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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까칠한 서생 Aug 13. 2021

선거 없는 민주주의가 가능하다고?

<일반의지 2.0>, 빅데이터 시대의 '일반의지'

*이 글은 수정 보완되어 <우리를 배반한 근대>(엄창호 지음, 2023년 6월 여문책 발행)에 수록되었습니다.


1.

선거철이 될 때마다 내가 즐기는 엉뚱한 상상이 있다. 가령 A 후보와 B 후보에 대한 선호가 반반일 경우엔 나의 한 표를 0.5씩 배분해서 투표할 수는 없을까? 아니 딱 절반이 아니라 7대 3이라면 0.7과 0.3으로 배분할 수는 또 없을까? 정치에 무지한 사람과 냉철한 판단력을 갖춘 사람이 똑같이 한 표를 갖는 건 부당하니 그 정도에 따라 가중치를 부여하면 안 될까? 오래전부터 투표를 기다려온 사람과 마지못해 투표하는 사람을 구분해서 투표수나 득표수에 반영하는 방법은 없을까? 이런 상상은 비단 선거뿐만 아니라 각종 정책 결정 과정에도 확장되었다. 가령 법인세 인하와 같은 주요 국정 사안을 국회의원들에게 맡기지 말고 국민의 의견을 물어 결정하되, 개개인의 선호도, 전문성, 관련성 등을 섬세하고 구체적으로 반영해 결정할 수는 없을까? 물론 이 엉뚱한 상상이 실현되기 어려운 이유는 그런 내밀한 인간의 마음 상태를 알아내는 공정한 장치가 없다는 점 때문일 것이다. 그런데 이 난제를 해결할 수 있다는 주장을 펼친 인물과 책이 있다. 일본의 저명한 문예비평가 아즈마 히로키(東 浩紀)가 쓴 <일반의지 2,0>다. 


2.

아즈마 히로키의 <일반의지2.0>을 읽고 세 번 놀랐다. 우선 그의 창의적인 상상력에 놀랐고, 다음으로 그가 갈수록 정치적인 후진성을 드러내고 있는 일본의 학자라는 사실에 놀랐으며, 끝으로 그가 해석하고 제안하는 내용이 현재의 정보기술 환경에서 현실적인 설득력을 가진다는 사실에 놀랐다.

그는 장자크 루소의 유명한 개념인 '일반의지'를 탁월하게 재해석한다. 내 경우 일반의지와 전체의지는 늘 헷갈렸고 이를 명확하게 구분한 해설서를 찾기도 어려워서, 일반의지를 대충 공동선(common good) 정도로 이해하고 말았다. 하지만 그 일반의지가 어떻게 누구에 의해 결정될까 하는 의문을 늘 품고 있었다.


히로키는 루소의 <사회 계약론>에 근거해 일반의지가 인간의 의지가 아니라 사물의 의지이며, 토론이나 합의로 결정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짚어낸다. 그러고 나서 많은 정치철학자가 애매하게 얼버무렸던 이 내용을 현재의 정보기술과 접목시킨다. 이 대목에서 히로키의 창의성이 돋보인다. 그에 따르면, 현재의 정보기술 환경에는 대중의 욕망과 그 이력이 새겨져 있는바, 이렇게 축적된 데이터베이스가 사람들의 집합적 무의식이며 현대의 일반의지 즉 '일반의지2.0'이라는 것이다.


이러한 독특한 해석을 바탕으로 그는 대의민주주의에서 강조되어온 소통의 공론장이 왜 불가능한지, 일반의지2.0을 실현할 수 있는 정치제도는 어떤 것인지를 제시한다. 대의민주주의와 자유주의의 실패 원인을 분석 비판하고 대안을 제시하는 책은 대개 공화주의 정신이나 관용 및 절제의 전통을 회복해야 한다든가 숙의 민주주의를 활성화해야 한다는 주장으로 그치기 십상이었다. 이 책은 그런 당위성 대신 일반의지2.0이 현실에서 구현되는 민주주의2.0을 제안한다. 아직 제안의 단계라서 구체적이지는 못하지만 대단히 독특한 제안이다.


"앞으로의 통치는 선거를 통해 의원을 선출하고 긴 시간에 걸쳐 정책심의를 반복하는 복잡한 절차를 전부 폐기하고, 시민의 행동이력을 철저히 모아 그 분석결과에 다르면 되지 않을까?"


3.

이 책의 문제는 빅데이터 분석과 알고리즘을 과신한다는 데 있다. 10년 전 이 책을 쓸 당시만 해도 빅데이터라는 개념이 막 등장하기 시작한 시점이었고, 저자의 눈에는 그 엄청난 데이터혁명의 긍정적인 측면이 크게 부각되었을 수도 있다. 하지만 그동안 빅데이터 분석기술도 발전하는 동시에 알고리즘의 문제점도 부상하는 등 정보기술 환경이 급변했다. 더구나 글로벌 팬데믹을 맞아 일상의 소통환경도 상전벽해에 가깝게 변했다. 그래서 히로키의 후속 연구를 절실히 기다리고 있으나 아직 기별이 없다.  어쩌면 그는 끝내 개정판을 쓰지 못하게 될지도 모른다. 그는 인문학자로서 오롯이 자신이 감당하기가  어려운 과제를 던져놓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선거나 중요한 정치적 사건이 있을 때마다 현재의 대의민주주의가 과연 최선일까 하는 의문이 갈수록 심각하게 제기되고 있다. 아직 미완성의 문제작인 <일반의지 2.0>은 이 의문을 풀어가는 데 중요한 참고가 될 수 있으리라 본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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