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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리한 감독’의 ‘잘 만든 영화’

봉준호의 <미키 17>에 대하여

by 까칠한 서생

봉준호 감독의 <미키17>을 봤다. <기생충> 이후 6년만에 내놓는 작품이라 그런지, 스토리의 완성도도 높았고 기술적인 공도 많이 들어갔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솔직히 나는 SF를 그리 좋아하지 않는다. 지독할 만큼 리얼리즘에 집착하는 탓에, 조금만 비현실적 요소가 발견되면 바로 시청을 중단하거나 취침모드로 자동 전환된다. 그도 아니면 시계를 수시로 들여다보는 것으로 불만을 표시한다. 이건 영화관객으로서 나의 명백한 한계일 것이다. 그런데 (하나의 장르로 규정할 수는 없다지만 그래도 SF영화라고 할 수밖에 없는) <미키17>은 나를 시종일관 몰입하게 만들었다. 스토리와 주제의식과 기술의 구사가 내 평소의 취향을 무너뜨릴 만큼 좋았다는 뜻이다. 그만큼 '잘 만든 영화'다.


하지만 어떤 장르의 작품이든(문학이든 미술이든 음악이든) 잘 만들었다는 건 최고의 찬사가 아니다. 어떤 사람에 대해 "일은 잘한다"라고 말할 수 있는 정도의 느낌이랄까. 사람은 일 잘하는 것도 필요하지만 때론 인품이나 인간적인 매력이 더 중요할 때도 있다.


내가 최고의 찬사를 보내고 싶은 작품은 역사 속 인간의 단면을 통해 삶의 진실을 환기해주는 작품이다. 역설적으로 말하면, 작품으로 느껴지지 않는 작품이다. 그런 작품은 무엇보다, 그래 나에게도 그런 시절이 있었어 하고 회상하게 해주거나, 나라면 어땠을까 하고 상상하게 만들거나, 혹시 나에게도 저런 시절이 있을 수 있었는데 지나쳤던 게 아닐까 하고 반성하게 만든다. 내가 주세페 토르나토레 감독이 연출하고 엔니오 모리코네가 음악을 맡은 <시네마 천국>을 인생영화로 꼽는 이유다.


나에게 봉준호는 훌륭한 감독이라기보다 영리한 감독이다. 작품성(주제의식)과 상업성(흥행)을 조화시키는 재주가 탁월한 테크니션이다. 부정성(디스토피아)을 맛나게 요리하여 제공함으로써 상업성을 극대화하지만, 전체적인 스토리를 긍정성(휴머니즘이나 공동선)의 프레임 안에 묶어둠으로써 작품성(주제의식)도 선명하게 유지한다. 그래서 불평등/자연파괴/인간복제 등의 사회문제를 상업화했다는 비난을 절묘하게 피해간다. 그것이 봉준호 영화의 공식이면서, 그를 '상업적 작가주의 감독'과 같은 형용 모순적 인물로 표현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그래서 그의 영화는 늘 '작품'과 '상품' 사이에 있다.


이제 우리는 세계적인 감독의 반열에, 영화 잘 만드는 봉준호라는 영리한 감독의 이름을 올렸으니, 앞으로는 가령 켄 로치처럼 공동체의 삶을 반성적으로 사유하게 하는 훌륭한 감독의 이름도 올릴 수 있기를 기대해본다.


영화 <미키17>의 한 장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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