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좋아하는 사람 중 책쟁이가 있다
회사일로 만났다. 그러다 요즘은 친구 비스무리하게 지낸다. 나이도 얼추 비슷하고 만나서 이야기하면 즐겁기 때문이다. 이 사람의 직업은 낮춰 부르면 책팔이. 사회적 용어로 바꾸면 우리나라 대표 온라인 서점의 임원이다. 책에 대한 궁금증이 생기면 주저함 없이 전화나 카톡을 날린다. 내가 아는 사람 중엔 책 파는 업에 대해선 최고로 똑똑한 사람이다. 책은 분명 사람의 등급을 올려준다. 잘 생기지 않았지만 툭툭 내뱉는 말에 엘레강스함이 묻어 나올 때마다 매력도가 상승한다. 내 눈에만 그렇게 보일지 모르겠지만...
어느 분야의 책이 가장 많이 팔리나요?
궁금했다. 그래도 책을 네 권이나 낸 저자 입장에서 어떻게든 책을 많이 팔아 가끔은 특설렁탕이라도 사 먹고 싶기 때문이다. 재테크 책도 많이 팔리고, 유명인들의 에세이도 많이 팔리고, 소설이야 말할 것도 없고 서점엔 항상 새책이 나오는데 어느 분야일지 궁금했다. 답은 의외였다. 대한민국의 현실. 고상한 줄 알았던 책 시장도 결국은 현실을 벗어나진 못했다. 교과서. 좀 더 범위를 넓히면 수험서란다. 정확한 숫자를 기억하진 못한다. 온라인 서점의 조직으로 보면 책을 유통하는 두 개의 본부가 있다면 하나가 교과서 및 수험서를 관리하는 본부고, 나머지가 다른 모든 종류의 책을 파는 본부라는 것만 기억한다.
교과서를 샀다
적을 알고 나를 알아야 백번 싸워도 위태롭지 않다고 했으니 적(?)을 알기 위해 교과서를 샀다. 아니, 교과서는 구하기 쉽지 않으니 참고서를 샀다. 초등학생, 중학생, 고등학생 사회 참고서. 그래도 네 권의 책을 쓴 저자라는 허세감과 경제학은 아니지만 상경계열 전공이었다는 근거 없는 자신감에 '1등급 만들기'라는 고등학교 경제 문제집 및 참고서를 펼쳤다. '다 아는 얘기구먼... 뭐 이런 걸 가르친다고'. 요약한 내용을 읽을 때까지였다. 문제는 문제였다. 문제를 풀라는 것인지, 문제를 해석하라는 것인지 알 수 없다. 한번 꼰 것을 다시 꼰 문제를 풀고 있을 학생들을 생각하니 갑자기 나라의 미래가 걱정이 된다. 이런 문제를 문제없이 푸는 학생들은 얼마나 고통받고 있을까. 요약 설명한 내용의 단어 하나하나가 '요건 몰랐지?'라며 문제에서 튀어나온다.
경제 지식이 아니라 경제 머시기
시험에 익숙학 경제 지식은 정확한 어휘로 정확하게 경제를 표현할 수 있을진 몰라도 참 부질없어 보인다. 어느 소설인지 모르겠다. 말에 대해서 이야기해보라는 장면에서 똘똘한 아이가 말은 몸무게가 대략 얼마나 되며, 달리는 거리는 어떻게 되고 등등 정말 정확하고 과학적으로 설명을 한다. 하지만, 주인공 아이는 '아니'라고 외친다. 주인공에게 말은 얼마나 멋진 동물이고, 달릴 때 얼마나 갈기가 멋지게 휘날리는지, 땀으로 반짝이는 말과의 교감으로 말을 이해하고 있다. 경제도 그래야 될 것 같은데 무식한 나는 잘 표현 못하겠다. 이토록 살았는데도 여전히 모르는 게 많다.
남은 문제는 다 풀고 생각해야지
서점의 교과서, 수험서 분야의 매출을 올려줬으니 남은 문제는 일단 풀어봐야겠다. 계속 머릿속에서는 수요와 공급곡선이 만나는 균형가격과 균형거래량이 아른거린다. 그래서, 공급곡선과 수요 곡선이 움직이는 이유와 가격과 거래량이 어떻게 변할지를 설명하면 답을 맞힐 텐데, 내가 어느 종목을 살지 내가 어떤 치킨을 먹을지, 계속 비굴모드로 회사에 붙어 있어야 할지, 나와서 선배가 하는 식당에 보조로 들어가야 할지 이 답은 모르겠다. 그래도 일단 또 찾아보려고 한다. 내가 언제는 답을 알고 인생을 살았던 것도 아니고. 해보고 안되면 그때 고민해 보기로 했다. 일단 마무리는 해보련다.
참고서를 써야 하나?
돈 좋아하는 속물임을 단 한 번도 부인한 적이 없는 나는 참고서를 쓰면 돈이 되지 않을까 잠시 고민했다. 그러다 오늘 기사 하나를 봤다. 2019년에 나온 기사지만, 고3 중 경제를 선택하는 학생의 비율이 1.2%란다. 약 40만 수험생 중에 5천 명 정도. 대박 참고서를 써서 모든 수험생에게 팔면 5천 권이 팔리겠구나 생각하니 가슴이 답답하다. 그래도 뭔가 해볼 생각이다. 올해를 보내고 나면 많은 이야기 꺼리가 생길 것 같다. 희극일지 비극일지는 아직 정해지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