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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Toriteller 토리텔러 Sep 16. 2019

[책] '일본 제국 패망사'

전형적인 '무지막지하게 두꺼운 책'

생각 없이 주문했는데 덩어리가 왔다

어디서 봤는지 조차 기억 안 난다. 갑자기 시작된 일본 정부의 시비질이 마음에 들지 않았는데 '일본 제국 패망사'라는 제목의 책이 눈에 들었다. 그래서. 그냥 샀다. 책 값이 꽤 비쌀 때 알아봤어야 했는데, '뭐에 홀린 것처럼...'이란 말이 이젠 친근하다.  한 권만 주문했는데 책 봉투가 아니라 택배 상자가 왔다. 뭔가 기념품이라도 들어있는 줄 알았다. 자비심이라고는 1도 없어 보이는 두께의 책이 나왔다. 10cm는 되어 보이는 책. 페이지수가 1,300인가 그렇다. (책 소개 보니 1,400페이지라고 한다) 전형적인 책이다. 앞에는 참고할 만한 사진이 한 10페이지 정도 되고, 내용은 모두 글자다. 빽빽한 글자. 지도가 들어 있다. 당연히 흑백 지도. 지도 페이지는 합쳐서 10페이지가 안된다. 나머지는 모두 글자. 어린이들이 책을 읽기 싫어하게 만드는 딱 그 모양이다. 어린이였다면 당연히 포기했을 테지만, 난 어른이니까 꾹 참고 읽기 시작했다. 


알게 된 사실

매우 짧은 시간의 세력권

지도를 좋아하는 사람들은 일본제국의 최대 판도(세력권)를 표시한 지도를 기억한다. 많이도 땅을 먹었다. '왜구'라고 부르기에는 민망할 만큼 큰 땅덩어리를 먹었다. 조선(당시), 만주, 중국의 주요 도시(북경, 난징, 상해..)는 물론, 싱가포르와 말레이반도, 인도 일부, 필리핀에 인도네시아, 파푸아 뉴기니 섬까지. 태평양에 붙어 있는 땅 절반은 먹은 거 같다. 이건 알고 있었는데. 일본이 이만큼의 세력권을 유지했던 것은 매우 짧은 기간이다. 1942년 정도 (그새 까먹었다. 아무튼 오래되지 않는 기간이다). 마치 선빵을 날려서 상대방이 휘청 거린 만큼의 순간처럼 짧다. 미드웨이 해전 이후 일본은 계속 수세에 몰린다. 


대동아공영권

일본 군부를 포함해 일부 아시아인들조차 대동아 공영권을 믿었던 것으로 보인다. 지금 일본에서 주장하는 '아시아를 이끄는 일본'이나 '우리가 무슨 죄를 저질렀냐?'는 식의 이야기를 하는 일본인들이 있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일본의 이러한 생각에 동의하는 것이 아니다. 그런 생각을 하도록 '열심히 선전'했을 거란 거다. 그리고, 일부는 넘어갔을 거고. 새삼 깨닫게 되는 일이 있다. '미친 짓'으로 보이는 일을 하는 사람도 스스로는 '올바른 일'이라고 믿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다. 그런 사람들 현재도 일본에 있는 것 같다. 


조선

이 두꺼운 책에서 '조선'이란 단어는 매우 매우 드물게 등장한다. 일본에서도 서방에서도 조선은 이미 '일본의 일부'인 것처럼 취급한다. 독립운동하던 선조들이 얼마나 고생했을지... 대동아 공영권은 '서방에 대항해서 아시아인들이 뭉쳐야 한다'는 식인데, 그 안에 조선은 없다. 


에도의 꽃

이 책은 매우 매우 지루하다. 저자의 능력인지 나의 변태적 성향인지 모르겠지만, 매우 건조하게 흐르던 전쟁의 모습들이 태평양 섬들에 상륙하는 미군들과 대항하던 일본군들의 경험을 읽을 땐 고어 영화를 보는듯한 장면이 떠오른다. 미군이 도쿄에 공습을 시작하면서 소이탄을 떨어뜨릴 때 챕터의 제목이 '에도의 꽃'이다. 소이탄이 도쿄에서 터지는 모습을 표현한 문구. 이렇게나 비현실적이라니... 사람들이 죽어나가고 새까맣게 재가 되어가는데 '꽃'이라니... 원자탄이 터진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의 모습을 표현한 글은 사람의 마음을 완전히 분리시킨다. 잔인한 장면이 그려지는 묘사. 하지만, 술술 넘어가는 장면. 


진주만 공습 이전에 시작된 전쟁

미군을 대상으로 한 것은 아니지만, 태평양에서의 전쟁은 말레이반도에서 먼저 시작된다. 중국에서는 장제스와 모택동이 일본과 싸우고, 스탈린과 처칠과 루스벨트가 유럽전선과 태평양 전선의 우선순위를 놓고 다투고, 끝내는 다시 갈라서는 모습이 나온다. 


일본인

천황('덴노'라고 불러야 하나?)은 분명 전쟁을 다 알고 있으나 일본 국민을 사랑하는 모습으로 그려지고, 일본의 정치인들은 평화와 전쟁 사이에서 오락가락하고, 군인들은 대체 왜 '천황 만세'를 외치며 돌격을 하고, 민간인들은 같이 처절하게 버티고... 일본인을 이해하기는 어렵다. 하지만, 지금의 일본인과 어딘가 맥이 닿아있다. 지금 일본이 하는 행동들이 어렴풋하게 연결된다. 


그래서..

정말 글자를 좋아하고, 태평양 전쟁에 관심이 있다면 사서 읽을만하다. 아니라면 그냥 안 읽어도 될 것 같다. 읽기에 숨이 차고 버겁다. 



다른 책 읽어야 하는데... 언제 읽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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