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3. 가장 피폐할 때, 그리고 가장 절박할 때
이 구원의 손길(구원이라고 말하는 것 자체가 조금은 우습다. 절대자에 기대어 뭔가를 갈구한다는 ‘구원’이라는 단어가 과연 직장생활에도 여과 없이 적용될 수 있느냐를 따져보면 더더욱 그러하다.)이 이번에도 어김없이 스쳐, 아니 스치지도 않고 저 멀리 다른 사람을 붙들고 갈지는 시간이 지나면 서서히 윤곽이 드러날 것이다.
2011년 1월 입사하여 2022년 5월 현재까지 이곳에 몸담고 있는 나로서는 과거 수년 전부터 마계를 탈출하기 위한 설계도를 그려왔다. 생각해보니 벌써 8년이 다 되어간다. 마계성 탈출도를 그려온 시간이.
영화 빠삐용을 처음부터 끝까지 그것도 꼼꼼히 보지는 않았다. 하지만, 나는 탈옥이라는 행위는 감옥 밖의 사람들에게는 당연히 있어서는 안 될 반사회적인 범죄행위일지 모르지만, 감옥 안의 오늘내일을 갇힌 곳에서 살고 있고, 앞으로도 그렇게 살아갈 대다수의 묶여 있는 존재들 사이에서는 영웅적인 이야기이자 카타르시스를 안겨주기에 충분한 이야깃거리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죄수에게 있어 탈옥은 탈옥을 하기까지 죄수가 겪었을 온갖 시련과 기다림이라는 시간과의 싸움에서 얻은 멋진 전리품일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우리 직장인들은 어떠한가? 소소하게는 하루라도 빨리 금요일 퇴근시간이 되기를 기다리는 마음과 좀 더 좋은 곳으로 가야겠다는 탈출을 꿈꾸는 것, 어찌 보면 죄수의 그것과 별반 차이가 없을지도 모른다. 주위를 둘러보면, 삶은 이렇듯 포장에 따라 그 본질은 별반 차이가 없을진대, 겉으로는 전혀 달라 보이는 경우가 너무 많다.
뭔가에 매여서 살아가는 존재는 어느 누구나 맺힌 매듭을 풀고 밖으로 뛰쳐나가고 싶다는 욕구가 있다. 개인적으로 뛰쳐나가고 싶은 정도에 따라 “일탈”, “탈출” 이 두 개 정도로 구분해보면 어떨까? 하나는 나가긴 나갔는데, 조만간 아니 언젠가는 돌아올 것임을, 다른 하나는 영영 떠나버린 상태를 의미한다.
사실 매여 있는 매듭을 푸는데 가장 간단한 방법은 그 매듭을 칼이나 가위로 자르면 된다. 손쉽고 빨리 해결할 수 있다. 하지만, 한 번 잘린 줄은 어지간해서는 다시 복구가 안 된다. 마치 틀어진 인간관계를 회복하는 것 자체가 회복을 하였다고 하여도 예전 같지 않은 것처럼 말이다.
그런 이유에서인지 몰라도, 대부분의 직장인들은 그 매듭을 가급적 자르기보다는 풀고 나가려 한다. 꽁꽁 묶인 매듭을 풀기 위해 손톱이 빠져라고 반대방향으로 그 매듭을 당겨서 풀고자 한다. 어렵게 어렵게 풀어보면 쭈글쭈글한 줄과 멍든 듯한 엄지손톱만 남아 있다. 그러면서 마음 한편에 스스로를 위로하는 한 마디는 ‘이 줄은 언젠가 다시 쓸 일이 있을 거야’.
준비는 제쳐놓고, 이직에 대한 열망과 갈구가 부족해서였는지 모르지만 , 아직도 현업에서 고생하는 많은 분들; 오늘도 좀 더 나은 곳에서 제대로 대접받고 보람 있게 일하는 모습을 꿈꾸는 대한민국의 직장인들이여, “오늘도 파이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