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기사에는 종종 그래픽이 등장한다. 도표라 부르기도 하고 이미지라 부르기도 하지만 텍스트가 아닌 그림 모두를 '그래픽'이라고 통일해서 부르기로 하자. 그래픽엔 그래프가 가장 많이 사용된다. 막대그래프, 선그래프, 도넛형 그래프가 대표적인 세 가지 그래프다. 그래픽을 사용하는 이유는 효율성 때문이다. 말로 설명하면 잘 이해 안 되는 상황을 그래프로 보여주면 '한 방에' 이해가 된다.
경제성장률을 설명할 때 말로만 한다고 해보자. 상반기엔 몇 %였지만 하반기에는 몇 %로 예상이 되고, IMF는 어느 정도로 예상했고, 한국은행은 몇 %로 예상했는데 이 성장률을 OECD평균과 비교하면 약 X% P 차이가 난다는 식으로 텍스트로만 설명하면 길고 지루하며 결정적으로 하고 싶은 말을 이해하기 어렵다. 하지만, 이런 숫자들을 하나의 그래프로 표시해서 서로 비교하면 세부 숫자는 몰라도 명확하게 현재 상황을 인지할 수 있다.
온라인으론 강세를 알 수 없어
여태 지면기사를 온라인으로 보면 된다고 주문 외우듯 이야기했는데 그래픽도 온라인으로 보면 되지 않을까? 맞다. 온라인에도 지면에 나온 그래픽이 다 들어 있다. 하지만, 그래픽을 만든 원래 목적 '한 방 효과'의 차이가 지면과 달리 너무 차이 난다. 지면에서 1면 기사의 제목은 다른 면의 기사 제목보다 유난히 크다. 이유는 알다시피 한눈에 알아보기 쉽게 만들었기 때문이다. 이를 '강세표현'이라 이름 붙이고 싶다. 강조할 만큼 중요하면 그만큼 제목을 크고, 두껍게 만들면 된다. 그럼 눈에 띄고 얼마나 중요한지 설명하지 않더라도 즉각 인지하게 된다. 하지만, 온라인에선 강세를 알기 어렵다. 온라인으로 지면기사를 볼 때 파악할 수 있는 강세는 크기차이가 빠진 몇 면의 기사인지 알려주는 '위치값'뿐이다. 온라인에서는 지면기사의 '강세' 중 최소한 절반 이상의 효과를 놓칠 수밖에 없다.
그래픽은 '강세'의 의미도 있지만 '한방'의 힘이 더 크다. 그래픽을 지면에서 온라인으로 옮기는 순간 텍스트 제목보다 더한 치명적인 손실을 감수해야 한다.
지면에 최적화된 그래픽
지면에 최적화되었다는 뜻은 '면적', 그리고 '배치'를 고려했다는 뜻이다.
[면적]
지면의 크기를 잘 알지 못할 테니 쉽게 볼 수 있는 것과 비교한다면 대략 성인의 몸통크기가 한 면의 크기와 비슷하다고 볼 수 있다. 옛날에 종이신문이 여러 용도로 쓰였을 때 신문지 두~세장이면 대충 목 아래부터 발목까지 덮을 수 있었다. 지속적으로 중요한 면이라고 강조했던 3면에는 기사 3개 정도가 하나의 주제로 구성된다. 3개의 기사가 실려 있다고 해서 각각 같은 면적을 차지하지 않는다. 중요도에 따라 보통은 1개의 기사가 메인, 2개의 기사가 보조 역할을 한다. 그리고, 중요한 기사의 1/3 정도 넓이에 그래픽이 들어간다.
거칠게 요약하면 그래픽의 크기는 A4크기의 2/3 정도 된다. 온라인으로 바뀌는 순간 A4 2/3 크기의 그래픽이 손바닥만 한 핸드폰의 절반 크기로 줄어든다. 나이 든 사람일수록 노안으로 침침해진 눈을 아무리 비벼도 세부 내용은 잘 보이지 않는다. 1픽셀의 어긋남도 찾아내는 20대의 눈이라면 구별할 수 있겠지만 스마트폰으로 보기에 피곤한 건 마찬가지다. 그렇게 힘줘서 보지 않아도 재밌는 것들이 세상에 얼마나 많은데 갓난아이 손바닥만 한 크기에 빼곡하게 들어간 도표니 숫자니 설명을 읽고 있을까. 그래서, 쉽게 지나치곤 한다.
