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살아가는 세상
대통령 선거가 끝난 지도 한 달이 넘었습니다. 다음 달 초면 정권이 바뀌는 현시점에 문득 떠오르는 생각은…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은 ‘마계’가 아닐까
라는 어찌 보면 엉뚱하면서도 무시무시한 생각을 한 번씩 하게 됩니다.
회사에 그만큼 일이 없어서 그렇냐면, 그렇지도 않은 것 같습니다. 일은 계속해서 꾸준히 들어오고 기한 내에 마무리해야 할 과제들이 주어집니다. 회사에서는 회사일을 하는 셈입니다.
이제 어느 정도 의구심을 덜어내었다면, ‘이 세상이 마계가 아닐까’라고 생각한 제 논리를 설명해 보겠습니다.
‘내 편, 네 편’으로 나뉘어 진영 간 해묵은 논쟁부터, 최근에는 젊은 세대들의 남녀 간 대립까지 가세하며, 사회 전체가 양분되는 양상을 보여주었다면, 이는 저만의 생각일까요? 옳고 그름의 논리 이전에 ‘당신과 나는 생각하는 방식이 서로 다를 수 있다’는 포용과 관용의 자세가 필요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예전보다 정치인들이 민심에 좀 더 관심을 기울이고, 표심을 의식하는 것은 민주주의 정치제도라면 당연한 것이고 권장되어야 하는 것이 맞습니다. 다만, 정치인들의 그러한 성향이 얼마나 지속성이 있고, 진심이 담겨 있는지 생각해본다면 아직은 부족한 점이 많습니다. 본인을 지지해주는 유권자와 지역구의 이익을 대변하게 될 경우, 하지만 경제논리로 봤을 때 올바르지 않은 선택이라는 결론이 난다면 본인 지지층의 반대가 있더라도 ‘아닌 것은 아니다’라고 당당하게 말할 수 있는 일종의 강단, 소신이 아쉬운 것은 저 혼자만의 생각일까요?
‘마계’의 ‘ㅏ’가 ‘ㅗ’가 되면, ‘마계’는 ‘모계’가 됩니다. 어머니 중심의 ‘모계사회’가 연상이 됩니다. 여기서, 저는 부계사회와 대비되는 의미의 ‘모계사회’를 말하고자 하는 것은 아닙니다. 당연히 가부장적인 사회구조와 대비되는 모계중심의 사회를 이야기하는 것도 아닙니다.
어머니의 품은 늘 우리가 그려왔듯이 따뜻하고, 포근한 느낌을 줍니다. 갓난 아기 때 우리를 보살펴온 엄마의 그 모습이 시간이 흘러, 할머니가 되더라도 그 느낌은 크게 다르지 않을 것입니다.
어머니라는 단어에서 연상되는 ‘포용’과 ‘따스함’은 어찌 보면 우리가 살고 있는 현시점에 가장 필요한 것이 아닐까라는 생각이 듭니다.
지연, 학연, 혈연, 사회 곳곳의 각종 연결고리 이전에 상대를 인간 대 인간으로 가능하면 있는 그대로 바라보는 객관적인 시선은 상대방에 대한 존중이 전제되어 있을 때 가능합니다. 나와 그동안 살아온 과정이 달랐을 것이고, 이러한 이유로 내가 생각하고 생활하는 방식이 당연히 다를 수밖에 없다는, 상대방을 있는 그대로 인정하고 존중하는 자세, 어머니의 품과 같이 따스함과 관용이 스쳐 지나가지 않나요?
이상, ‘그랬으면 좋겠다’는 저 혼자만의 바람일지도 모르는 엉뚱한 생각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