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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일기

놀링하자_!

always be knolling

by Sarahn
놀링 (knolling)이란, 아티스트 톰 삭스에 의해 유명해진 개념으로- 서로 다른 물건을 90도 각도로 정렬한 다음 그것을 위에서 (평면적으로) 촬영하는 방법을 지칭한다. 요즘에 와서는, 수직 수평의 방향으로 물건을 나열하는 것에서 더 나아가, 어떠한 물건이건 나름의 기준으로 분류하고 배치하여 평면적으로 촬영하는 방법을 광범위하게 포함하고 있다. 인스타그램에서 #knolling 으로 검색하면 다양하고 많은 놀링 작업들을 찾아볼 수 있다.

*부제 -"Always be knolling "은 톰 삭스의 작품 제목에서 가져왔습니다.


좋아하는 것들을 나란히 가지런히 부지런히 배치하는 것, 그것을 정면으로 바라보는 것, 그것이 주는 시각적인 즐거움과 쾌감은 어디에서 오는 것일까.


"야생의 위로"에서 에마 미첼(저자)은

'나는 정리하고 진열하는 일과 연결된 정신적 경로에 호기심을 느낀다. 그것이 우리 조상들이 채집 여행 후 손에 넣은 잎과 열매, 씨앗, 견과류와 조개를 처리하던 과정까지 거슬러 올라가는지 궁금하다. 이 연결고리를 제대로 연구하려면 상당한 예산과 고고학자, 뇌신경학자의 작은 군단이 필요하리라. 내가 아는 것은 단지 발견한 것들을 가지런히 늘어놓는 소위 '놀링knolling'이라는 행위가 스트레스를 덜어주고 은근한 도취감을 준다는 것이다.'라고 서술한다.


나는 꽤 오래전부터, 산책길에 주워온 나뭇잎들을 정렬하고, 해변에서 주워온 조개껍질들을 정렬했다. 심지어 작업을 하면서 나오는 작은 샘플 조각들도 일렬로 정렬하여 보는 것을 즐겼다.


질서 없이 뒤엉켜있을 때에는 쓸데없어 보이던 작은 조각들이, 내가 부여한 질서에 따라 단정하게 자리를 잡으면 그제야 자신의 진정한 가치를 보여주었다. 그제야 우리의 만남이 우연이 아니라 필연이 되었다. 그것이 놀링과 나열의 차이점이다. 그냥 늘어놓는 과정이 아니다. 배치를 하다 보면 작은 조각 하나도 딱 맞는 자리가 있음을 알 수 있다.

모아둔 열쇠 오브제들도 놀링해서 기록으로 남겨두었다.

하지만 무엇보다, 그렇게 질서를 잡은 조각들의 조합은 깨끗하고 아름다워 보인다. 나라는 사람의 상태는 늘 카오스에 가까운데, 질서를 부여하는 것에 쾌감을 느낀다니 민망하기도 했지만, 그러한 활동들이 큰 만족감을 가져다준다는 것은 부정할 수 없다.


내가 즐겨하는 이 활동들이 '놀링knolling'으로 불린다는 사실을 비교적 최근에서야 알았다. 나만 아는 즐거움이라고 생각했던 활동이 사실은 이름도 있고 인기도 많다니- 나만의 것을 빼앗긴 서운한 기분이 드는 것은 어쩔 수 없다.

그래도 이름이 생겼다는 사실은 기쁘다. 놀링이라는 이름이 귀여워서 더 그렇다.(놀링은 마치, 놀자는 의지를 귀엽게 말한 것 같다. 나랑 놀링~!). 이름 덕분에 검색이 가능하니, 다른 이들의 놀링을 찾아볼 수 있다는 것도 큰 즐거움이다.



놀링이라는 정체를 알게 된 기념으로, 이번 여름 양양 여행에서 가져온 조각들을 정리했다. 사람 없고 조용하던 해변에서 주워온 여러 가지 조각들. 조약돌인지 조개껍질인지 구분이 안될 정도로 반들반들하게 다듬어진 동그란 조각들을 특히 좋아한다. 바다와 모래가 열심히 협업한 정성이 만져지기 때문이다.


