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 전문가가 문학성을 갖추면
'미'를 받아와도 아무 말 없으셨던 아버지
국민학교 4학년 때부터 살이 붙었다. 내 평생 머리로만 이해하고 실감하지 못한 단어는 '허리'에 대한 정의다. 특히 '잘록한 허리'를 거울에서 본 적은 없다. 운동 신경 없던 나는 살까지 붙으니 운동을 더 못할 수밖에. 성적표에 상상할 수 없었던 '미'를 받아 들고 아버지를 뵈었다.
'얼마나 혼날까...'
별 말 없으셨다. 나중에 나에게 아이가 생기고, 이 아이도 운동을 못하는 것을 알게 됐다. 나도, 그리고 아버지도. 그러고 나서 아버지가 가족 식사 시간에 아내에게 말하셨다.
"운동을 못하는 거 괜찮다. 나도 못하고, 얘(=토리텔러)도 못했고 유전인데 어쩌니?"
여전히 난 못하는 것들을 읊으라면 여러 가지를 막힘없이 말할 수 있을 만큼 여러 가지를 가지고 있다. 그래서, 아이에게도 항상 '못하는 것을 잘해라!'보다는 '잘하는 것을 찾아라!'라고 말한다. 적당히 오래 살아왔는데, 잘하는 것을 더 잘하려고 하는 게 더 낫다. 못하는 것을 억지로 잘하려고 하면 노력에 비해 실력도 늘지 않고 무엇보다 스스로를 자학하게 된다. 그래서, 난 통일된 기준, 단일화된 기준을 체질적으로 싫어한다. 기준이 하나면 1등은 한 명 밖에 나올 수 없지만, 기준이 100개라면 1등은 100명이 될 수 있다. 왜 굳이 그걸 하나로 만드는지 여전히 모르겠다. 얘기가 많이 샜다.
좋아하는 책은 전문가가 쉽게 쓴 책
가장 좋아하는 책을 꼽으라면 '오주석의 한국의 미'를 늘 순위권에 올려놓는다. 그림에 관심이 있다고 말하고, 역사도 관심 있다고 말하면서 박물관과 미술관을 기웃거리기도 했지만 우리나라 그림을 볼 땐 뭘 어떻게 봐야 할지 몰랐다. 큰 감동도 잘 모르겠고. 그래도 모른 체 하면 뭐 하니 그림을 보고 '누구의 어떤 그림'이라고 말할 정도의 지식만 가지고 있다. 그때 만난 책.
"아는 사람이 쉽게 글을 쓸 줄 알면 이렇게 멋진 책이 만들어지는구나"
그 책을 읽고 나서 우리나라 그림이 다시 보이기 시작했다. 전문가가 보통 사람의 말을 쓰면 세상이 이렇게 달라지는구나. 그 이후로 나에게 능력에 맞지 않게 잡힌 목표는 '쉽게 쓰는 글'이다.
과학자가 이렇게 문학적으로 글을 쓰면
'떨림과 울림'이란 제목. 과학책에 전혀 어울리지 않는 제목. TV에 많이 나오는 약간은 성격 있게 생긴 물리학자 김상욱 교수. 이 분의 글은 문학적이다. 문돌이인 내가 흉내도 내지 못할 만큼 문학으로 표현해 낸 과학. 정확히 이해하지 못하지만 차가운 물리에서 표정을 발견하고 온도를 느낄 수 있을 것 같다.
우주는 초끈이라는 현의 오케스트라다. 그 진동이 물질을 만들었고, 그 물질은 다시 진동하여 소리를 만든다. 힌두교에서는 신을 부를 때, 옴이라는 단진동의 소리를 낸다고 한다. 이렇게 소리의 진동은 다시 신으로, 우주로 돌아간다. 결국 우주는 떨림이다.
이렇게 낭만적인 글을 쓰는 물리학자라니.
난 전문가가 자기가 알고 있는 내용을 쉽게, 그러면서도 핵심을 잃지 않게 말하고, 글로 쓰고, 설명하는 것을 가장 좋아하고 존경한다. 이 사람의 말을 내가 맞는 것인지 증명, 인증할 수는 없지만 적어도 그 사람은 자기가 무엇을 알고 어떻게 이해하고 있고, 어떻게 바라보고 있는지는 알 수 있다.
많이 아는 데, 알고 있는 것을 쉽게 설명할 줄 알면서, 글 잘 쓰는 사람 참 부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