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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Toriteller 토리텔러 Nov 28. 2023

횡재세(windfall tax)

가끔 등장하는 용어입니다. 횡재세. '횡재하다', '횡재 맞았다'는 식으로 옛날에 쓰긴 했지만 요즘 들어본 적은 없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아이에게 물어봤죠. 뜻을 알더군요. 자랑이 아니라 이 아이의 단어 수준을 다른 아이들과 비슷할 거라 생각하면 안될것 같았습니다. 그래서, 바로 "친구들이 사용하냐"고 물어봤습니다. 역시나 아이들은 사용하지 않는다고 하네요. 잘 사용하지 않는 단어들이 나올 때마다 드는 생각. 요즘 젊은 사람들이 한글을 왜곡한다는 이야기 말고, 사용하고 싶은 단어로 새롭게 만들어 낼 순 없을까요? 그게 인문학의 힘이 아닐까 싶은데.. 말이 또 샜습니다. 출발합니다. 횡재세가 대체 뭘까요?

횡재라는 말부터 알아봐야겠습니다. 국립국어원 사전에 나오는 '횡재'의 뜻은 '뜻밖에 재물을 얻는 것 또는 뜻밖에 얻은 재물을 뜻한다고 하네요. 중요한 단어는 '뜻밖에'입니다. 자신의 노력과 상관없다는 의미가 들어 있어야 합니다. 그래야 어울리거든요. '재수가 좋았다'와 비슷하죠. 

영어를 봤습니다. 횡재의 영어단어는 몰랐습니다. windfall.  바람(wind)에 떨어진(fall) 과일(재물)이 가장 먼저 떠 오릅니다. 까마귀 날자 배 떨어진다는 속담. 물론 다른 의미지만 상황은 비슷합니다. 

뒤에 세금(tax)을 붙여서 횡재세가 만들어졌습니다. 뜻은 '뜻밖에 얻은 소득에 물리는 세금'으로 직접적인 해석이 가능하겠네요. 그런데 기사나 다른 곳에서 '초과이윤세'라고 불러달라고 합니다. 아무래도 횡재나 windfall이란 단어엔 '노력했다'는 뉘앙스가 거의 없어서가 아닐까 추측해 봅니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노력 없이 얻어지는 경우는 '상속'처럼 태어나면서 자격을 얻는 경우 말고는 없는 것 같습니다. 가장 재수 좋다는 '로또' 1등 마저 자기가 돈을 주고 사는 최소한의 action은 해야 하니까요. 그래서, 초과이윤세로 부르고 싶어 하는 것 같습니다. 초과이윤세라는 단어에는 적정 수준의 이윤은 문제 삼지(적정 세금 이상은 매기지) 않겠다고 볼 수 있으니까요. 

횡재세가 이번엔 은행을 향했습니다. 최근(1년) 기억으로 횡재세를 부과해야 하는 대상으로 한 번은 정유사, 이번엔 은행으로 두 번 정도 기억 납니다. 유가가 한창 오르면서 기름값과 물가가 올라 모두가 괴로워할 때 정유사는 의도하지 않게 늘어난 정제마진으로 적정 수준 이상의 이윤을 챙겼다는 말이 나왔었습니다. 그때도 횡재세를 매겨야 한다는 기사들이 나왔었죠. 이번에 은행을 대상으로 그런 일이 벌어졌다는 뉴스입니다. 그래서, 은행은 대체 무슨 횡재를 한 걸까요?

기사에서 나온 것으로만 보면 은행이 이자 수익을 너무 많이 챙겼다는 주장입니다. 은행은 기본적인 업무가 여신과 수신입니다. 여신은 다른 말로 대출을 해주는 것(신용을 주는 것)이고, 수신은 예금을 받는 것(신용을 받는 것)입니다. 투자은행(IB)라고 부를 땐 은행이 여수신 같은 기본 업무 외에 투자업무도 하면서 수익을 높이는 은행을 말하는 것인데, 당연히 위험이 따릅니다. 은행도 수익을 내야 하는 기업이니 이자 수익을 얻는 것은 당연한 업무입니다. 그런데 이자 수익을 너무 과도하게 챙겼다는 주장입니다. 

은행의 이자수익을 표현하는 일반적인 단어가 '예대마진'입니다. 예금과 대출 간의 이자 차이(margin)를 뜻합니다. 헷갈리면 안 되는 부분이 있습니다. 예대마진은 은행의 가장 기본적인 수익구조입니다. 은행이 예대마진을 챙기는 것은 당연하다는 뜻입니다. 마치, 우리가 버스나 지하철을 타면 내야 하는 운임과 비슷합니다. 하지만, 은행에서 과도한 예대마진을 챙겼다는 주장이죠. 택시를 탔는데 미터요금을 받은 것이 아니라 바가지를 씌웠다는 뉘앙스로 들립니다.  

은행은 할 말이 많아 보입니다. 

