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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보는 순간 떠 오르는 맛

여섯 번째 이야기

by Toriteller 토리텔러

지금까지 ‘어떤 요리를 고를까?’에 대한 이야기였다면 이제부턴 ‘먹어본 적 없는 요리를 어떻게 먹을까?’ 설명이다. 초보에게 지면기사는 불친절하고 쌀쌀맞아 보일지 모르지만, 친해지면 간과 쓸개, 심장과 뇌까지 빼줄 정도로 솔직하다.


제목만 보면 내용을 안다

이 단순한 사실 한 가지만으로 지면기사는 읽을 이유가 있다. 지면기사의 제목은 반전의 재미가 없다. 빵 모양의 음식이 나오면 빵맛이 나고, 생선 모양의 음식이 나오면 생선맛이 난다. ‘기레기’가 만든 제목 장난질에 당했던 일이 생각나며 '뭔 얘긴지 모르겠다'라고 말할지도 모르겠다. '제목 낚시'가 없는 기사가 있다는 사실을 못 믿는 사람들도 많겠지만 원래 기사제목은 그렇게 만드는 것이 원칙이(었)다. 뼈대 있는 매체의 지면기사에선 질 낮은 재료를 소스 범벅으로 맛있게 꾸미는 제목 장난질 치지 않는다. 그래서, 농담 못하는 애인처럼 밀당의 재미는 없다. 하지만, 담백함과 깊은 진국의 맛. 지면기사 제목의 맛이다.


전통 VS 트렌드 제조법

좋게 말해 '요즘 난리난 '이것''같은 제목은 트렌드다. 내가 사용한 '트렌드'란 단어에는 좋다 나쁘다 같은 가치를 포함시키지 않고 그냥 자주 보인다는 의미다. 트렌드한 제목은 호기심을 자극해서 클릭하게 만들지는 몰라도 독자의 시간을 더 소비시킨다. 제목만 보고선 내용을 알 수 없으니 본문을 눌러야만 한다. 이런 추가 행동이 필요한 온라인 기사엔 지면기사 제목의 장점이 고스란히 빠져 있다. 그보다 더 큰 문제는 기대치의 비대칭이다. 일종의 '럭키박스'같은 제목. 럭키박스는 내용물을 몰라도 기대 이상의 것이 들어 있다는 믿음이 있지만, 기사를 읽었을 때 기대감보다 못한 내용이 나오면 곧 실망하게 된다. 전통적인 제목에 럭키박스는 없다. 엄밀히 말해 '의도'가 들어간 제목은 있다. 의도가 들어가는 기사나 제목을 '논조'라 부르고, 아젠다 세팅이라고도 부른다. 그럼에도 지면기사에서 제목과 내용이 따로 노는 경우는 없다.


전통적인 지면기사의 제목은 고객을 배려한다. 음식을 만드는 주방장 입장에서야 그릇을 다 비우도록 먹는 고객이 전부였으면 좋겠지만, 가장 맛있는 부분 또는 가장 핵심적인 부분만이라도 즐기는 고객이 있다면 감사하지 않을까? 그게 종이신문의 뉴스와 제목을 다는 사람들의 마음이다. 바쁜 사람이라면 제목만 읽어도 어떤 내용이 있을지 충분히 이해할 수 있도록 만드는 것이 지면기사의 제목이다.


제목에선 맛과 재료, 조리법을 파악해야 한다

이제 구체적으로 어떻게 제목을 맛볼지 시식의 시간을 가져본다.


첫 번째 목표. 맛 떠 올리기

음식을 보면 어떤 맛일지 대충 떠올리게 된다. 그리고, 맛보면서 생각했던 맛과 비교해 음식평가를 한다. 그런데, 음식을 보고도 어떤 맛인지 모른다면 음식을 충분히 즐기기 어렵다. 오래 씹는 맛을 즐겨야 할지, 다른 것과 섞어서 먹어야 할지, 시큼한 맛이 상한 건지 새콤한 건지 알기 어렵다.