게다가 A4 2/3 크기라면 여러 가지 정보를 넣을 수도 있고, 화려한 색과 이런저런 이미지를 넣어 풍성하게 만들 수 있다. 지면의 한계는 정지화면이다. 영상이라면 프레임을 나눠 화면전환 기법을 사용해 스토리를 쉽게 풀어줄 수 있겠지만 지면에선 최대한 요약 및 집약해 정지화면으로 만들어야 한다. 검은색 텍스트 가득한 신문에 컬러풀한 그래픽은 매우 괜찮은 장치다. 하지만, 손바닥으로 줄이는 순간 컬러풀한 그래픽은 얼룩처럼 보이게 된다. 역시나 외면하게 되는 이유가 된다.
[배치와 모양]
그래픽은 적절한 배치도 중요하고 모양도 중요하다. 모양은 직사각형이 될 수도 있고, 정사각형이 될 수도 있다. 가로로 길 수도 있고, 세로로 길 수도 있다. 가장 흔한 이미지라면 가로로 긴 직사각형이 아닐까 싶다. 그리고 보통은 기사의 중간에 배치시킨다.
배치에서도 지면과 온라인의 결정적인 차이가 나온다. 지면의 그래픽은 텍스트를 읽는 호흡을 방해하지 않는다. 기사를 읽는 흐름을 끊으면서 그래픽이 들어오지 않는다는 뜻이다. 어떤 의미냐면, 텍스트를 읽다가 필요할 때 그래픽으로 옮겨갈 수도 있고, 그래픽을 보다가 텍스트를 읽을 수도 있다. 글자와 그래픽 두 개를 자유롭게 왔다 갔다 하며 기사를 더 풍성하게 읽을 수 있다. 예를 들면, 라면을 먹으면서 김치를 같이 먹을 수 있게 배치된 것이 지면기사다. 라면만 먹고 싶으면 라면만 먹다가 필요할 때 김치를 먹으며 된다. 김치가 맛있으면 김치만 더 먹어도 되고 라면과 김치의 조화를 내 마음대로 누리면서 먹으며 된다.
온라인은 화면의 크기상 그게 안된다. 라면을 먹다가 김치를 먹기 힘든 구조다. 라면을 먹다가 김치를 먹으려면 라면을 다 삼킨 후에 김치를 먹어야 하는 것처럼 온라인에서 기사를 읽을 땐 텍스트가 흐르던 기사 중간을 훅 끊고 그래픽이 등장한다. 그나마 내용이 텍스트에 연결되면 다행이지만 연결되지 않는 내용이라면 뜬금없는 이미지의 배너광고와 다를 게 없다. 옛날 한국의 비빔밥에 익숙하지 않은 외국인들이 비빔밥이 나오면 밥 따로 야채 따로, 고기 따로 마치 반찬처럼 먹었다는 이야기가 있다. 온라인으로 그래픽이 들어간 기사 읽기가 딱 이 모양새다. 크기도 작아지고 먹기도 불편하니 스마트폰에서 그래픽은 외면받기 쉽다.
출처 : 서울경제 9월 25일 자 3면
그래픽은 완전한 한 그릇의 음식
음식을 만드는데 조건이 있다고 해보자. 딱 한 그릇이어야 한다는 조건. 반찬도 없고, 나눠서 제공해도 안된다. 딱 한 그릇으로 만족스러운 음식을 만든다면 어떤 것이 좋을까? 우리나라 음식 중 떠 오르는 것은 삼계탕이다. 고기도 들어 있고, 몸에 좋은 인삼과 달달함을 주는 대추와 은행도 들어가 있다. 밥심으로 사는 한국인을 위해 찰밥도 들어가 있다. 국물 역시 중요하다. 지면기사의 그래픽은 삼계탕이다. 자체로 매우 훌륭한 음식이다. 지면의 그래픽은 삼계탕처럼 그래픽 안에 많은 정보들이 들어 있다. 오래 삶아 부드러운 닭, 속을 풀어주고 따뜻하게 하는 국물, 든든하게 채워주는 찰밥도 뺄 수 없다. 그리고 먹기 싫어하는 사람이 있지만 인삼도... 삼계탕은 훌륭한 음식이긴 하지만 항상 옳은 메뉴일까?
