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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상무 글쓰기 Jan 18. 2024

시민기자 생활을 하다






나는 신문사에서 20년간  업무직으로 경리, 기획, 사업국에서 일했다. 업무직으로 근무하면서 취재하는 기자가 부러웠다. 신문사에 입사하여 직종이 정해지면 특별한 경우 아니면 변경이 어려웠다. 그만둘 때까지 대부분 자기 직종에서 일했다.


퇴직 후 하던 일이 손해 보고 집에만 가만히 있을 수 없었다. 2009년 5월 어느 날 서울시 시민기자 시험모집 공고가 나와 지원해 합격했다. 명칭은 '하이서울 뉴스'였으나 '서울 톡톡'으로 했다가 '내 손안에 서울'로 바뀌었다. 자격조건으로 원고를 제출받아 글쓰기 능력을 검증했으나 2013년 7월부터 오마이뉴스와 마찬가지 누구나 시민기자가 될 수 있도록 방침이 변경되었다. 처음에는 자격조건이 까다로워 합격하기가 쉽지 않았다. 취재하는 일은 나이가 들어서도 할 수 있고 취재기자를 꿈꾸어 왔기 때문에 시민기자를 지원했다.


인터넷 신문이므로 인터넷으로 글과 사진을 올리는 것은 기본으로 알아야 했다. 시민기자 활동은 돈벌이가 아니고 서울시의 행사 내용을 알리고 서울 시민의 모범이 되거나 사회 그늘에서 희생하고 봉사하는 아름다운 이야기를 홍보하는 글이다. 취재 원고는 심사해 글솜씨가 있고 내용이 좋아야 기사로 채택되었다.


취재하는 일이 내 적성에 맞는지 돈벌이는 못 하면서 신바람 나게 취재했다. 이순신 장군 동상 제막식 하는 2010년 크리스마스 전날은 매우 추운 날씨였다. 경기도 여주에서 제작하여 한밤중에 광화문에 동상을 세우는 과정을 취재하게 되었다. 새벽 1~ 2시가 되니 기온이 내려가 밖에 대기하고 있던 기자들은 발을 동동 굴렀다. 그러나 대형 방송국 기자들은 마이크로버스 안에서 따뜻하게 취재했다. 충무공 오른손에 칼집을 잡고 있어 항복하는 장군과 같고, 전고가 누워있어 이상하다는 의견, 표준 영정과 동상이 다르다는 문제 등의 시비가 있었으나 이에 대한 증거를 제시하여  베스트 기자가 되기도 했다.


기사를 올리면 데스크에서 잘못된 부분을, 첨삭지도를 해주어 글쓰기 공부에 도움이 되었다. 

기사 쓰는 요령 교육은 봄가을 2회 정도 했다. 강사는 주로 현직 기자들이었다. 배경지식이 많으면 묘사력이 부족해도 글을 쓸 수 있어 부지런하게 자료 조사해 기사문을 썼다. 기사문만 주로 쓰다 보니 묘사가 필요한 문학적인 글을 쓸 때는 어려움이 많았다.


수당은 정말 쥐꼬리만큼 적었다. 사진 포함한 원고료는 4~5만 원 정도였다. 수당만 보고 시민기자 생활하는 사람은 없지만, 나의 발전에 많은 도움이 되었다. 시민기자 생활을 하며 사회적으로 성공한 사람을 인터뷰하며 오히려 내가 배운 게 더 많았다. 2024년 시민기자에 또 지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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