경제 뉴스에서 맛이라면 어떤 걸까? 가장 쉽게 3가지 맛이 있다. '좋(아진)다', '나빠(진)다', '모르겠다'. 기준금리가 내려간다는 기사가 나오면 돈이 풀리면서 경기에 좋은 것(=호재)라고 해석할 수 있다. 반대로 지금 인플레이션이 심한 상황인데 금리를 올리지 않는다는 기사가 나오면, 앞으로 물가가 더 올라 살기 힘들어질 것이라는 해석을 할 수 있다. 경제 기사는 종종 '혼돈', '안개', '설왕설래', '논쟁' 같은 제목들이 나온다. 경제는 명확하지 않은 경우도 많다. 그러니 '모르겠다'는 맛 역시 음미해야 할 맛이다.


두 번째 목표. 재료 알기

음식을 보고 맛을 떠 올릴 수 있듯, 기사 제목을 보고 맛을 상상하려면 재료를 알수록 유리하다. 메뉴명을 보고 고기인지, 채소인지, 생선인지 알면 음식 선택에 큰 도움이 된다. 더 전문적이라면 더 나아가 안심인지 등심인지 꼬리인지도 중요하다. 초보라면 '소고기'를 아는 것이 목표가 되겠지만 적어도 경제에 관심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라면 더 알아야 한다. 주식투자를 하면서 특별한 업종, 특별한 기업에 투자한다는 의미는 소고기 중에서도 한우, 한우 중에서도 꽃등심을 좋아한다는 것과 비슷하다.


경제뉴스의 재료는 '내용의 주체'라 생각하면 된다. 유럽에서 전기차를 많이 팔았다는 기사의 재료는 현대자동차고, 우리나라 반도체 수출이 어렵다고 할 때 주체는 삼성전자와 에스케이하이닉스가 된다. 기업만 주체가 되는 것은 아니다.


정부는 주로 정책과 관련된 주체로 등장한다. 부동산 관련 대출정책을 완화하거나 강화한다는 얘기가 나오면 주체는 정부가 된다. 그리고 대출을 실천하는 보조 주체는 금융기관이 된다. 세수(=세금수입)가 부족하다는 것은 정부의 소득이 부족하다는 의미고, 물가가 올랐다는 기사에서 통계수치를 발표한 주체는 정부(통계청)가 되고, 높은 물가를 체감할 주체는 보통 우리(=가계, 소비주체)가 된다. 소비자 줄었다는 제목의 주체는 지갑을 닫은 소비자(=가계)이고, 수익이 줄어든 기업과 자영업자들은 숨은 주체(재료)가 된다.


꼭 경제의 3주체인 기업, 가계, 우리나라 정부만 주체가 되는 건 아니다. G2라는 제목이 나오면 미국과 중국이고, 숫자 지표인 '지수'와 관련해선 해당 요소가 주체가 된다. 가장 흔한 주체는 코스피(=주가), 환율(=주로 원달러 환율), 경제성장률, 수출, 물가 등이다. '지수'가 주체로 등장하는 기사의 실질적인 영향을 받는 곳은 가계, 기업, 정부가 된다. 궁극적으로 크던 작던 내가 영향받게 된다.


세 번째 목표. 조리법 알기

음식을 먹을 때 '탕'이 붙어 있으면 뜨거운 국물 위주의 음식이고, '찌개'가 붙어 있으면 뭔가 자글자글 끓인 음식이라고 생각할 수 있다. '구이'는 불에 구운 것이다. 삶은 것인지 튀긴 것인지에 따라 우리는 어떤 음식을 먹게 될지 대략 예상할 수 있다.


조리법이란 앞에서 얘기한 재료들을 어떻게 요리했다는 말이다. 가장 쉬운 조리법은 '올랐다', '내렸다'가 된다. 주가나 환율, 물가, 부동산 가격, 수출, 성장률 등등 가장 흔하다. 그다음 흔한 것들은 '세진다'와 '약해진다'가 된다. 대출이나 거래조건을 강화하는지 완화하는지, 무역 갈등에서 상대방에 대한 압박을 강하게 하는지, 약하게 하는지, 특히나 정책을 결정하는 사람들을 평가할 때 매파, 비둘기파로 구분하는 것도 이와 비슷하다. 이와 비슷한 맛으로 '넓어진다'와 '좁아진다'도 있다. 확대인지 축소인지에 따라 맛이 달라진다.


