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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자놀기]여백의 미학, 서예(書藝)

2004. 1. 2 No.70. 심신 단련 도모하는 종합 복고 레저

by Toriteller 토리텔러

예로부터 전해 내려온 폼 나는 레저 하나

'서예’를 복고 레저의 하나로 소개하자니 말투부터 달라진다. 그만큼 서예가 고상한 취미인 동시에 심리 효과(?)가 탁월한 행위라는 것이 다시금 생각난다. 예로부터 선비들은 종이(紙), 붓(筆), 먹(墨), 벼루(硯)의 네 가지를 소중히 여겨 '문방사우’라고 불렀다. 얼마나 친하고 가깝게 생각했으면 '친구(友)'라 불렀겠는가?


서예는 단순하게 말하면 보기 좋게 글씨를 쓰는 것이다. 균형과 조화를 맞춰 자신이 구사할 수 있는 가장 아름다운 필치를 표현했다면 그것이 서예다. 그 아름다운 필치를 구사하기 전에 물을 길어 먹을 갈고 문진을 꺼내는 행위 역시도 단전호흡에 못지않은 정성과 기가 필요하니 그것만도 요즘 한창 유행히는 ‘웰빙’에 어울리는 레저다.


또, 서예와 관련된 물건은 어떤가. 서예의 큰 특징을 보여주는 붓을 보라. 서예 붓은 서양화를 그리는 붓이나 필기를 하기 위해 사용하는 필기류와 다른 모습이다. 나무에 끼워진 부분은 잘록하게 마감되어 있고, 그 아래 몸통 부분은 부드럽고 유연하게 풍성해진다. 마지막 끝 부분은 길고 날렵하게 마무리되는 것이 서예 붓의 기본 모습이다. 서양미녀들의 울룩불룩한 글래머 스타일이 아닌 우리나라 여인 같은 맵시를 갖춘 붓은 무척이나 아름다운 자태를 가져서 쳐다보는 것만으로도 즐겁다.


장이모 감독도 인정한 지 ·덕 ·체 놀잇감

장이모 감독의 <영웅>을 보면 화려한 영상미와 더불어 쏠쏠한 지적 유희를 느낄 수 있다. 그중에서 '죽간'이 가득 찬 도서관 장면은 그 영화의 숨은 백미다. 이에 못지않은 '서예’의 매력이 등장한다. 파검(양조위 분)이 핏 빛으로 써낸 ‘검(劍)'이란 글씨. 그 글씨는 분명 종이가 발명되기 전이니 하얀 천에 쓰였을 것이다. 영화에서는 글씨를 쓰는 행위에 많은 의미를 부여하고 있다. 서예와 검법이 '힘과 정신력’에 의존적인 점에서 비슷하며,오직 글씨에서 특별한 의미를 찾아내려고 노력하는 등 신비감을 느끼게 한다.


서양에서도 글씨에 아름다움을 부여하는 행위로 캘리그래피(Caligrphy)라는 것이 있다고 하지만,동양인이 글씨에 부여한 의미에 비하면 턱없이 부족하다. 서예는 단순히 글씨를 종이에 표현하는 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

니다. 그것은 생활을 지배했다.


컴퓨터 자판이 득세한 시대에,펜도 아니고 서예를 권하는 데에는 글씨 이상의 다른 것이 있기 때문이다. 서예를 즐기려면 도구가 필요하고 공간이 필요하고 무엇보다 여유가 필요하다. 서예는 여유의 레저다. 먹물이 적절

한 점성을 갖기까지 정성스레 먹을 가는 여유,붓을 잘 다듬어 두는 여유,붓에 먹물을 묻혀 종이에 천천히 메우는 여유. 서예의 핵심 은종이에 글씨를 채우는 것이 아니다. 글씨와 여백의 적절한 조화를 찾아내는 게 중요하

다. 일과 레저의 적절한 조화,그것도 서예 속에 있지 않을까.




제목이 잘리네요. '프라이데이(Friday)'라는 잡지에 실렸던 글입니다. 매번 글에 감사를 표하지만, 이 글만 읽으실지 모르는 분들을 위해 다시 한번 변변찮은 글을 실어 주셨던 편집장님과 에디터, 그리고 소개해 준 분들께 심심한 감사를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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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여 년이 지나서 보니 캘리그라프가 서예보다 널리 퍼졌습니다. 아무래도 서예를 즐기기 위한 번잡함(?) 때문인가 싶습니다. 먹을 갈고 붓으로 별도 커다란 종이에 쓰기보다는 조그만 종이라도 끄적끄적할 수 있는 것이 더 편리한 건 사실이죠.


마지막 문장 '일과 레저의 적절한 조화' 요즘 말로는 '워라밸'이라고 하겠죠? 해 아래 새로운 것은 없습니다. 새로운 것처럼 의미를 더 강하게 때려주는 말만 사용될 뿐이죠. 혹은 옛날 말 중에서 새롭게 느끼는 단어를 활용하는 법도 있겠죠.


지난 글은 엄청난-그래 봤자 3천- 조회수를 기록했습니다. 이유는 서비스 운영하시는 분들이 '카톡'의 채널에 글을 등록해 두셔서 많은 사람들이 눌러봤습니다. 10여 년이 지나도 혼자 영화 보시는 분들이 많으신가 봅니다.


앞으로 글 세 개 남았습니다.


'혼자 놀기'를 사회초년생 재테크에 올리는 이유는 말씀드렸죠? 혼자 놀아야 돈 모을 가능성이 높아요. 그리고 또 하나는 이렇게라도 옛날에 썼던 글을 모으려는 의도도 있습니다. 다른 글들도 많은데.. 어디에 처박아 뒀는지 몰라서....


혹시, 글 내용 중에 너무 고루하다고 느끼는 점이 있으시면 10년도 전 내용이라 그러려니 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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