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닿지 못한 꿈, 베네통 광고 이야기

이야기가 있는 다큐드로잉 15

by 까칠한 서생

※ 이 글은 수정·보완되어 2025년 11월25일 출간된《베이비부머, 네 겹의 시간을 걷다》(루아크 펴냄)에 수록되었음.


*2025년 1월 13일, 베네통 광고로 유명한 올리비에로 토스카니(Oliviero Toscani)가 별세했다. 그의 명복을 빌며 이 글을 쓴다.


1.

20대 후반, 나는 공부와 취업 사이에서 오랫동안 갈등하다가 결국 취업을 선택했다. 공부를 계속하기엔 현실적인 장벽이 너무나 높았고 이를 이겨낼 자신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당시만 해도 생소한 광고 카피라이터의 길로 나섰다. 마음의 준비도 없이 얼떨결에 선택한 직업이었다. 처음엔 만만하게 보고 의기양양했으나, 이내 요즘말로 ‘현타’가 왔다. 이전에는 거의 써보지 않은 감성의 근육을 끄집어내 사용하면서 하루하루 힘겹게 버텨내고 있었다.


그때 나에게 한 줄기 희망의 빛을 던져준 인물이 바로 올리비에로 토스카니였다. 신부(神父)와 수녀의 감미로운 입맞춤, 에이즈로 죽어가는 사람과 그 가족의 안타까운 표정, 탯줄도 끊지 않은 피붙이 태아, 전몰장병의 묘역, 형형색색의 콘돔...... 세계적인 화제를 몰고 온 베네통 광고 캠페인(United Colors of Benetton)은 이전부터 선망의 대상이었다. 그래서 광고인으로서 누가 어떤 생각과 배경 속에 이 캠페인을 만들었는지 궁금했다. 그러던 차에 그 주인공의 저서『베네통 광고 이야기』를 운명적으로 만나게 된 것이다(김현아 옮김, 1996년 도서출판 산호 펴냄). 사진작가로서 그 세계적인 광고캠페인을 성공적으로 이끈 인물이 바로 올리비에로 토스카니였다. 이미 오래 전에 광고 현장을 떠난 나는 지금까지도 그의 이름에서 따온 ‘toscanii’를 ID로 사용할 만큼 그를 추앙해왔다.


베네통광고.jpg


2.

광고에 대한 토스카니의 입장을 알기 위해서는 우선 기존 광고에 대한 그의 불신이 엄청나게 깊다는 것을 이해하는 데서 출발해야 한다. 그는 말했다. (기존의) 광고는 우리에게 외상으로 낙원을 약속하고, 매일 신의 환영을 보여주며, 일상을 신격화하고, 기적의 상품이랍시고 물건을 들고 나와 엄숙한 성체 배령으로 미화시키는 신성모독을 범한다고. (기존의) 광고는 사랑의 반대말로서 모든 것을 약속하지만 아무 것도 주지 않는다고.

광고란 원래 그런 것이 아닌가? 애당초 광고란 상품의 장점을 극대화하여 꿈을 갖도록 만든 다음, 소비를 통해 그 꿈이 이루어질 수 있는 것처럼 말하는 양식으로 태어났는데 그것이 어째서 문제가 된다는 말인가? 혹시 이런 반론을 펼 이들을 위해 광고는 영화, 문학, 회화와 같이 엄연히 예술의 한 분야라는 견해를 준비하고 있었다. 20세기에 들어와 인간 감정의 어두운 면을 찾아내는 영화, 행복한 이야기를 거부하고 잔인하고 끔찍한 이 시대를 가장 명석하게 표현하는 문학, 격렬한 마음의 고통이나 내부의 심상을 표현하는 회화...... . 다른 예술은 이미 거기까지 가 있는데, 순진하게 아름다움을 숭배하는 저급한 예술의 수준에 머물러있다고 그는 단정한다. 광고는 다른 예술에 비해 한 세기 이상 뒤떨어졌다는 게 그의 진단이었다.


