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제비는 무신경하다. 주변에 무신경하고 깔끔 떠는데 무신경하고 주위 생물에 무신경하다. 가끔 호기심을 보이지만 그 이상의 감정은 없다.
길거리에서 마주치는 강아지는 네발로 기어 다니는 생물이며, 꼬리를 흔들고 혀를 빼들고 가끔 주위 사람들에게 엉겨 붙고, 가끔 사람처럼 옷을 입거나 유모차를 타고 다니면서 거리에 똥을 싸는 생물일 뿐이다. 개의 구분은 큰 개와 작은 개로 나뉜다. 종류를 알리도 없고 알고 싶지도 않다. 얼마 전에 봤던 최근 유행하는 사전에 등장한 시고르자브종이란 종류만 기억난다. 똥개라 부르는 시골 잡종견을 풀어 써 고상한 종자로 만드는 사람들의 말 만드는 실력에 감탄했을 뿐이다.
길거리에서 마주치는 고양이는 네발로 쫑긋거리는 더 음습한 생물이다. 꼬리도 흔들지 않고 혀를 내밀지도 않고 사람들에게 멀찌감치 떨어져서 관찰한다. 사람 옷을 입은 고양이를 본 기억은 없다. 도도한 짐승답게 많은 인간 집사들을 거느리고 있다. 자발적 복종을 하는 집사들의 존재만 인정한다. 수제비는 개와 고양이 둘 다 관심이 없다. 어느 쪽이 조금이라도 더 예쁘거나 관심 가지 않냐고 물어본다면 자기에게 멀리 떨어져 있는 것이라고 답을 한다.
요즘 수제비에게 관심을 끄는 것은 초파리다. 수제비에게 초파리는 무에서 유를 창조하는 능력자이자, 스티브 잡스보다 더 창의적인 생물이다. 어떻게 생기는지 모르지만 어느새 존재한다. 적어도 우리는 어느새 우리 손에 쥐어진 아이폰과 사과농장의 공산품들이 존재하는 것을 알면서 언제 생겼는지 알고 있지만 초파리는 모른다. 여름이 되면 나온다. 아이폰도 새로운 버전이 보통 2년 주기인데 초파리는 1년마다 나온다. 새 버전인지 헌 버전인지 모른다. 그저 경탄할 뿐이다.
아이폰은 점점 커지고 기능이 좋아지고 있다. 초파리는 최적화된 크기를 자랑한다. 어쩜 그렇게 존재하는 것을 알릴 뿐, 바퀴벌레처럼 심각하게 거슬리거나 모기처럼 사람을 괴롭히지 않는지. 지혜롭다.
초파리의 생산성은 수제비와 돌멩이가 만들어 내는 어떤 생산성보다 뛰어나다. 그 조그마한 몸에서 어쩜 그렇게 커다란 알을 낳는지 불가사의하다. 알이 크기가 커지는 건지 알 수 없지만 초파리는 분명 쌀알 같은 알을 쌀통의 쌀처럼 낳아놓는다. 그들의 생산력은 외계에서 온 종자가 아닐까 싶을 정도다.
가끔 발견하는 알들이 새하얗게 뒤덮일 때까지 수제비는 동거를 선택하지만, 돌멩이는 미친 듯이 모기약인지 파리약인지 바퀴벌레약인지 모를 약을 분사한다. 일회용 비닐장갑을 두 겹 이상 낀 채로 알을 치운다.
수제비는 왜 이름이 초파리인지 궁금해졌다. 백마 타고 오는 초인을 뜻하는 super 파리일까? 그럴 리 없겠지만 어디서나 나타나고 언제나 나타나는 존재에게 어울리는 접두사라는 믿음이 생긴다.
아마도 풀(草)과 관련된 의미의 초파리일 수도 있다. 풀색과는 전혀 다르고 풀밭에서보다 음식 주위에서 발견되는 행동을 볼 때 풀과 어울리지는 않는다. 다음은 식초에 쓰는 초(醋)가 아닐까 싶었다. 모를 땐 검색해 본다. 맞다. 그런데 수제비의 능력으로 찾을 수 있는 것은 거기까지다. 왜 이 글자가 쓰였는지는 못 찾았다. 네이버 검색에도 안 나오고 지식인은 안 봤다. 당최 믿기 힘든 곳이라서. 위키백과에도 없고, 그래도 덕후들이 모여있다는 나무 위키에는 나왔지만 초파리의 능력을 경외하는 글과 생물학적인 내용은 있어도 왜 초파리라고 불렀는지는 안 나온다. 더 찾아볼까 하다가 냅뒀다. 더운데 무슨 돈 나오는 짓도 아니고...
초파리와 동거는 나쁘지 않다. 초파리는 모기처럼 날아다닐 때 소리를 잘 내지 않는다. 움직이는 검은 점이 생겨도 그냥 모른 척하면 된다. 수제비와 같은 성향의 부모님은 더 좋은 팁을 알려주셨다. "비문증이라고 있어. 그거랑 초파리 날아다니는 거랑 다른 게 없더라. 하하하" 자연스러운 몸의 노화로 생기는 비문증이라고 생각하는 순간 초파리의 존재는 사라진다.
자연발생적으로 생겨나는-그렇게 믿어지는-초파리를 잡을 방법은 초파리 트랩도 아니고 신경질적인 방역도 아니고 끊임없이 싸우는 것도 아니다. 그냥 존재를 인정하는 순간 사라진다. 초파리보다 오히려 경악하고 난리 치면 별나게 구는 돌멩이를 처리하는 편이 더 조용하고 안락하다. 돌멩이는 초파리처럼 날지도 못하고 몸을 숨길만큼 앙증맞지도 않고 시끄럽게 말까지 건다. 차라리 초파리가 낫다.
수제비는 날아가는 초파리를 봤지만 비문증의 초기증세인지 아니면 초파리 생각에 헛것을 본 것인지 알 수 없다. 수제비는 만족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