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복근무

by 간질간질

코로나19 확진자가 2,000명을 넘어서자 회사에서 강제적으로 재택 비율을 높였다. 돌멩이는 집에서 일하는 것에 익숙하지 않다. 돌멩이에게 회사와 집의 경계는 철저하게 문으로 나뉘어 있었지만 뒤섞여 버렸다. 집의 문을 나서면서 회사로 향하는 여정이 시작되고, 회사의 출입문을 들어서는 순간 회사라는 세계에 진입했었지만 이제 회사의 세계와 돌멩이의 집은 떡이 되어버렸다. 요리에선 퓨전이 유행이고 모든 문화라는 것은 뒤섞이면서 발전한다고 하지만, 원치 않는 통합이라 돌멩이는 어딘가 불편하다.


나라를 빼앗긴 기분이라고 하면 과하다고 지적할지 모르겠지만, 칸막이로 나뉜 사무실에서 조차 책상 위는 내 영역이라는 구분을 하며 한껏 자위를 했건만, 어느새 회사는 집으로 들어왔다. 돌멩이의 기분에는 갑자기 침입자가 내 공간에 들어온 것과 같았다. Zoom이란 통로로, 스마트폰이란 메신저로, 전통적인 전화로 침공당했다.


게임의 흔한 클리셰인 다른 세계와 연결되어버린 공간. 그 관문. 포털. 돌멩이의 책상에 자리 잡은 노트북은 사각 포털이다. 그 포털로 수많은 외계의 몬스터들이 돌멩이의 집안을 헤집고 다닌다. 불편했다. 하지만, 포털을 닫을 수는 없다. 일제강점기에 순사가 보기 싫다고 못질을 할 수 없듯이 노트북을 닫으면 바로 응징이 시작된다.


외부의 적이 생기면 내부는 단결한다고 했던가? 꼭 그렇지도 않다. 어느새 집안에서는 수제비와의 영역다툼이 커지고 있다. 수제비가 거실에 있으면 돌멩이는 방을 찾아 들어가야 한다. 돌멩이의 메신저에서는 수많은 아저씨들의 비명이 오고 가고 있었다.


"분명 일하는 시간인데 와이프가 자꾸 나한테 집안일을 시켜"

회사의 갈등이 집안의 갈등으로 치환되고 있다.


회사에서는 개념 없는 꼰대들이 떠오른 생각을 뇌라는 필터 장치를 통하지 않고 입으로 뱉어낸다.

"앞으로 사람들을 다 재택 시키면 사무실도 줄이고, 책상도 빼고 그래서 돈을 아낄 수 있지 않을까?"

그 꼰대들은 재택도 하지 않고 회사에 구축된 자기의 영역을 돌아다니며 배설을 하고 있는 것도 모른다. 산책을 다니며 여기저기 흔적을 남기는 강아지의 영역 표기와 같다.


우주에 홀로 날아가버린 우주비행사처럼 돌멩이는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한다.

수제비와 점심을 먹는 것도 어색하고, 밥을 누가 차릴지 이야기하는 것도 어색하고, 다 먹고 쌓여 있는 싱크대의 그릇들도 보기 싫지만 선뜻 나서서 설거지하기도 싫다.


돌멩이는 밥을 먹고 머리가 개운하지 않으니 잠이 온다. 고3 때 대학입시를 앞두고 공부를 해야 한다는 강박과 하기 싫은 몸이 만들어 낸 루틴이 잠이었다. 같이 있던 친구가 남긴 쪽지는 적확히 그 점을 지적했다. 비몽사몽 일어나던 돌멩이 책상에 있던 쪽지 '잠을 통한 도피'. 돌멩이는 항상 이렇게 피해왔다. 신기한 동물 사전에 등장하는 양처럼 갑자기 포식자가 나타나면 기절해 버리는 양처럼 돌멩이는 잠에 빠져 든다.


점심을 먹고 잠깐이라 생각했는데 이미 한참이나 지나버린 오후 햇살 때문에 잠에서 깬 돌멩이. 그곳에는 수제비가 남긴 쪽지가 있었다.


'나는 재택근무. 너는 잠복근무'

잠복근무의 뜻을 깨닫고는 돌멩이는 부스스한 머리로 배시시 웃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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