기존 광고에 대한 그의 불신은 광고업자와 대행사에 대한 환멸로 이어졌다. 그는 광고업자를 ‘광고쟁이’ ‘얼간이’ ‘바보’ 등의 극단적인 용어를 동원하며 비하하는 한편, 대행사는 무능하고 독창성 없는 사람들의 천국이라고 까뭉갰다. 또 몇 년 전부터는 창조적인 능력이라곤 눈곱만큼도 없는 마케팅 책임자를 광고계의 막강한 주도자로 만들어 모든 것을 망쳐놓고 있다고 단언했다. “광고는 사람들에게 도움을 청한다. 하지만 이 창조적인 사람들은 마케팅의 감시를 받고, 물건을 팔리게 하라는 독촉을 당하는 멍에에 묶여 일한다.”


3.

기존 광고와 광고업자들에 대한 이러한 극도의 부정적인 태도는 급기야 광고의 뉘른베르크 재판을 열어 그것들을 단죄하겠다는 의지로 발전했다. 광고와 광고업자에 대해 그가 말하는 죄목은 이렇다. 사람들의 올바른 판단을 가로막은 죄, 은밀하게 설득한 죄, 거짓말을 한 죄, 막대한 돈을 낭비한 죄, 시민의 평화를 해친 죄, 사회적으로 아무 쓸모도 없는 죄, 말을 오염시킨 죄, 표절한 죄...... .


그중 몇 가지만 예를 들어 구체적인 논거를 살펴보자. 사회적으로 무가치한 죄는 이렇다. 광고업자들은 돈을 쏟아 붓는 기업들이 정작 사회적으로 공공을 위해 교육적으로 어떤 역할을 담당해야 하는지 생각조차 않는다는 게 그의 판단이었다. 그들은 광고주를 잃게 될까 봐 그것에만 연연하느라 대중을 생각하고 불편을 겪지 않도록 미리 알려주는 따위의 일은 할 마음이 없다고 보았다.


거짓말을 한 죄란 이랬다. 결국은 이룰 수 없을 게 분명한데도 사람들에게 풍요롭고 안락한 삶을 꿈꾸라고 속삭인다는 게 그의 생각이었다. 실제 삶을 보여주면서 대중들을 끌어들이지 않았기 때문에 거짓말을 한 셈이라는 것이었다. 이것은 행복을 팔겠다는 욕망이 지나쳐서 결국 욕구불만을 가진 사람들을 양산함으로써 시민의 평화를 깨뜨린 죄를 범한 것으로까지 이어졌다.


4.

그렇다면 그가 원하는 광고의 모습은 어떤 것이었나? 광고는 거리의 예술로서, 우리가 사는 도시의 환경과 평범한 옷들을 보여주어야 한다고 그는 주장했다. “나는 물건을 사라고 설득할 생각은 없다. 대중과 이야기를 하려고 노력할 뿐이다.” 그 이유는 전 세계 7,000여 개 점포에서 팔려나가는 스웨터들은 좋은 품질과 다양한 색상이라는 스웨터 자체의 메리트만으로도 충분한 성과를 거두고 있기 때문이었다.


그는 광고를 통해, 대중과 철학적인 견해, 여러 인종이 어울려 살기에 대한 견해를 함께 하려고 노력할 뿐이라고 말했다. 그럼으로써 오로지 소비만을 내세우지 않고 상표의 이미지를 철학적으로 발전시키고자 한다고 밝혔다. 광고를 통해 상품의 개념을 파는 것이 아니라 상품의 철학을 판다는 것이었다. 반인종주의 정신, 세계주의 정신, 금기를 반대하는 정신 등 인류의 보편적 가치가 베네통 광고의 일관된 테마가 되는 이유를 알 수 있는 대목이었다.


