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운을 빈다

by 간질간질

며칠 전 무운이 뉴스를 많이 찾아보는 사람들 사이에서 핫했다. 누구나 알고 있는 뉴스 전문 채널의 기자가 나와서 해석한 내용 가지고 말이 많았다.


"무운을 빈다"


수제비는 말 뜻을 대충은 알고 있다. 그래도 글로 밥 벌어먹는 사람이자, 어려서 부터 책깨나 읽었다고 자부하는 터라 용례는 알지만 한자 세대는 아닌지라 단어와 문장의 정확한 의미는 모른다.


그 기자는 이 말을 '운(運)이 없기(無)를 빈다'라고 해석했다. 무운이 그런 의미의 한자였나라는 생각을 하던 수제비. 하지만 뇌세포가 까칠하게 들고 일어선다.


'아닌데. 이상한데...'


적어도 수제비가 알고 있는 뜻은 실제로 상대방에게 운이 있기를 비는 거였다. 하지만 이걸 풀어낼 한자 역량이 없으니 세포가 반발해도 수제비는 뭐라 말하기 어렵다. 고맙게도 인터넷 여기저기서 무운은 그런 뜻이 아니라고 찬찬히 설명 글들이 나온다.


무(武) 운(運)을 빈다는 말이란다.


보통이면 만족하고 원래 일로 돌아가야 할 수제비의 뇌세포는 다시 한번 일어선다. 까칠함의 반발이 아니라 왜 하필 싸움에서의 운을 빌어줘야 하는지 모르는 당혹감의 반발이다. 정말 맞는 걸까?


한 역사학자가 트위터에서 풀어준다.

무운을 빈다는 말은 전쟁에서 살아남기를 바란다는 말에서 왔단다. 우리나라가 많은 침략을 받아왔다지만 어딘가 좀 어색하다. '밥 먹었니?'라는 말처럼 적극적인 전쟁 참여자의 입장보다 전쟁에 휘말려버린 사람들의 안위를 궁금해하는 말씀새가 우리 정서에 어울리는데 너무 피 냄새가 나고 비장하다.


그 역사학자에 따르면 일본에서 왔다고 한다. 전문 싸움꾼인 사무라이의 나라 일본. 전국시대를 거쳐 임진왜란을 일으킨 그네들은 결국 자기들끼리 치고 박는 싸움 끝에 지금의 동경에 막부를 개설한다. 사무라이들의 정권. 그 막부 말기 미국의 힘에 눌려 개항을 하고, 이후 사무라이들은 막부를 뒤집고 천황을 중심으로 하는 절대권력의 국가를 세운다. 달라진 것은 사무라이들의 사무라이 정권에서 사무라이들의 천황 정권으로 바뀐 것. 싸움꾼들의 우두머리만 달라졌을 뿐. 동네 깡패가 전국구 조폭 행세를 하듯 온 아시아를 휘젓고 다니다 원폭으로 끝이 난 것이 일본의 근현대사다.


말이 길어졌지만 그 역사학자의 주장으로 '무운을 빈다'는 말은 그래서 일본에서 사용된 행운을 비는 문장이고, 그 문장이 일제의 점령기 하의 이 땅에 들어왔고, 그래서 이번 해프닝(?)을 기점으로 '무운을 빈다'는 말은 아예 우리말에서 빼내는 것인 낫겠다는 결론까지 이어졌다. 싸움꾼들의 역사에서는 무운을 빌어주는 말이 어울린다.


수제비는 글로 먹고살지만 완고한 표준어 지킴이도 아니고 신조어를 한글의 파괴라 생각하지도 않는다. 그래서, '무운을 빈다'는 말의 해석을 운이 없기를 빈다고 해도 수제비가 모르는 뭔가 있는 것이 아닐까 라는 생각부터 했었는데 일본말이었다니 허탈했다.


수제비의 정신은 여러 단계를 거쳤다. 요즘은 거의 들어본 적 없는 죽은 줄 알았던 문장이 미디어에 등장해 처음엔 반가웠고, 자기가 알던 뜻과 다른 해석에 당황했고, 정확히 알지 못하는 단어라 당혹했고, 뜻을 알게 되었지만 찜찜했다.


해당 기자는 나중에도 전혀 잘못했다는 말 없이 변명의 철갑을 두른 말들을 쏟아냈기에, 일본에서 왔다는 출생의 비밀이 더 불쾌했다. 기자들의 지적 능력이야 전문가 대접에서 떠도는 이야기를 검증 없이 빠르게 쏟아내는 전달자 수준으로 떨어졌다는 것을 알았지만 틀린 적 없다고 끝까지 주장하는 것을 보니 초등학생들의 말꼬리 싸움에 끼는 것 같아 그 문장이 싫어졌다.

게다가 역사학자의 설명에 따르면 그 문장의 원류가 일본이라니 하찮아 보인다. 과거 일본은 다른 나라를 침략해 괴롭혔다는 사실을 인정하지 않았지만 패망 이후에 부활해서 세계를 호령하고 한국을 깔보던 재수 없음에도 잘난 나라였지만, 지금은 과거에 매달려 오직 한국을 낮잡아 보는 것으로만 만족감을 챙기는 한물 간 찌질이 나라가 되었기 때문이다. 많은 것 중에 굳이 찌질이의 말 뽐새를 가져다 쓸 이유도 매력도 없기 때문이다.


마침, 야당의 대통령 후보가 정해졌다. 앞으로 쓸 일은 없을 것 같아 마지막으로 한 번 더 써보기로 했다.


'무운을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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