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밀턴 프리드먼'이라는 주술

시카고학파와 재난 자본주의

by 까칠한 서생

*이 글은 수정 보완되어 <우리를 배반한 근대>(엄창호 지음, 2023년 6월 여문책 발행)에 수록되었습니다.


얼마 전 대선 과정에서 "없는 사람들에게 부정식품을 먹도록 허용하자"라는 한 후보의 발언이 도마 위에 올랐다. 밀턴 프리드먼 Milton Friedman의 <선택할 자유 free to choose>에서 인용했다는 이 발언은 결국 근거없음으로 밝혀졌지만, 그 인터뷰 장면은 그가 프리드먼을 맹신하고 있다는 물증이 되기에 충분했다. 그는 "프리드먼 책에 아주 딱 나와 있어요~"라고 했다. 프리드먼의 책에 나와 있으면 만고의 진리가 된다는 투였다. 그는 그 책을, 경제학 교수 출신인 아버지의 추천으로 읽었다고 했다. 그의 아버지의 전공은 통계학으로 경제학의 본령에서 다소 비껴나있지만, 여러 정황상 그가 주류경제학과 프리드먼을 추종했다고 추론하는 것이 자연스럽다. 어떤 이론이든 역사적 혹은 정파적 한계를 안고 있어서, 그 한계 속에서 그 이론을 이해하지 못할 때 학문적 추종과 맹신이 생긴다.



밀턴 프리드먼을 맹주로 한, 신자유주의의 본산 시카고학파를 비판하는 대표적인 책이 나오미 클라인의 <쇼크 독트린 Shock Doctrine>이다. 주류 경제학을 비판하는 책으로, 장하준의 <그들이 말하지 않는 23가지>도 있고 조너선 앨드니드의 <경제학은 어떻게 권력이 되었는가>도 있지만, 이론적인 측면이 강한 이들에 비해 <쇼크 독트린>은 저널리스트의 관점에서 주류 경제학의 진원지인 시카고 학파를 집중 해부한다는 점에서 그 학파의 문제점과 한계를 훨씬 더 생생하게 전달하는 책이다.


<쇼크 독트린>에 따르면 프리드먼 식 사고의 바탕에는 조폭의 논리가 깔려있다. 그리고 이론을 제시하는 데 그치지 않고 실제로 조폭짓을 했다. 프리드만은 이렇게 말했다.

"실제로든 아니면 인식이든 간에, 오직 위기만이 진짜 변화를 만들어낸다. 위기가 발생하면 이제껏 밀려났던 사상에 근거한 조치가 취해진다. 또한 과거엔 정치적으로 불가능했던 일들이 오히려 불가피해진다. 우리는 그때가 올 때까지 기존 정책에 대한 대안을 발전시키고 지속시켜야 한다."


점잖은 용어로 위장한 포장지를 벗겨내면, 위기를 조장해서 약점을 잡은 다음 정치적이나 정책적 측면에서 꼴리는 대로 하겠다는 얘기다. 프리드먼과 그의 따까리 시카고 보이즈(Chicago Boys)들은 미국 정부와 손잡고 실제로 그렇게 했다. 그 대표적인 사례가 1970년대 칠레, 1997년 한국을 포함한 동아시아의 금융위기다.


미국을 등에 업고 무력으로 민주 정부를 붕괴시킨 칠레의 피노체트 장군에게 프리드먼은 세금감면, 자유무역, 사회지출 삭감, 탈규제화 등 신속한 경제변혁을 조언했고, 칠레는 몇 년 후 경제적으로는 물론 정치적으로도 나락으로 떨어졌다. 1997년 우리나라의 금융위기도 마찬가지였다. IMF의 개입과 민영화로 대표되는 신자유주의 체제로의 급속한 진입과 이로 인한 시장 만능주의의 폐해는 우리가 익히 잘 알고 있는 바와 같다. 막전막후의 사정은 영화 '국가부도의 날'에서도 흥미롭게 다루어졌다.


<쇼크 독트린>의 저자 나오미 클라인은, 위기와 재난을 이용하는 아이디어는 밀턴 프리드먼의 상투적 수법이며 근본주의적 자본주의는 재난이 있어야 출현할 수 있다고 말하면서, 이를 '재난 자본주의'로 규정하고 있다.


그 후보 부자처럼 프리드먼을 신처럼 받드는 사람들에게, "경제는 너무나 중요해서 경제학자들에게 맡길 수 없다" 말을 꼭 들려주고싶다. 아 참, "우리가 경제학을 공부해야 할 이유는 경제학자들에게 속지 않기 위해서다"는 말도 있다. 또 "유한의 세계에서 끝없는 경제성장이 계속될 것으로 믿는 자는 미치광이이거나 경제학자이다." 라는 말도 있다. 여기서 말하는 경제학자란 시장의 만능을 주술처럼 외치는 주류경제학자임은 물론이다. **

keyword
작가의 이전글'이완용'이라는 은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