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건희 씨의 논문 표절 논란을 지켜보며 문득, 논문 지도 및 심사와 관련된 내 경험을 정리해보고 싶어졌다. 나는 수도권 모 대학의 특수대학원에서 7년 반(15학기) 동안 겸임교수로 근무하면서, 학위논문에 관한 갖가지 사례를 직간접적으로 보고 들었다. 겸임교수는 대개 강의만 전담하지만 논문을 심사하기도 하고 공동지도라는 제도를 통해 논문을 지도하기도 한다. 당시 나는 몇몇 학생의 논문 지도교수로 이름을 올린 적이 있다. 물론 나는 특수대학원의 긍정적 역할에 대한 믿음을 가지고 강의했으며, 드물게 찾아오는 논문 지도와 심사 과정에서도 나름 성실하게 임하려고 노력했다.
하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나도 결국에는 그 부정/부실한 논문을 양산하는 카르텔에서 나사못 역할을 했다는 생각이 들어 지금도 낯이 뜨거워지곤 한다. 그 카르텔을 ‘뒤틀린 욕망의 카르텔’이라 부를 수 있겠다. 그 카르텔의 참여자는 ‘돈벌이에 혈안이 된 대학(재단) 측의 욕망---학문보다 실적에 연연하는 교수의 욕망---학벌/신분 세탁을 원하는 학생의 욕망’이다. 그런 카르텔이 가능한 배경에는, 사람을 실력보다 가방끈으로 재단하는 우리 사회의 잘못된 가치관이 있을 것이다.이제내가 겪은 두 가지 에피소드를 통해 그 비겁하고 쪼잔한 욕망들을 들여다 보기로 하자.
2.
첫 번째 에피소드. 어떤 겸임교수 한 분이 불미스러운 일로 학기 중에 갑자기학교를 떠나게 되었고, 그가 논문을 지도하던 학생들을 다른 교수들이 나눠서 맡아야 할 상황이 벌어졌다. 어느 날 학과장이 나에게 전화를 해서는, 분배해야 할 학생이 10여 명인데(겸임교수 한 명이 한 학기에 10여 명의 논문을 지도한다는 것 자체가 말이 안 된다.) 몇 명을 보내드릴까요,라고 티끌만큼의 거리낌이나 주저함이 없이 물었다. 내가 답하기를, 논문을 지도하려면 내 강의를 들은 학생이어야 하고, 논문 주제가 내 전공이나 전문성과 부합해야 한다는 게 기본 전제인데, 그 학생들 중에는 내 수업을 들은 학생도 없지만 내 전공이나 전문성에 부합하는 주제로 논문을 쓰는 학생도 없으니맡기 어렵다고 했다. 그러자 학과장은 이럴 때 학과를 위해 협조해주어야 한다, 맡지 않겠다는 건 무책임한 행위라며 불만을 표시했다. 나는 겸임교수일 뿐 내 본업은 따로 있으며 현재 맡고 있는 3명도 벅찬 상태다, 만약 지도할 학생을 더 맡으라면 겸임교수직을 포기하겠다고 대답했다. 학과장은 못마땅한 목소리를 뒤로하고 전화를 끊었다.
그가 논문 지도 학생을 맡기려 하면서 왜 그토록 당당하게, 마치 선물이라도 준다는 듯이 말했는지를 어렴풋하게나마 깨달은 것은 한참이 지나서였다.이는 필시 거마비 수입과 관련되어 있을 것으로 짐작된다. 하지만 논문 지도 학생 수가 많아지면, 더욱이 논문 주제가 전문성이 없는 분야라면, 어쩔 수 없이 부정/부실한 논문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커질 수밖에 없지 않겠는가. 이 사건은 논문의 질보다는 졸업생(곧 입학생)의 양산을 더 중시하는 특수대학원의 실태를 잘 보여주는 사례로 내 기억 속에 남아있다.
3.
두 번째 에피소드. 내가 심사위원 5인 중 1인으로 참여한 박사 논문 심사장에서 벌어진 일이다. 그날 논문을 심사받을 한 학생이 논문 가제본을 심사위원들에게 돌렸는데, 문제는 가제본만이 아니라 그 밑에 봉투를 밀착시켜 함께 돌렸다는 점이다. 봉투를 슬쩍 열어보니 적지 않는 돈(수표?)이 들어있었다. 낯이 뜨거워진 상태에서 다른 심사위원들을 둘러보았더니 다들 아무 일 없다는 듯이 봉투를 안주머니에 넣고 있었다. 나는 그날 그 심사장에서 몇 가지 지적을 했고, 어쨌든 그 1차 심사는 그럭저럭 끝났다. 하지만 집으로 돌아오면서, 왜 그 자리에서 봉투를 내팽개치며 퇴장하는 정도는 아니더라도 바로 돌려주지 못했을까 하고 후회했다. 생각할수록 부끄러운 기억이다.
