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은 누구입니까?

02. 내가 내가 아닐때

by 토리양말

(머릿속 독백)

학교 다닐적 사회시간에 종종 접하는 차수에 대한 이야기를 기억하는지?


1교시 수학시간, 1차 함수, 2차 함수, 3차 함수...

2교시 사회시간, 1차 산업, 2차 산업, 3차 산업...

7교시 생물시간, 1차 소비자, 2차 소비자, 3차 소비자...


어찌보면, 우리는 자유와 평등을 표방하는 민주주의라는 정치체제에 살면서 이렇듯 계층화된 개념을 학교 다닐 때부터 익혀온 것인데 사뭇 현실적이면서도 궁극적으로는 체재이념과는 이율배반적인 교육을 받아왔다고 할 수도 있다. 사실은 그게 아니라고 할 수는 있지만, 실상 게층화라는 개념 자체에는 사회적 신분과 계급 개념이 들어가 있다.


돈을 벌기 위해서는 일을 해야 하고(사실 거의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해당되는 경우이기도 하다), 누군가는 돈을 벌지 않더라도 돈이 들어오는 소위 자본가의 삶을 사는 부류가 있다. 노동자와 자본가로 구분되는 삶, 계층화되고 신분적 개념이 아니고 무엇일까?


교육을 잘 받아서 좋은 성적을 얻어야 좋은 대학에 들어가고, 이는 졸업 후 사회적 인식으로 볼 때 통념상 좋은 일자리(?)를 얻는데 한 걸음 더 가까이 다가갈 수 있다. 마치, 흔들거리는 사다리를 한 발 한 발 딛고서 사과나무의 사과를 따는 과정이라고나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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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사과나무도 모든 것이 다 똑같지 않듯이, 어떤 사과나무를 어떤 조건에서 키우느냐에 따라 그 결실은 달라진다. 아니, 달라지는 것이 맞다. 좋은 교육을 위한 여건, 그리고 좋은 교육을 받기 위한 자격...이러한 요건 하나하나를 만족시키고 그 범주 안에 들기 위해서 우리 자신과 부모님들은 사회적 제도라는 테두리 안에서 고군분투하며 이제껏 살아왔고, 앞으로도 살아가야 할 운명이다.


여기서 문득 드는 생각...그럼 나 답다는 것은 무엇인가요? 진정한 나는 어디에 있나요?

200여년 전 프랑켄슈타인 박사가 했을 법한 질문을 오늘날에도 하는 것을 보면, 이 사회의 본질은 그 때와 지금이 크게 달라진것이 없는게 아닐까라는 일종의 회의감이 밀려온다. 과학기술이며 문명이 눈에 띄게 발전하고 진보하였음에도 말이다.



(본론으로 돌아와서...)

직장생활 5년차 종구는 오늘도 아침이면 반복되는 휴대폰 알람소리를 들으며 일어난다. 요일별 아침 기상도를 요약하자면, 대략 이러하다.


월요일 : 매우 나쁨. 주말 증후군 영향으로 월요일 오전까지 온 몸 엄습 예상. 월요일 야근이 있는 경우라면, 이는 쓰나미급 자연재해.


화요일 : 약간 흐림. 월요일의 쓰나미가 지나가고 차차 가라앉은 심리상태는 호전양상을 보임.


수요일 : 어느 덧 화를 다스리고 몸의 열기를 뽑아내니 몸에 갈증이 엄습. 술 한 잔 해도 괜찮은 날씨.


목요일 : 수요일날 술 한 잔 안 했다면, 목요일은 한 잔 제대로 하자. 목이 마른 목요일이기도 하거니와.


금요일 : 굳이 언급하지 않아도 되는 최상의 날씨. 주말을 감안한 최고의 컨디션. It couldn't be better.



(Narrative...독백...)

자동차의 수십만가지 부품이 묵묵히 자기 일을 할 때 우리가 탄 자동차는 언제나 그랬듯이 도로위를 움직인다. 말은 못해도 묵묵히 자기 역활을 다하는 자동차 부품 형제들이 있어서 우리들의 출근은 매우 효율적이며, 편리해진 것이 사실이다. 적어도 말을 타고, 자전거를 타고 다니던 시대와 비교했을 때는 말이다.


산업화 시대 이후로 새롭게 생겨난 '급여생활자'는 한 때, 인류가 만든 최고의 발명품?이라는 찬사를 받은 적도 있었을만큼 산업화 시대에서 중산층의 확장과 이는 곧 민주시민사회가 뿌리내리는데 결정적인 역활을 하였다. 하지만, 200년이 지나가는 현 시점에서 이런 질문이 든다.

과연, 지금도 이러한 급여생활자로 조직 속의 일원으로 어찌보면 획일적인 생활양식을 계속하면서 살아가는 것이 유효한가? 적어도 당신이 생계형이 아니라는 가정하에 말이다.


생계형이 아니라는 의미는 일을 통해 자신의 꿈을 확인하고 실현하며, 궁극적으로는 조금 거창하게 이야기하자면 '자아실현'을 이루는 부류라고나 할까. 다른 사람들과 달리, 삶의 지향점이 확실히 다른점이 있다. 현실적이기보다는 이보다 조금 더 높은 차원을 추구하는 경향이 있다. 누군가의 눈에는 물질적인 것을 추구한다고 솔직히 이야기하지 거창한 이유를 들이대면서 이를 미화하는 경향이 있다고 비판하는 부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렇게 포장해서 사람들에게 홍보하면서 그 존재감을 알리는 것도 능력이며, 전략의 일환이라고 생각한다. 사회가 좀 더 고도화되고 전문화 될수록 사람들은 그 내면에 있는 경향을 직설적으로 꺼내기보다는 이를 효과적인 수단을 통해 간접적으로 표현하려는 경향이 강하다는 것과 일맥상통한다고 생각한다.


결국, 이를 뛰어넘는 부류는(당연히 존재한다. 그런 사람들이 새로운 시대조류와 흐름을 생성한다. 당장 그 순간에는 다들 느낄 순 없어도...) 대부분의 생계형 급여생활자보다는 차수가 높은 것으로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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