스마트폰에선 한 조각 치킨
저녁에 뭔가 출출할 때 닭요리를 고르라면 선택은 당연히 치킨이다. 물에 빠진 닭 한 마리 건강식인 삼계탕 보다 조각으로 튀겨진 치킨, 양념으로 버무려진 치킨이 진리다. 온라인으로 지면에 실린 그래픽을 보는 것은 저녁 출출할 때 먹을 닭요리는 삼계탕밖에 먹을 것이 없는 것과 비슷하다. 몸에 좋은 음식이니 닭살을 곱게 찢어 소금이라도 찍어 먹으며 달래 보려 해도 머릿속에서 치킨이 사라질 리 없다. 그래서 더 아쉽다.
디지털 전문 매체에서는 이런 이유로 그래프를 더 간략하게 만든다. 한 그릇의 완벽한 삼계탕이 아니라 각각 분리해 하나의 주제가 담기도록 단순화 시킨다. 이런 그래픽을 지면으로 본다면 매우 심심하고 낭비라고 보일지 몰라도 온라인, 특히 스마트폰으로 보기엔 적절하다. 바로 하나의 그래픽에 하나의 정보만 단순하게 담은 온라인용 그래픽이 바로 한 조각 황금빛 치킨이다.
외면받을 그래픽이 내내 아쉬워...
잘 안 보인다고 휙 던져버릴 그래픽이 아니다. 오랜 시간을 정성 들여 만든 삼계탕을 먹기 번거롭다고 외면하면 서운한 것처럼. 그래서, 조금의 절충점을 찾아보자면 노트북이나 패드로 그래픽을 보면 좋겠다. 그럼 왜 그래픽이 중요하다고 얘기를 했는지 알 수 있다. 쓰윽 보고 넘기기에 지면기사에 들어 있는 그래픽은 아깝다. 온라인으로 그래픽을 잠시 보고 마는 것은 삼계탕을 시켜서 살만 조금 발라내 소금 찍어먹고 나머지는 죄다 버리는 기분이다. 역시 신문에 실린 그래픽은 신문으로 볼 때 최적이다. 그게 안된다면 노트북이나 패드로 그래픽을 챙겨보면 좋겠다.
이제 두 번 정도 더 하면 10회가 채워지네요. 10회 하고 마무리할 예정입니다. 다음은 요리사인 기자에 대한 이야기. 그리고 마지막엔 종이신문과 관련된 이런저런 이야기를 해볼까 합니다. 혹시라도 종이신문에 궁금한 내용 있으면 댓글로 질문을 해주시거나 메일로 보내주시기 바랍니다. (아무도 없을 거라는 것을 읽는 사람도 알고 쓰는 사람도 알지만....)
오늘 내용과 관련된 TMI를 해드린다면, 지면 사이즈는 보통 '대판'이라고 부르는 크기를 기준으로 했습니다. 우리나라 신문은 보통 대판 크기입니다. 알려진 신문 중에 대판이 아닌 신문은 중앙일보입니다. 중앙일보는 대판보다 작고, 타블로이드 사이즈보다 큰 판형을 사용합니다.
밀리의 서재에서 '세상친절한 경제 상식' 책이 꾸준히 담기고 있습니다. 밀리의 서재 구독하시나요? 그럼 주저하거나 고민하지 말고 서재에 담으세요. 글 쓰고 있는 2023.9.25. 오후 10시 현재 2,186명이 담으셨네요. 계속 늘어나고 있습니다. 조금만 더 속도를 높여보죠. 추석 연휴 중 하루, 읽고 끝내기 아주 좋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