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을 선물 받으면 - 내가 받기를 원했든 아니면 상황이 만들었든 - 읽고 나서 흔적을 남겨야 하는 것이 도리라는 생각이 있다. 이 생각이 맞는 것이라고 우기는 것이 아니라 내가 가진 '버릇' 중에 하나라고 말을 하는 것이다. 글쎄. 더 정확히 구분해야 되겠다. 버릇이라고 말할 땐 '행동'을 담보로 하는 것인데, 나의 생각은 '생각이 드는 것'까지만 이지 흔적을 남기는 것은 아직 버릇이 아니다. 책을 만드는 것이 쉽지 않은 일인데 공짜로 책을 얻게 되었으니 책 값을 해야 한다는 생각은 어찌 보면 농사를 지어본 적도 없지만 어려서부터 쌀을 키우는 농부의 손길을 이해해야 하니 밥 한 톨 남기지 않고 깨끗이 먹는 밥상머리 교육과 비슷하기도 하다. 책을 한 권 증정받았고, 난 그 책을 읽고 리뷰를 써야 한다는 혼자만의 강박관념에 고통받고 있으며, 글이 쉽게 써지지 않아 스트레스받고 있다는 내용을 길게도 썼다.
이 출판사의 대표님 이름은 한 번 듣고 나면 까먹기 힘들다. 그래서, 지금도 죄송하지만 출판사 대표님의 이름만 생각이 난다. 얼굴도 전화번호도 떠오르지 않는다. 하지만, 전화번호야 핸드폰에 저장이 되어 있고 다시 마주치게 되면 분명 사전에 알고 만날 테니 충분히 반가운 척할 수 있다. 호기심을 위해 이 분의 이름은 감춰야겠다. 이름만 보면 분명 '활자' 또는 '텍스트'와 관련된 일을 하셔야 될 것 같다.
대표님의 겉모습과 이 책의 내용은 잘 어울리지 않는다. 대표님께 미안하지만 책을 읽고 나서도 그렇다. 아무래도 내가 대표님과 저녁 자리에서 갑자기 만났기 때문일지 모른다. 출판사 대표님의 모습은 누가 봐도 공무원스럽지 않다. 이 책의 알맹이는 표지와 똑같다. 표지에 그려진 사람이 말해준다고 해도 믿을 만큼 표지스럽다. 이 책을 만든 대표님은 어떤 모습이 끌려서 만들었을까? 그것까지는 모르겠다. 약간의 미스터리함과 약간의 반골기질 같은 것이었을까?
책을 읽게 만든 내용들
대표님을 비롯 항상 나의 상상력을 벗어나는 고급스러운 대화 주제를 던지는 또 한 명이 책을 주고받는 자리에 있었기에 나의 기억이 잘 못 되었을지도 모르겠다는 앞자락을 먼저 깔아야겠다. 이 책의 저자는 '김철원'이라고 나오지만 본명이 아니라고 한다. 그럼 공무원이 아니라고? 아니. 공무원은 맞단다. 책을 읽어보면 공무원이 아니면 이런 글 쓸 수 없는 것이 맞다.
대표님이 나에게 가장 매력포인트로 내세운 책의 장점은 '9급 공무원'의 월급 명세표였다. 누구나 욕을 하는 '공무원의 명세표'이지만, 누구도 알지 못하는 공무원 급여 명세표를 정말 자세히도 세밀하게 적어놨다. 그래서 많은지 적은 지 궁금해하실 것 같은데 직접 서점에서라도 들춰보시길 추천한다.
9급으로 출발해서 이제는 7급이 되신 분이다. 그럼 어떤 내용의 것들을 책에서 말할 수 있을지 궁금해졌다. 아. 게다가 이 분은 공무원 생활을 하시면서 대학원을 졸업하신 분이다.
공무원을 준비하는 분들. 이 책 읽어보시면 좋겠다. 5급 공무원이 되실 분들도 읽어보면 좋겠지만 그들과는 좀 다르니 7급이나 9급 공무원 준비하시는 분들이 더 맞긴 하겠다. 득이 될지 손해가 될지는 모르겠다. 이 책은 어쩜 그렇게 공무원처럼 썼는지. 장점이자 단점이다. 9급 공무원이 되면 어떤 일들을 하게 되고, 어떤 갈등을 겪게 되고, 어떻게 풀어나가야 할지에 대해서 잘 썼다. 내가 공무원 생활을 하지 않았기에, 이 저자가 우리나라 9급 공무원의 삶을 대표하지 않기에 모두 맞다고 할 수는 없겠지만, 충분히 공감할만하다. 적어도 대한민국에서 공무원들을 만나면서 살아온 사람 중에 한 명인 나는 공감한다. 이런 어려움과 이런 문제를 가지고 있을 것이라는 것이 어느 정도 그려진다. 공무원 시험을 절박하게 준비하는 사람이라면 이 책의 어떤 내용도 시험 준비에 변화를 주지 못할 것이다. 공무원 시험을 보기 싫은 사람이라면 이 책뿐만 아니더라도 시험을 포기할 이유는 충분하다. 담담하게 잘 그렸다.
리얼다큐를 보는 것 같았다. 드라마를 기대했는데, 드라마가 아니라 우리 삶을 그대로 보여주는 다큐 같다. 공무원의 일이 전문적이고 방대하다는 저작의 의견에 동의한다. 그렇다고 저자가 '우리는 힘이 드니 국민들이 알아줘야 해!'라고 주장하지 않는다. 그냥 저자는 공무원스럽게 이야기한다. 우리의 일은 이것이니 이 일을 한다. 그리고 국민들에게 도움을 주는 일을 해야 하니 한다. 공무원을 욕하는 것도 알고 있고, 공무원 조직의 답답함도 알고 있지만 드러내고 있지 판단하지 않으려고 한다. 가장 공무원스럽다.
저자가 계속 얘기하듯이 공무원은 '규정'에 따라 움직이는 것이고, 이 책은 딱 그 규정의 경계선에 있는 것 같다. 더 목소리를 낼 수 있었지만 내지 않았다. 그렇다고 영혼 없이 말했냐고 하면 아니다. 충분히 목소리를 담았다. 그래서 매우 낯설면서 익숙한 묘한 경험을 하게 된다.
이 책을 제대로 소개한 것이 아닌지 죄송하다. 충분히 읽어볼 만한 책인데... 뭔가 더 쓰려니 정부의 정책이 발표되면 해당 발표를 잘 소개하고 알 수 있는 자료를 배포하면 될 일이지, 온갖 비판과 판단으로 버무린 기사처럼 보일까 싶다. 마무리해야겠다.
제 브런치 독자들에게 도움이 될 만한 책이라 생각이 들었습니다. 하위직 공무원에 관심 있으신 분들은 읽어보면 공무원을 이해하는데 도움이 되실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