서 뭐라며 심드렁하다.


최근에 돌멩이는 동네북의 유래에 대해서 한참을 떠드는 중이다. 동네북은 만만해서 이 사람 저 사람 건드리는 존재를 비유하는 말이다. 요즘 대통령과 여당을 보면 딱 그렇다. 모두가 건드린다. 야당이 건드리는 것이야 당연한 일이고, 언론이 건드리는 것이야 항상 하는 짓이려니 싶은데 이제는 검찰과 법원도 건드리고, 태극기 부대라고 하는 노인들도 건드리고, 일베 하는 젊은이도 건드리고 선거 결과로 보면 집을 가진 사람도 집이 없는 사람도 남녀평등을 주장하는 여성도, 남녀평등에서 불이익을 받는다는 20~30대 남성들도 건드리고, 누구나 건드린다. 맞을 짓을 해서 맞는 것인지, 맞는 말을 했는데도 맞는 것인지 알 수 없다. 수제비는 관심이 없다. 누군가 나를 때려서 내가 맞는 것이 아니면 크게 신경 쓰지 않는 전형적인 개인주의자다. 시니컬하고 염세적이다. 아니, 버겁게 살아가기에도 힘든 소시민으로 나한테 불이익이 없으면 감정을 드러내지 않는 사람 중에 하나일 뿐이다.


돌멩이가 네X버에서 찾은 근거에 따르면 - 옛날 개그맨이었던 사람이 방송에서 설명했던 화면을 캡처한 것이니 네이버라고 볼 수 없지만 - 옛날에는 모든 동네에 사물놀이를 위한 기구가 있었다고 한다. 사물놀이는 네 가지의 악기를 가지고 하는 것이니 네 개의 악기가 등장한다. 징, 꽹과리, 장구, 그리고 북. 이 중에서 북은 기술이 필요 없었기 때문에 가장 먼저 북채를 잡는 사람에게 맡겨졌다고 한다. 여기서 돌멩이는 장구와 꽹과리까지는 기술이 있을 것 같다고 인정하지만 징이 뭐 그리 대단한 기술이 필요하냐고 목소리를 높였지만 수제비는 가볍게 무시했다. 아무튼 누구나 손쉽게 건드릴 수 있는 존재가 동네북이었다는 설명이다. 돌멩이는 설명하면서도 자기는 징이 더 쉽다고 생각하며 북이 얼마나 섬세한데 함부로 북을 능멸하냐고 침을 튀겼지만 거대한 한 방울의 침이 수제비 이마에 떨어지는 순간 진압됐다. 돌멩이의 이론은 소수 이론으로 받아들여졌고, 수제비의 이마에 떨어진 침을 물수건으로 닦겠다고 아양을 떨다 오히려 더 맞았다. 북치는 느낌이 이럴 것이다 라는 생각에 수제비는 짜릿했다.


진압된 돌멩이의 소심한 주장은 계속됐다. 닭 모가지를 비틀어도 새벽이 온다는 거대한 비유를 몸소 실천하는 가여운 돌멩이. 돌멩이의 요지는 만만하기 때문에 동네북이라 불린다는 것이다. 몸은 움츠렸지만 눈에서 레이저를 쏘며 진지하게 또 하나의 가설을 세운다. 징이 더 쉽다고 생각하지만 왜 북이 만만한 상징이 되었을까? 징이야 말로 대충 때려주면 되지 않나? 소의 가죽을 씌워 만든 북이 얼마나 섬세한가? 판소리에 등장하는 고수. 그이는 가죽과 북 테두리를 나무 막대기로 쳐 가며 온갖 섬세한 소리를 만들어 내고, 창을 하는 사람의 박자를 맞춰주고, 적절한 추임새로 사람들의 몰입감을 증폭시키는 전문가다. 전문가가 다루는 섬세한 악기인 북의 위상이 이렇게 된 까닭은 사회 구조적 문제가 내포되어 있다고 주장했다. 수제비는 얼핏 호기심이 들었다. 얼마나 지껄일지 좀 더 두고 보기로 했다.


