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은 수정 보완되어 <우리를 배반한 근대>(엄창호 지음, 2023년 6월 여문책 발행)에 수록되었습니다.
1.
20대 가수 ‘케이시’가 부른 노래 중에 ‘그때가 좋았어’가 있다. “봄처럼 따뜻했던 그때가 좋았어/너 하나로 충분했던 그때가 좋았어/(...)/가진 것도 없고 초라했어도/서로만으로 충분했으니까 우린.” 헤어진 연인과 함께 보냈던 시간을 그리워하는 이야기가 감미로운 음색에 담겨 있다.
어찌 젊은 세대만 '그때'를 그리워하겠는가. 특정한 과거의 시간을 아름답게 기억하는 건 모든 세대가 공유하는 심성일 것이다. 누구든 경제적으로는 부족해도 정신적으로는 풍요로웠던, 하지만 이제는 돌아갈 수 없는 한 시절을 가슴에 품고 사는 법이다.
2.
시간상으로는 돌아올 수 없는 그 시절을, 현재의 특정한 공간 속으로 불러낸 드라마가 있다. 2018년 봄, '그때'가 좋았다고 생각하는 수많은 사람들을 울린 16부작 <나의 아저씨>다.
<나의 아저씨>는 서로 대비되는 두 개의 공동체를 축으로 전개된다. 하나는 '이익과 배제의 공동체'로, 삼안 E&C라는 대형 건설회사가 주 무대다. 이곳은 자신과 자신이 속한 패거리의 이익을 극대화하기 위해 음모, 협잡, 폭력, 사주, 도청, 미행 등 온갖 불법과 악행이 난무하는 공간이다. 이 공동체가 작동되는 원리는 단연코 이익이며, 누구든 이익에 반할 때는 철저히 배제되거나 응징된다.
또 하나는 '우정과 환대의 공동체'로, '후계동'이라는 서울 변두리 동네가 주 무대다. 이곳은 어릴 적부터 수십 년간 한 동네에서 한 형제자매처럼 살아온 사람들이 서로 돕고 베풀고 나누며 함께 분노하고 기뻐하는 공간이다. 작동 원리가 우정(또는 형제애)인 이 공동체에서 인연을 맺은 사람이면 누구라도 언제라도 따뜻하게 환대받거나 위로받는다.
남자 주인공 박동훈(이선균 분)은 이 두 공동체에 모두 걸쳐있는 인물로, 일종의 매개항이다. 양쪽에 걸쳐있긴 하지만 정확히 말하면 마음은 우정과 환대의 공동체에 두고 몸만 이익과 배제의 공동체에 와있다. 그래서 이익과 배제의 냉혹한 논리에 적응하지 못한 채 좋은 실력과 학벌에도 불구하고 늘 불이익을 당한다. 그래도 그는 타협하지 않고 자신의 직장인 삼안 E&C 내에서 우정과 환대의 가치를 꿋꿋이 지켜간다. 마침내 자신을 곤경에 빠뜨리려던 이지안(아이유 분)을 구원하고 외도한 아내를 회개시키며, 나아가 상무이사 진급이라는 극적인 반전까지 이루어낸다.
3.
어떻게 보면 이 드라마는 비현실적인 공간에서 비현실적인 교훈(권선징악)으로 마무리된다는 점에서 꽤나 신파적이다. 하지만 그 비현실적인 상황이 벌어지는 과정은 누구나 자신의 이야기로 느낄 만큼 대단히 리얼하다. 이것이 이 드라마의 묘한 매력이며 많은 사람들이 열광하는 이유일 듯하다. 이해타산에 휘둘리며 고단해진 삶, 배제 위협에 시달리며 지친 삶에 우정과 환대라는 큰 위안을 준다면, 신파인들 무슨 상관이겠는가.
이지안 역의 아이유 사회학자 이진경에 따르면 공동체(코뮌)란 "다양한 차이들, 여러 특이점들이 소통하며 공통된 것을 생산하는 곳"이라고 규정하면서, 동일성 안에서는 오히려 소통이 불가능하고 오히려 차이들만이 소통할 수 있다고 부연했다. 이렇게 보면 동일성을 강요하고 차이를 부정하는 삼안 E&C는, 특히 대표이사 도준영을 중심으로 하는 패거리는 거짓 공동체다. "사람을 알아버리면 그 사람이 무슨 일을 해도 상관없어"라고 말하는 박동훈이 속한, 작은 인연도 소중히 여기고 차이를 존중하며 환대하는 후계동이야말로 모두의 꿈이 담긴 진정한 공동체다.
후계동과 같은 마을 공동체는 중장년층에게는 어린 시절 기억 속에, 젊은 층에게는 한 번도 경험하진 못했지만 소망의 영역에 늘 존재하고 있다. 이 드라마는 그 원형의 심성을 소환하며 삶의 의미를 묻고 있다.
4.
나는 후계동 마을을 보며, 헬레나 노르베리 호지 여사가 <오래된 미래>에서 소개한 라다크를 떠올렸다. 라다크는 중국과 파키스탄과 티베트 접경의 인도 통치지역으로, 본격적인 개발이 시작되는 1970년대 초까지는 전통사회의 모습이 고스란히 남아있던 곳이다.