모양이 온전하고 에지가 살아있는 조개껍질은 해변 여기저기에서 쉽게 찾을 수 있지만, 저런 조각들은 진지한 자세로 본격적으로 찾아야 한다. 먼저, 바닷물과 모래의 경계에 앉아 손을 모래 깊숙이 찔러 넣는다. 축축한 모래를 한 움큼 쥐고 있다가 밀려오는 바닷물에 손가락 사이를 슬쩍 느슨하게 벌려서 모래만 흘러 보내고 나면 저런 작고 동그란 조개껍질 조각들이 남는다. 자주 하다 보면, 모래 속에 찔러 넣은 손끝의 감각만으로 저런 조각들을 찾아낼 수 있다. 나는 이것을 몇 시간이고 할 수 있다.


작년에 갔던 여행지에서는, 해변가에 등을 구부리고 앉아 이것을 몇 시간 동안 하다가 그만 벌겋게 화상을 입고 말았다. 등이 그렇게 타고 있는지도 모를 만큼 빠져버렸던 것이다. 그때의 후유증으로 아직도 내 등에는 얼룩이 남아있지만, 몰입과 즐거움의 흉터라고 생각하면 자랑스럽다. 별게 다 자랑스럽다.


사실 바다엔 이런 동그랗고 반들반들한 껍질들을 모으기 위해 간다. 운이 좋으면 동그랗게 마모된 유리파편들도 발견한다.

이번 양양의 해변에서는 그러한 유리파편을 7개나 찾아냈다. 언젠가는 뾰족하고 위험했을 그 7개의 조각들이 모래와 파도에 부딪치고 비벼지고 깎여나가는 과정을 상상해본다. 다큐가 아닌 감동 드라마가 펼쳐지는 것은 나라는 필터가 그래서 그렇다. 다큐가 아닌 드라마. 덕분에 피곤할 때도 많지만, 이렇게 해변에서 주워온 작은 아이들의 드라마를 상상하며 쉽게 감동해버릴 때엔 유용하다.

감동을 담아 가지런히 줄을 세운다. 그 감각으로 모두 제자리를 찾아준다. 그렇게 모두 제자리를 찾아 완성된 작업은 한 편의 서사-감동 드라마이다. 적어도 나에게는.

다큐라는 필터를 지닌 이가 수집하고 배열하는 조개껍질 조각들의 모습은 어떻게 다를지 궁금하다. 같은 조건과 재료가 주어져도 사람의 수만큼 결과도 다를 것이다.


이쯤에서 조개껍질들로 놀링을 한 결과물을 벽에 걸어놓고 볼 수 있는 작업으로 남기는 방법을 간단하게 소개해보려고 한다.


1. 해변가에 앉아 본격적으로 조개껍질 조각을 모은다. 이런저런 조각들을 줍고 찾아내고 만지다 보면 자기가 좋아하는 형태에 대한 감을 발견할 수 있다.


2. 그렇게 모은 조개껍질들을 여러 번 씻어낸다. 그냥 말리면 냄새도 나거니와, 이런저런 이물질이 묻어있을 수 있기 때문이다. 여기저기 낀 모래도 제거할 겸 맑은 물이 나올 때까지 헹궈낸다. 그 후에 수건으로 물기를 잘 닦아내고 하루정도 말려서 물기를 충분히 제거해준다.

깨끗하게 목욕을 해서 뽀얗게 빛나는 조각들


3. 조각들을 붙일 캔버스와 (직사각형 원형 타원형 다 무관하다) 순간접착제를 준비한다. 직사각형 캔버스의 경우엔 반듯해서 수직 수평을 맞추기가 용이해서 좋고, 원형이나 타원형은 형태에서 오는 특이함과 배열의 융통성이 좋다. 취향 것 고르면 된다. 캔버스는 화방에서 또는 인터넷으로 구입 가능하며 가격은 3,000-6,000원 선이다. 나는 이번엔 타원형 캔버스를 선택했다.


타원형 캔버스와 순간접착제, 잘 말린 조개조각들이 준비물의 전부.


4. 조각들을 잘 살펴보고 어떠한 기준으로 나열을 할지 결정한다. 나는 색을 기준으로 나열하는 것을 좋아한다. 조각의 형태가 다양한 만큼 비슷한 색끼리 모여있어야 산만함이 없기 때문이다. 몇 년 전에 만들었던 놀링작업은 조각들의 크기를 기준으로 나열했었다. 기준은 자기가 원하는 것으로 정하면 된다.