돌멩이가 떠드는 북의 비참한(?) 처지에 이르는 이야기를 듣자니 비장하기까지 하다. 돌멩이는 팝콘을 먹으면서 즐길 할리우드 무비 속 주인공이 아니라 관객들도 얼마 없는 곳에서 모든 극을 독백으로 끌고 나가는 연극배우처럼 보인다. 돌멩이는 둔탁하게 목을 가다듬고 시작한다. 돌멩이의 주장에 따르면 징이 더 쉬운 악기였지만 사람들이 북채를 잡아야 하는 이유가 따로 있었단다. 그건 암묵적으로 사람들 사이에 퍼져 있는 규범이나 법률과 같은 상징성이라는 주장이다. 징은 어른이 잡아야 한다는 사회적 합의. 징은 다루기 쉽지만 처음과 끝을 마무리하는 상징성을 갖는 악기였기 때문에 누구나 잡으면 안 된다는 주장이다. 돌멩이가 예로 든 것은 초등학교 교장선생님의 훈화 말씀이었다. 누구나 말을 할 수 있고 아무도 듣지 않지만 교장선생님 훈화는 상징으로 박혀 있는 월례조회의 꽃이었기 때문에 누구도 침범할 수 없는 영역이라는 주장. 징은 그처럼 적당한 무게감과 소리 때문에 아주 쉬운 악기지만 어른이 쥐어야 한다는 사회적 합의에 보호받고, 대신 북이 만만한 것이 되었다는 주장이다. 슬슬 지루해졌다. 돌멩이도 알아챘다. 다루기 만만한 것은 징과 북이었지만 합의하에 징은 건드리면 안 되는 고귀한 것이 되었고, 북은 누구나 건드려도 되는 만만한 것이 되었다는 주장에 돌멩이는 스스로 감격해했다.


동네북이 되기 위한 여러 조건이 있다고도 했다. 난도와 상관없이 누구도 시비를 걸지 않아야 동네북이 만들어진다는 거대하고 암묵적인 합의. 징채를 쥐면 여기저기서 눈짓으로 말로 손으로 소매를 잡으며 네가 할 일이 아니라고 압박을 하지만 북채는 누가 잡아도 그냥 둔다. 핵심은 그거다. 아무도 뭐라 하지 않는다는 것. 그래서 사람들은 그냥 잡고 두들기는 것이다. 대다수 구성원의 암묵적인 동의. 나는 상관하지 않겠다는 무관심이 동네북을 만든다. 그리고, 북은 원래 그런 것이라는 동의. 그게 핵심이다.


또 하나의 조건이 있다. 동네북은 스스로 반항하지 않아야 한다. 치면 치는 대로 소리를 낸다. 북소리가 명징한지, 울림이 있는지 보다 소리를 내는지 여부만 본다. 소리를 내면 사람들은 더욱 미친 듯이 북을 쳐대고, 소리를 안내면 찢어지도록 북을 두들긴다. 결국 북은 소리가 나도록 맞거나 찢어지도록 맞게 된다.


세상의 만만한 사람들은 이렇게 만들어진다. 미친 듯이 기사를 써대는 기레기들이 존재하는 이유도 암묵적 동의다. 그냥 북으로 정해지는 순간 누구나 때려도 되고, 북은 누가 때려도 맞아야 한다는 역할 때문이다. 기레기들의 역할은 누구보다 빨리 북채를 잡고 북을 두드리는 전문가로 스스로 인정하기 때문이다. 옆에서 그건 잘못된 거라고 얘기하지 않는다. 일부가 그렇게 말해봤자 반사회적이며 반 동네적이고 반 지구적인 반동분자일 뿐이다. 그래서, 북을 때린 사람은 죄책감을 갖지 않는다. 열심히 때리는 것이 그의 당연한 권리가 된다. 하지만, 징은 다르다. 누군가 징을 때리면 주위에서 잘못됐다고 얘기한다. 징을 때리면 왜 안되냐고 따지는 것은 반 사회적이며, 반 동네적이고 반인류적인 반동분자일 뿐이다. 징은 손대지 않는 것이 당연한 의무가 된다.


돌멩이는 동네북에 대한 자신의 의견을 북소리 내듯 둥둥거렸지만 그 울림은 수제비의 고막을 떨리게 하는 것으로 끝났다.


수제비는 동네북의 이야기보다 플라톤의 명언이라는 글이 더 궁금했다. 돌멩이를 진정시켜서 방에 들여보내고 노트북을 열었다. 구글링을 한다. 광고와 온갖 이모티콘으로 가득한 콘텐츠를 주로 보여주는 네이버보다 구굴의 검색을 더 믿기 때문이다. 누군가 정리를 해서 기사까지 냈다. 여전히 맞는 것인지는 알 수 없다. '기사는 믿을 수 있는가?'라는 질문에 자신 있게 그렇다고 말할 만큼의 신뢰가 기자들에게 없기 때문이다. 결국은 믿고 싶은 대로 믿으면 된다.

#동네북 #돌멩이 #수제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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