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 열대어와 복어
우리 딸에게는 동생이 열일곱.. 아니라 이제는 열아홉이 있다.
고양이 , 도마뱀, 열대어 15마리, 복어 2마리.
그중에서도 고양이와 도마뱀은 좀 특별한 관계이다.
고양이 이름은 두부, 도마뱀은 낼름이. 나름 영어 이름도 있다. sally와 lizzy
새벽마다 두부는 낼름이의 케이지 위로 올라가 낼름이를 들여다본다. 또는 옆에 붙어 앉아 들여다본다. 또는 아래에서 뚫어져라 들여다본다. 한마디로 두부는 낼름이의 스토커이다. 그럴 수밖에 없는 이유가 있다. 인간들은 모두 잠든 깊은 밤부터가 이 두 친구에게는 주 활동시간이기 때문이다. 낼름이가 우리 안에서 폴짝폴짝 뛰어다니고 빠르게 기어 다니는 모습이 두부에게는 그 어떤 오락거리보다 재미있을 터이다.
낼름이 또한 두부라는 존재에게 익숙해진 것을 알 수 있다. 초기엔 두부가 우리 근처에 나타나면 낼름이도 알아차리고 모든 동작을 멈추고 얼어버리곤 했다. 그러나 지금은 두부가 나타나면 자기도 두부 앞으로 바짝 얼굴을 들이밀고 앉아있다. 흡사 둘이 눈싸움을 하는 것도 같고, 무언의 대화를 나누는 것 같기도 하다.
낼름이가-"야 이 집 인간들에 대해 어떻게 생각해?"라고 두부에게 물어보면
두부는 -"뭐 나쁘지 않다냥. 특히 조그만 인간에게 잘 보이는 것이 중요하지. 그러면 간식을 많이 준다냥!"라고 대답하는 것이다.
또는
낼름이가 -"야. 너 나 잡고 싶지? 하지만 잡을 수 없지롱!" 약을 올리면
두부가 -"냐앙. 언젠가는 너를 잡아먹고 말겠다!" 라며 분노로 발톱을 세우면서 부들부들....
나의 머리는 곧잘 이런 상상들의 가지로 빠져버리므로 이쯤에서 그만. 사실 이런 시나리오를 스무 개는 상상해보았다. 그중에는, 둘이 전생에 연인이었다는 설정으로 진행되는 대화도 있다. 어떤 필터로 둘을 보느냐에 따라 두부와 낼름이의 표정이 불안으로 번뜩이기도 하고 애틋함으로 아련하게 물들기도 한다. 진짜 이쯤에서 그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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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부에게는, 낼름이에 대한 애정(이라고 쓰고 집착이라고 읽는) 덕분에, 다른 고양이에게는 없는 특별한 센서가 하나 있다. 이름하여, '낼름이 안테나'. 우리 두부만의 초능력이랄까.
'어디선가 낼름이의 우리 문이 열리면~우다다다다 엄청난 속도로~ 틀림없이 틀림없이 나타난다~!'
딸깍, 희미하게 들리는 , 도마뱀 우리 문이 열리는 소리에 어디서든 우다다다다 달려오는 두부의 모습을 보며 속으로 짱가.. 아니 두부 응원가를 부른다.
특히 낼름이가 밥을 먹이는 날이면, 밤하늘의 별보다 더 초롱초롱하게 빛나는 두부의 눈을 볼 수 있다. 두부는 기본적으로 순하고 느리고 늘 졸린 눈을 하고 다니는 느긋한 고양이인데, 낼름이만 보이면 똘똘이 스머프가 된다. 아니면 그게 원래 두부의 디폴트 상태인지도 모르겠다. 원래 똘똘이 스머프인 아이인데 우리 인간은 너무 재미없는 대상이라서 늘 반쯤 잠이든 상태로 돌아다니게 되었는지도.
낼름이가, 내가 주사기로 주는 먹이를 낼름낼름 먹고 있으면, 두부는 그 앞에 몸을 동그랗게 말고 앉아서 낼름이를 예의 주시한다. 초기에 한두 번, 낼름이에게 솜방망이 펀치를 날렸다가 호되게 혼난 후로는 자기도 아는 것이다. 저 녀석은 만져서는 안 된다.. 참아야만 한다.. 본능적으로 훅 나가는 자신의 앞발을 막기 위해 발을 숨기고 몸을 동그랗게 말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낼름이에게 밥을 주는 동안 옆에서 착하게 잘 기다려준 보상으로, 낼름이와 코인사를 할 수 있게 해 준다. 그러면 두부의 작은 콧구멍이 바쁘게 벌렁거린다. 낼름이도 두부의 코에 자기 코를 맞대고 한참 그 순간을 음미하는듯하다. 그러면 다시 내 머릿속에선 둘의 대화가 시작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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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두부와 낼름이는 -아무런 준비 없이, 갑자기, 어느 날 훅 -우리 집에서 살게 된 아이들이다. 지인 집에서 파양 된 두부를 우리 집에 들이게 되었을 때에는, 원래 동물을 좋아하고 강아지도 키웠었고 고양이를 무척 좋아함에도 불구하고, 첫 한두 달은 산후우울증처럼 하루에도 몇 번씩 한숨이 나왔다. 자려고 누우면 '내가 이 아이를 20년 동안 책임져야 하다니! 앞으로 여행도 오래 못 가겠군..' 같은 걱정들이 몰려와 숨이 막혔다.
하지만 결국에 집에 털이 폴폴 날아다니는 것도, 하루에도 몇 번 돌돌이로 몸에 붙은 털을 때고 청소기를 돌리는 것도, 고양이의 대소변을 치우고 화장실을 씻고 말리는 것도, 모든 번잡스럽고 귀찮은 것들에도 다 익숙해졌다.