<오래된 미래>에서 소개하는 라다크의 원래 모습을 살펴보자. 라다크는 공존의 지혜가 살아있는 곳이다. 사람들은 이웃들과 좋은 관계를 유지하는 것이 돈을 버는 것보다 중요하게 여긴다. 배려와 관용이 일상화되어 있고, 간혹 갈등이 생겨도 늘 자발적 중재자가 나타나 갈등을 조정한다. 마을마다 모임이 활성화되어있어 대소사를 다 함께 모여 상의하고 결정한다. 개인의 이익과 공동체 전체의 이익이 상충되는 일은 거의 없다. 사안별로 품앗이 공동체가 늘 작동한다. 출산, 결혼, 장례 시 서로 도와주는 ‘파수푼’, 농사일을 서로 돕는 ‘베스’, 가축을 공동으로 돌보는 ‘라레스’, 농기구나 가축을 공동으로 활용하는 ‘랑제’ 등이 있다. 아이들에게는 모든 마을 사람들이 무한정하고 무조건적인 사랑을 베푼다. 젊은이들은 노인들의 경험과 경륜을 존중하고, 여성의 사회적 지위도 확고하다.
라다크 사람들은 자기 자신보다 훨씬 더 거대한 그 무엇인가의 한 부분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자신은 타인과 분리될 수 없는 연결 속에 존재한다고 믿는다. 사람 간에 긴밀한 유대가 형성되어 있어 고도로 상호의존적이다. 이런 풍요로운 구조 속에서 개인은 자신이 진정으로 자유롭고 독립적인 존재라고 믿는다. 구성원 사이의 돈독한 유대는 내면의 평화로움과 기쁨이 넘치는 삶의 태도로 이어진다. 그래서 늘 행복감과 생동감 그리고 활기가 넘치는 곳이다. 그때까지 라다크의 모습은 바로 <우리 아저씨>의 후계 마을을 닮은 ‘우정과 환대의 공동체’이다.
호지 여사(왼쪽에서 두번째)와 라다크 사람들 1974년 인도 정부가 라다크를 관광지로 개방하면서 서구식 개발이 추진되었다. 본격적으로 시작된 근대화는 많은 변화를 가져왔다. 교통 정체와 대기오염이 만연해졌다. 인구가 크게 늘고 농촌인구의 도시 유입도 가속화되었다. 영화나 TV를 통해 화려한 서구문화가 들어오면서 젊은이들은 고유문화에 대해 열등의식을 느끼게 되었고, 어린이들은 자신들이 사는 문화와 자연을 분리해서 생각하기 시작했다. 화폐경제가 활성화되면서 사람들은 땅을 교환가치로 바라보게 되었고, 농부들은 갈수록 이윤 창출에 대한 압박을 받았다. 돈독했던 사람들 사이에 생긴 틈이 점점 벌어졌고, 소비상품이 문명화의 척도가 되었으며, 현대식 생활시설이 높은 신분의 상징이 되었다. 보편화된 소비 지향주의는 정서적 불안감을 야기했다. 이 불안감은 다시 인정받고 사랑받기 위한 욕구로 작용해 더 많은 소비를 부추겼다. 강요된 서구의 표준 이미지는 고유문화와 정체성의 뿌리를 부정하게 만들었다. 개발 이후 이러한 라다크의 모습은 <우리 아저씨>의 삼안 E&C를 닮은 ‘이익과 배제의 공동체’이다.
1980년 노르베리 호지 여사는 ‘라다크 프로젝트’라는 국제기구를 만들어, 개발 이전의 라다크를 복원하는 사업을 펼쳤다. 서구적 경제개발 모델은 현실 문제를 해결하는 대안이 되지 못할 뿐만 아니라, 문화와 정서 그리고 환경적 측면 모두에서 지속성을 갖지 못한다는 신념이 있었기 때문이다. 호지 여사는 전통과 개발의 공존을 통해, “나는 라다크 사람들이 수 세기 동안 영위해온 사회적, 생태학적 균형을 희생하지 않고서도 그들의 삶의 수준을 끌어올릴 수 있다는 것을 확신한다.”라고 말한다. 그녀는 이를 ‘탈중심화 개발’이라고 부른다. 지금 라다크는 이 프로젝트 덕분에 과거의 모습을 거의 찾아가고 있다고 한다.
5.
근대는 무한한 성장을 통한 행복을 약속하면서 풍요와 편리함을 안겨주는 대신, 모든 관계를 교환가치로 바라보게 하면서 우정과 환대와 같은 상징가치들을 빼앗아갔다. <나의 아저씨>는 많은 사람의 가슴 깊숙이 도사리고 있는 그 상징가치들을 소환하는 드라마였고, <오래된 미래>에서 호지 여사가 추진한 '라다크 프로젝트'는 무분별한 개발로 훼손된 그 상징가치들을 복원하는 작업이었다. 이 두 텍스트에서만큼은, 희망은 미래에 있지 않고 과거에서 온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
<나의 아저씨>는 박동훈과 이지안이 우연히 만나 안부를 확인하고 헤어지는 것으로 대미를 장식한다. 두 사람이 마음속으로 나눈 마지막 대화가 아직 내 귓전을 맴돈다. 박동훈은 지안(至安)이라는 이름의 한자 뜻을 생각하며 “지안, 편안함에 이르렀나?”라고 묻고, 지안은 “네, 네...”라고 대답한다. 그런데 우리의 공동체는 어떨까? 갈수록 심해지는 불평등과 여전히 살아있는 특권세력, 만연한 소비주의와 법 지상주의로 아직 편안함에 이르지 못한 듯하다. **
좋아요
댓글 달기
공유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