그로부터 일주일쯤 지난 어느 날, 그 논문을 발표했던 학생이 수정한 논문을 들고 내 사무실을 방문했다. 나는 내가 지적한 부분을 수정했는지 검토했으나 몇 가지는 수정되지 않았음을 발견하고는 재차 수정을 요구했다. 그 학생은 (이유는 뭔지 기억나지 않지만)수정하기 어렵다고 당당하게 대답했다. 나는 그렇다면 서명할 수 없다고 응답했다. 그제야 그는 수정해서 다시 방문하겠다고 말하고는 돌아갔다. 그가 처음에 심사위원의 정당한 수정 요구를 당당하게 거부할 수 있었던 이유는 무엇일까. 봉투의 효과를 과신한 탓이 아니라고 말할 수 있을까.
그 일이 있은 다음부터 나는 논문 지도 및 심사와 관련해서 학교에서 공식적으로 지급하는 수당 이외에는 어떤 추가 혜택도 받지 않겠다고 다짐했고 실천했다. 그랬더니 그 이후 뜻밖의 일들이 벌어졌다. 학기가 지날수록 나에게 오던 논문 지도와 심사 의뢰가 점점 줄어들더니 마침내 사라진 것이다. 그리고 얼마 후 당시 대학원장으로부터다음 해 재계약이 어렵다는 통보를 받았다. 대학의 논문 장사 문제뿐만 아니라 갈수록 실용화되고 친기업화되고 있는 대학의 환경에 대한 반감 때문에 이런 자리를 계속 유지해야 하나 하는 회의를 느끼던 차에, 나는 울고 싶을 때 뺨 맞는다는 심정으로 그 통보를 흔쾌히 받아들였다. 물론 나의 봉투 거부와 학교 측의 재계약 거부 사이에상관관계가 있다는 물증은 없다.
4.
김건희 씨의 논문이 검증의 도마 위에 올라있다. 박사논문의 경우, 논문을 수여한 국민대는 스스로 판 자기 무덤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있다는 느낌이 든다. 이 논문이 부정/부실한 논문인 건 인정하지만, 그렇다고 논문 취소 등 강경 처분을 내리면 그동안 양산한 부정/부실 논문은 어찌할 것인가. 벌 한 마리 잡으려다 벌통 전체를 들쑤시는 건 아닐까. 이 논문의 통과에 관여한 해당 대학원 소속 교수들은 아마도 이런 고민 끝에 내린 보신용 판단을 연구윤리위원회가 받아들여, 한때 검증 시효가 지나 조사하지 않는다는 해괴한 결론을 내리기까지 했다. 그러다가 여론에 밀려 마지못해 조사에 들어갔지만 결국 표절이 아니라는, 눈 가리고 아웅 식 결과를 발표하기에 이르렀다.
뒤늦게 문제가 되고 있는 석사논문의 경우에도 크게 다르지 않을 것 같다. 얽히고설킨 이권의 카르텔 속에서, 논문을 수여한 숙명여대가 국민대와는 달리 새삼 공정한 판관이 되기란 매우 어렵다고 본다.
어디 국민대와 숙명여대뿐이겠는가. 위에서 말한 두 가지 에피소드는 내가 그 대학에서 직접 경험한 일들 가운데 일부일 뿐이다. 간접적으로 들은 일들과 물증은 없으나 심증은 있는 일들까지 포함하면 대학의 부정/부실 논문 문제가 대단히 심각하다는 게 당시의 내 판단이었다. 특히 특수대학원의 경우 상당수가 부실 논문과 편법수업으로 학위 장사하고 있으며, 문장력이나 문해력의 기초가 약한 학생들이 상대적으로 더 많은 미술/디자인 계열 특수대학원의 경우에는 더 심각한 듯했다. (미술/디자인 계열 교수 중에는 논문을 지도하거나 심사할 능력이 안 되는 사람도 많다.) 통계 조사 의뢰를 이유로 버젓이 대필이 이루어지는 일은 이젠 공공연한 비밀도 아니고 상식에 속한다. 뒤틀린 욕망의 카르텔의 한 축인 교수들은 논문지도와 심사를 부실/부정하게 진행하는데 대해 도덕적으로 갈수록 둔감해지고 있다.
5.
그렇다고 석사든 박사든 학위가 전부 부실하다고 속단하는 일은 절대로 바람직하지 않다. 학위는 그 자체가 소중한 것이 아니라, 거기에 바쳐진 학문적 열정과 거기에 담긴 공동선의 가치와 그로부터 발생할 공동체에 대한 희망이 소중한 것이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전자보다 후자를 보는 밝은 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