한창 금리도 오르면서 이른바 레고랜드 사태로 채권금리가 엄청나게 올라가자 돈을 구하기 위해 예금금리를 높였습니다. 그러면서 5%에 육박하자 '예금금리를 너무 높이지 말라'는 얘기를 듣고 이자를 더 높이지 못했습니다. 그리고, '부동산 시장이 하락하는 것 같으니 부동산 시장 하락을 막으라고 해서 50년 장기대출을 만들었습니다. 그러다 주탣담보대출이 너무 늘어 가계대출이 위험하다는 말이 나오자 50년 장기대출 상품을 만든 은행이 대출증가의 원흉으로 지적받았습니다. 은행은 한다고 하는데 계속 욕먹는 상황이 된겁니다. 


미국 금리는 계속 올랐고 우리나라 기준금리는 동결하고 있었지만 시중금리가 움직이는 것은 당연한 이치입니다. 시장금리에 따라 대출금리가 움직일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니, 대출금리는 계속 올랐습니다. 은행의 예대금리는 당연히 벌어집니다. 여기서 정확히 알 수는 없지만 영리 기업인 은행에서 이런 상황을 싫어하진 않았을 것 같습니다. 아무튼 은행은 '횡재세'를 내야 하는 상황이 되어 버렸습니다. 은행권이 인정하든 하지 않든 말이죠.


소비자들의 할 말은 있습니다. 대출자들은 정말 힘들거든요. 기사에서는 '은행에 돈을 갚는 종 같다'는 매우 자극적인 표현까지 사용했습니다. 그렇게 힘들어 보이면 정부에서 소상공인들에게 보조금을 줘도 될 것 같은데 말입니다. 보조금은 안주고, 돈을 못 벌면 어쩌겠어요. 빌려야죠. 대출자도 금리가 높으니 죽겠다는 상황입니다. 


이제 기사가 좀 더 깊게 읽히지 않나요? (그래야 하는데 말입니다). 


'은행의 종 노릇 하는 것 같다'는 문구. 감정을 건드리는 솜씨 좋은 제목입니다. 앞에 尹은 윤석렬대통령의 줄임말이죠. 대통령이 이런 말을 들어서 언급했다는 제목입니다. 


'예대마진'은 위에서 설명했습니다. 예금과 대출 이자의 차이죠. '지대추구'라는 어려운 단어가 나옵니다. 왜 이런 단어를 쓰는지... 지대추구(地代追求 , Rent Seeking )는 '기득권의 울타리 안에서 자기 이익을 위해 비생산적 활동을 경쟁적으로 하는 현상'이라고 한국경제 사전에 나옵니다. 일반인들의 표현으로 하면 '돈줄을 쥐고 있는 은행이 자기 이익을 위해서 행동했다'정도로 표현할 수 있겠습니다. 그래서, 뒤에 '독과점'문제를 겨냥했다는 꼼꼼한 단어 배치로 문장을 마무리 합니다. 시중은행의 독과점이 심해서 경쟁체제로 바꾸겠다는정책의 효과(?)로 대구은행이 전국은행으로 발돋움하기도 했죠. 


정치권의 횡재세 논의. 이 기사가 나올 때만 해도 정치권이었는데 어느 순간부터 '야당'으로 정치권을 뜻하는 분류도 조금씩 바뀌어 갔습니다. 


은행의 입장은 적절하게 표현됐습니다. '당황스럽다'. '이자 수익 말고 다른 방안도 모색 중이다'는 말을 뒤집어 보면 외부고객이나 내부고객에게 딱히 좋을 것은 없습니다. 이자가 아닌 수익이라면 수수료를 높이는 것이 제일 먼저 나오는 수단이 됩니다. 다른 방법으로 '비용 효율화'(이른바 인력이나 지점 구조조정)가 있을 겁니다. 이런 것도 아니면 '투자은행'처럼 다른 상품을 많이 팔면 됩니다. 최근에 문제 된 상품이 뉴스에 많이 나오죠. 홍콩주가에 연계된 ESL을 팔아서 큰 손실이 우려된다는 기사. 상생금융에 '협조'했다는 말도 잘 보면 억울함이 드러납니다. 어디에 협조했을까요? 국민에게? 당국에게? 각자 판단해 보시면 될 것 같습니다. 




글 쓰기 천재도 아닌데 저녁에 휘리릭 쓰고 한번 정도 읽고 나서 등록하면 나중에 오타와 비문이 많이 보입니다. 그래서, 늦게나마 고칩니다. 글을 신성시하는 것도 안좋지만, 글을 너무 함부로 쓰는것도 안좋은것 같습니다. 


연말이 되니. 마음만 바빠집니다. 

교보문고 빌딩에 걸린 문구가 가슴에 들어왔습니다. 기사를 찾아보면 '교보생명, 이원 시인 '이것은 사랑의 노래'서 발췌했다고 합니다.

발꿈치를 들어요첫눈이 내려올 자리를 만들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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