조리법에는 '폭', '급'이란 단어가 종종 쓰이기도 한다. 이건 '조미료'같은 강조법이라고 볼 수 있다. 굽는 요리인데 더 빠르게, 혹은 더 높은 온도에서 구웠다는 것처럼 '폭등, 폭락', '급등', 급락' 등이 사용된다. 이런 제목의 기사는 맛이 강렬하다.


직접적으로 어떻게 요리했다는 설명이 흔하지만 맛본 사람들의 모습으로 표현하는 경우도 많다. '환호', '씁쓸', '패닉', '어쩌나...', '탄식' 등등 다른 사람의 표정으로 맛을 설명하기도 한다.


미리 공부가 좀 필요한 제목해석

맛이 진솔한 대신, 재료와 조리법은 미리 공부가 필요하다. 사람들이 잘 모를 것 같은 단어는 기사 본문에서 설명해주기도 하지만 제목에서 설명해 주는 경우는 없다. 길면 제목이라고 부르기 민망하다. 그러니, 재료와 조리법은 미리 공부할수록 제목에서 맛을 떠올리기 유리해진다. 미리 공부하기에 가장 좋은 책은 역시 '이것'이다. ('이것'의 설명은 글 본문 아래 개인적인 이야기에서 이어진다. 나도 한번 써먹어 보기로 했다)


최종 목표는 '그래서, 나는?'

경제를 공부한다는 것은 경제기사를 잘 풀어 해석한다가 아니다. 경제기사를 알기 쉽게 해석해 주는 경제 커뮤니케이터는 나 한 명이면 충분하다. 모두가 경제기사를 쉽게 해석하려 노력할 필요 없다. 경제를 공부하고, 공부 방법으로 경제기사를 읽는 목적은 '그래서 나는 어떻게 하지?'를 찾기 위해서다. 자기가 원하는 몸을 만들어 가는 것이 피트니스라면 자기가 원하는 자신의 경제상태(=자산상태)를 만들어 가는 것이 경제공부다. 경제기사를 읽고 주식을 살지, 산다면 어떤 종목을 고를지, 집을 살지, 대출을 받을지, 창업에 나서는 것이 좋을지, 그럼 어떤 업종이 좋을지, 해외가 나을지, 내가 좀 더 자기 계발에 힘쓸지, 그보다 소비를 줄이며 긴축재정에 들어갈지 결정하는 것이 경제공부의 최종 목표가 된다.


[제목 달기와 관련된 에피소드]

미디어사에 입사한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입니다. 병특 후배 하나는 출근하면 신문을 펼쳐놓고 뚫어지게 쳐다보곤 했습니다. '뭘 저렇게 열심히 쳐다볼까? 일하기 싫어서 신문 보는 걸까?" 궁금했지만 묻기도 뭐 했죠. 그 후배는 성실하면서도 공부를 잘했기 때문에 기사 이해를 못 할 리 없었죠. 나중에 친해지고 나서 후배에게 직접 들었습니다. "아! 제목 달기 연습한 거예요. 신문을 볼 때 일부러 제목을 가리고 본문을 읽어요. 그리고 나라면 제목을 이렇게 달겠다고 생각한 뒤에 제목을 보는 거예요. 그럼 제목을 잘 달았는지 내 생각이 맞았는지를 알 수 있거든요" 놀라운 대답. 이 후배는 지금 수도권 대학의 경영학부 교수님이 되었습니다.


[경제 초보에게 난리 난 이것]

경제초보를 위한 책 '세상친절한 경제상식'이 서점가에서 화제

라고 기사가 나오면 좋겠습니다. 과장이 안되도록 도와주실 거죠? 학교 도서관이나 집 주변 공공도서관에 책이 없나요? 어서 신청하세요.

분홍색 표지는 초판, 초록색 표지는 개정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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