하얀색인 조각끼리 모아본다

하얀색 중에서도, 붓터치를 한듯 질감이 느껴지는 조각들은 구분해둔다.


내가 좋아하는 마모가 많이된 조각들. 바다의 손이 많이 간 아이들이라서 정성이 느껴진다.


5. 정한 기준대로 러프하게 나열을 해본다. 그 과정에서 배열 상태가 만족스럽지 못하다면 기준을 바꿔서 재배치한다. 나는 배치해보니, 작고 동그란 조각들이 유독 많아서 그 조각들은 위아래로 겹쳐서 배열하기로 한다.


배열 상태가 어떤지 객관적으로 보려면, 카메라로 찍어서 사진을 확인해 본다.


동그랗게 다듬어진 유리파편들. 손으로 비벼도 어느곳 하나 뾰족하지 않아서 근사하다.


6. 배치가 어느 정도 끝나면, 마지막으로 조화롭게 배치가 잘 되었는지, 어느 한쪽으로 쏠리거나 기울어지지 않았는지 확인한다. 물건들에 질서를 부여하는 작업이므로 이왕이면 좌우 균형이 맞고, 수평 수직이 제대로 지켜진 것이 좋다. 그것이 완성도를 높여준다.


7. 위치 확인이 완료된 후에는, 위에서부터 차례대로 하나씩 순간접착제를 묻혀 캔버스에 부착한다. 이때, 순간접착제를 필요 이상으로 (흐를 정도로) 묻히지 않도록 조심한다. 캔버스에 순간접착제가 흐르거나 옆으로 묻어나면 마른후에도 번들거리는 얼룩으로 남기 때문이다.

위에서부터 한열씩 차례대로 붙이되, 왼쪽부터 또는 오른쪽부터 차례대로 붙이는 것은 좋지 않다. 그럴 경우 한쪽으로 치우칠 위험이 있다. 각 열의 가장 왼쪽, 가장 오른쪽을 먼저 붙이고 그것을 기준으로 일정한 간격을 봐가면서 나머지를 붙인다.


완성된 이번 여름여행 놀링 작업


8. 완성된 후에는, 캔버스 구석에 작게 여행지와 날짜를 남긴다. 작가의 서명처럼.


지난번에 만든 이 놀링작업의 경우에는 크기와 색이라는 두가지 기준으로 배열을 했다.


사실, 위의 몇 가지 규칙들은, 어떤 재료로 놀링을 하든 그대로 적용 가능하다. 다만, 패브릭이나 다른 기타 재질의 경우엔 순간접착제 외에 글루건 같은 다른 접착제를 활용해야 한다.

이런 식으로 아이가 어릴 적에 애착을 가졌던 작은 장난감들로 놀링을 하거나, 여행지에서 가져온 동전, 기차표, 입장권 같은 것들로 놀링을 할 수도 있을 것이다. 또는 잡지나 책에서 발견한 좋은 단어나 문장들을 오려내어서 놀링을 할 수도 있다. 또는 인상 깊게 본 영화에서 영감을 받아, 영화를 떠올리게 하는 소재나 오브제들로 놀링을 할 수도 있다. (아래에 Jordan Bolton 작업을 참고)


작업 전에 재료들을 놀링하면 여러가지로 도움이 된다
놀링 기법으로 완성한 작업

놀링을 한 것을 늘 캔버스로 남기는 것이 부담스러우면 사진만 남기는 것도 좋다. 기준을 정해서 나열하는 것 외에 정해진 규칙 같은 것은 없다. 중요한 것은, 우연히 수집한 물건들에 필연적인 제자리를 찾아주는 과정이기 때문이다.

마지막으로, 영화를 놀링 작업으로 표현하는 Jordan Bolton이라는 작가의 작품을 소개하려고 한다. 작가가 정렬한 오브제들만 들여다봐도 영화의 무드에 흠뻑 빠져들 수 있다.

Jordan Bolton으로 검색하면 더 많은 작업들을 찾아볼 수 있다.

이 글을 읽고, 놀링 에대해 좀더 자료를 검색해보고 나면, 아마도 당신은!....앞으로 그 어떤 작은 물건도 쉽게 지나치지 못하고 수집하려고 드는 호더(hoarder) 의 길로 접어 들게 될 것이다.나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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