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멩이는 뻔하디 뻔한 직장인의 우울 계곡으로 들어갔다. '직장인의 우울 계곡'은 돌멩이의 증상을 살펴보다 하나의 글 꼭지로 만들려고 수제비가 만들어낸 문장이다. 수제비의 소재 모음 노트에서 일부 문장을 스포일러 해 보면
"직장이란 산에 오르기 위해서 사람들은 수없이 오르락 내리락을 반복하게 되어 있다. 그러다 길을 잃거나 누군가에 의해 떠밀리거나 다리에 이상이 생기거나 할 때 산의 계곡에 빠져들게 된다. 계곡에서 많은 사람들은 쉬기도 하지만 많은 사람들은 산을 떠나기도 한다. 매우 드물지만 영원히 계곡에 갇혀서 죽음을 맞는 경우도 있다"
돌멩이의 계곡 입성은 선배 때문이다. 사람이 좋다. 욕심도 없다. 직장생활을 오래 하고 싶어 하는 단순한 사람이지만 수치로 측정되고 정치력으로 평가받는 조직에서는 만만한 사람일 뿐이다. 그런 선배가 툭 던진 말 때문이다. 임원은 아니었지만 임원 근처까지 갔던 사람인데 밀리고 밀려 이번에 하나 남은 보직까지 떼게 되었다고 한다. 돌멩이에게는 남 얘기가 아니다. 돌멩이 역시 사람이 좋고 욕심도 없고 직장생활을 오래 하고 싶어 하는 단순한 사람이기 때문이다. 시간의 차이만 있을 뿐 언제고 돌멩이에게 똑같은 일이 벌어져도 하나 이상할 것이 없다.
돌멩이는 시뮬레이션을 시작해 봤다. 회사를 그만 두면 어떻게 할 것인가? 굳이 냉정하게 생각해 볼 것도 없었다. 할 줄 아는 것은 직장에서 시키는 일을 잘하는 것과 직장에서 일을 미루고 땡땡이치는 것 말고는 할 줄 아는 것이 없다는 것을 돌멩이가 알고, 수제비가 알고 하늘이 알고 있기 때문이다.
돌멩이는 우선 자기가 할 수 있는 일이 없다는 것을 깨닫자. 도움을 받을 수 있는 사람들을 짜내기 시작했다. 이 사람, 저 사람, 알고 있고 호의적이며, 능력 있는 사람들을 생각해냈다. 그 사람들에게 던질 이야기들을 만들어 봤다. 미드웨이 해전을 감행하기 전 일본의 해군에서는 전투 모의 게임을 했다고 한다. 그리고, 미드웨이와 유사한 결과를 만들어냈다. 일본의 참패. 알고 있었다면 참패를 벗어날 방법을 찾아냈어야 하는데, 하늘이 심장을 가졌는지, 신들이 심심했는지 길을 틀어버린다. 일본 해군의 지휘관은 일본이 참패하는 시나리오를 뽑아낸 부하의 지적에 그런 일은 발생할 수 없다고 뭉게 버리고 만다. 오히려 질책을 하고 가능하지 않은 전제사항을 만들어냈다고 우겼다. 게임은 이겼지만 실전에서는 지게 된다. 처참하게 지게 된다. 돌멩이의 시뮬레이션은 모든 경우의 수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일 준비를 해야 한다. 그대로 받아들일 준비를 하자 시뮬레이션 결과는 같았다.
돌멩이는 금수저가 아니다. 돌멩이는 천재가 아니다. 돌멩이는 로또의 운이 없다. 이런 일반적이고 상식적인 환경을 감안할 때 돌멩이가 들을 대답은 하나밖에 없었다. "잘 되길 바랄게요. 언제 밥이라도 해요"
하늘은 스스로 돕는 자를 돕는다는 속담의 앞 구절이 있다. 목마른 놈이 우물을 판다는 속담. 이 두 속담은 짝을 이루고 선후관계가 있다. 물을 먹고 싶고 목이 마르다면 그 사람이 직접 자기 손으로 시작해야 한다. 아무도 심지어 자기의 부모님도 우물을 파주지 않는다. 우물을 파는 사람은 자기일 수밖에 없다. 우물을 파는 사람이 물을 발견할 가능성은 아무도 모른다. 그래서 사람들은 여기에 희망을 하나 덧 씌운다. 하늘은 스스로 돕는 자를 돕는다는 속담. 가능성은 모르지만 열심히 노력하면 될 수도 있다는 희망을 하나 던져준다.
사실 이 말의 현실적인 해석은 우물에서 물이 나올 것 같은 낌새가 보이니 사람들이 도움의 손길을 내미는 경우다. 착각이든 아니면 남들이 보지 못한 습기 먹은 흙을 발견했든 가능성을 보고 도와준다. 아주 가끔 불쌍해서 도와주는 사람도 있다.
돌멩이는 목이 마르다. 아직 죽을 정도는 아니라는 것을 안다. 돌멩이의 수통엔 충분하지 않지만 매월 물이 채워진다. 그 수통의 물을 포기하기 싫어 여태 산에 붙어 있는 것임을 잘 알고 있다. 수통의 물을 포기하고 우물을 팔 절박함이 없다. 절박함이 없이 흙에 손을 묻히지 않은 채 사람들에게 이야기해봤자다. 하늘도 아직 나설 때가 아니다.
오후에 그 선배를 다시 마주쳤다. "잘 버티세요. 제 자리로 돌아갈 일이 생길 거예요" 뻔한 돌멩이의 인사에 "그래. 잘 버텨야지" 뻔한 답이 돌아왔다. 누구도 우물을 파려고 하지 않았고, 하늘은 무심하게 도울 사람을 찾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