이제는, 방금 전까지 두부가 똥꼬 그루밍을 하는 것을 목격해놓고선, 그 입에 뽀뽀를 퍼붓는 경지에 이르렀다. 아침에 일어나면 가장 먼저 하는 일이 두부의 목덜미에 얼굴을 파묻고 부비는 것이다. 그러면 얼굴 전체에 두부의 털이 들러붙는다. 그럴 때면 딸과의 내기에 (우리 둘 중에 누가 먼저 헤어볼을 토해낼지) 이길 자신이 생긴다.
사실, 고양이에 대한 이야기를 시작하자면 끝도 없다. 두부는 나의 아침이자 밤이고 새벽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지금 하고 싶은 이야기는, 두부 덕분에 우리 아이에게 많은 동생들이 생겼다는 것이다. 두부가 그 문을 활짝 열어주었다. 살아있는 동물이 우리 집에 있다는 것에 대한 경계심의 벽을 완전히 허물어버렸다.
그렇게, 도마뱀도 우리 집에 오게 되었고 (우연히 방문한 파충류 박람회에서 눈이 너무나 예쁜 지금의 낼름이를 보고 한눈에 반해 데려왔다), 15마리의 열대어도 데리고 오게 되었고, 두 마리의 복어도 데리고 오게 되었다. 사실 15마리의 열대어가 마지막이다-라고 결심했지만, 딸이 열심히 시팔이를 하여 모은 돈으로 복어를 데리고 오겠다고 하여 최근에 복어 두 마리가 아이의 동생으로 더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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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하여 우리 집의 밤 낮은 바쁘고 정신이 없다. 나는 일어나자마자, 밤새 두부가 온 집안 곳곳에 뿌려놓은 하얀 솜털을 청소기로 빨아들인다. 아이는 일어나자마자 열대어에게 밥을 주고, 복어에게는 냉동 장구벌레 밥을 준다. 두부에게 습식사료를 주고 나면 고양이 화장실을 청소해야 한다. 감자와 맛동산이 몇 개 나왔나 확인하면서. 아이는 그 사이에 낼름이의 우리에 물을 뿌려준다. 저녁이 되면 다시 두부에게 밥을 주고, 밤이 되면 낼름이에게 밥을 준다. 새벽엔 낼름이 우리 위로 올라가 삐걱삐걱 시끄러운 소리를 내는 두부를 혼내기 위해서 여러 번 일어나야 한다. 또는 장난감을 물고 놀아달라고 우에엥 울어대는 두부를 달래기 위해 일어나야 한다.
그렇게 매일매일의 부산스러움을 반복한다. 일주일에 한 번 정도는 낼름이의 우리를 청소하고 어항에 물을 갈아야 해서 또 바쁘고, 한 달에 한 번은 어항의 여과기 필터를 꺼내서 씻어야 해서(물고기 똥으로 뒤범벅이 된!)또 난리가 난다.
그뿐만 아니다, 가끔 한 번씩 두부가 응가를 묻히거나 달고 다닐 때가 있다. 그러면 쫓아가서 잡아와서 씻겨야 한다. 그런 날이면 난리가 난다. 한 번씩 헤어볼을 토해놓으면 그것도 닦고 치워야 한다. 이제는 짧은 여행을 가려고 해도 그전에 준비해야 할 것이 너무나 많다.
'어우.. 내가 사서 고생이다. 이제 동물친구는 더 이상 늘리지 않을 것이야'라고 다짐해본들, 나는 동물들이 좋다. 동물들을 사랑하는 내 딸도 좋다. 그녀의 높은 공감능력은 다 동물에 대한 사랑에서 나온다는 것을 안다. 아이의 꿈이 수의사나 동물구조대원이 되는 것이라는 것도 너무나 멋지다. 동물을 사랑하는 마음은 내가 오히려 딸에게 배우고 있다.
요즘엔 아이가 시팔이로 버는 돈을 종종 유기견 구호 단체에 후원하기도 한다. 최근에 후원해준 유기견 삼 형제가 각각 좋은 주인을 만나게 되었을 때 아이도 나도 눈물이 날 만큼 뿌듯했다. 물론, 한 번씩 내 머릿속에서 펼쳐지는 동물들끼리의 드라마도 재미있다.
( 열대어 어항과 복어 어항이 서로 나란히 놓여있는데, 가끔 열대어 어항 속의 베타가 옆 어항의 복어와 한참을 마주 보고 있을 때가 있다. 그럴 때 또 내 머릿속에는 견우와 직녀의 드라마가 펼쳐지고...)
너무 귀찮고 번잡스러운데 그런 것에서 삶의 생생함과 즐거움이 나온다는 것을 배운다. 좀 더 나이가 들면 고요하고 절제되고 정돈된 삶을 원하게 될지도 모를 일이지만, 아직은 그래도 젊으니까 (또는 그렇다고 믿고 싶으니까), 실컷 복작복작하게 살아보자 하는 마음이다. 그 과정에서 고양이와 도마뱀의 우정을 목격하게 되는 것은 보너스이고.
사실 우리 가족의 캐릭터는,두부와 낼름이의 우정, 그 둘의 특별함에 슬쩍 껴서 묻어간다. 동물을 키워보면 안다. 누군가의 특별함이란 다른 존재와의 관계에서 나온 다는 것을. 거기에 조만간 베타(그럼피)와 복어 (짝이)의 우정도 더해지니 않을까 기대해본다.
그 증거로 아이가 쓴 시 한 편을 공개해본다. 이 시는 복어 두 마리를 데리고 오기 전에 쓴 시로 지금은 수정하여 동생 열아홉으로 읽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