“나는 광고를 하지 않는다. 물건을 팔려는 게 아니다. 서투를 책략을 써가며 물건을 사라고 사람들을 설득하지도 않는다. 베네통 스웨터의 무늬와 색깔을 굳이 자랑하지도 않는다. 나는 늘 냉소적이지 않은 새로운 표현방법을 찾으려고 노력한다. 모든 예술가들이 그렇듯이 대중들과 의견을 나눈다. 베네통을 알리려고 세상의 불행을 이용하지 않는다. 견고하게 자신의 자리를 잡고 있는 순응주의에 도전한다. 현실의 충격과 대중매체를 이용한 게시. 제대로 취급을 받지 못하고 무시당하는 광고라는 예술의 힘을 이용한다.”


그는 이런 신념을 베네통 광고에 담기 위해 인종차별 정책이 폐지되기 직전의 남아프리카공화국, 최초로 팔레스타인 자치지구가 된 가자지구에 다녀와 그곳 주민들의 생생한 모습을 보여주었고, 앞으로도 북한, 인도, 예맨 사람들과 집시들을 카메라에 담을 생각이라고 했다. 한 역사적 사건의 소용돌이 속에 있었던 평범한 사람들의 모습을 보여줌으로써, 광고를 대중들과 대화하고 공감하고 교류하는 장으로 삼겠다는 뜻이었다.


5.

그의 주장을 따라가다 보면, 보통사람이 알고 있는 광고에 대한 개념은 그 뿌리부터 흔들리게 된다. U.S.P.니 브랜드 이미지니 포지셔닝이니 하는 전통적인 광고 전략은 그의 당당한 논리 앞에서 여지없이 무너진다. 그 대신, 상품의 가치란 그것이 주는 효용이나 이미지보다는 광고를 통해 전달하는 메시지가 얼마나 현실적이고 공감할 수 있으며, 그에 따라 대중들의 자발적인 참여가 얼마나 많이 이루어지는가에 따라 결정된다는 결론에 이르게 된다. 비유컨대 그는 광고의 혁명가였다. 그것은 광고라는 틀 속에 담고자 하는 내용이 지금까지와는 전혀 다르다는 점에서도 그렇지만, 광고라는 양식 자체를 지금까지와는 전혀 새로운 방법으로 해석하고 있다는 점에서도 그렇다.


사실 토스카니가 갖고 있는 극도의 광고 혐오증은 그리 낯선 것만은 아니다. 광고에 대한 그 매몰찬 비판은 마르크스주의 계열 학자들로부터 비판커뮤니케이션이나 문화연구 이론가들을 연상케 한다. 하지만 그들의 주장보다 설득력을 갖는 이유는 무엇보다 토스카니가 전 세계적인 화제를 몰고 온 광고캠페인을 성공적으로 이끈 인물이라는 점 때문일 것이다. 그는 무조건적인 광고 부정론자들과는 달리, 광고가 나아가야 할 명백한 대안을 제시하고 있다는 점에서 매우 독특한 자리에 서있다.


앞에서 살펴본 그의 광고철학이 실현될 수 있었던 것은 무엇보다 베네통 사의 창업자인 루치아노 베네통이라는 후원자를 만났기 때문이었다. 그 후원자는 토스카니의 본능과 창조적 능력을 전적으로 신임하고 그에게 광고에 관한 전권을 주었었다.


베네통 광고를 만든 올리비에로 토스카니(1942~2025).jpg 올리비에로 토스카니(1942~2025)


6.

나는 올리비에로 토스카니를 꿈꾸었으나, 그의 먼발치에도 가닿지 못하고 결국 광고계를 떠났다. 내 능력이 부족한 탓도 있겠으나, 우리나라에서는 그 누구도 토스카니가 되기란 낙타가 바늘구멍에 들어가기만큼 어려웠고 지금도 그럴 것이다. 그러니 토스카니는 광고인으로서의 내 삶에 희망의 등불을 비춰준 롤 모델이었지만, 결국에는 광고인으로 이룰 수 없는 허황된 꿈을 꾸게 하고 헛된 용기를 북돋워준 거품장수가 된 셈이다. 하지만 광고 현장을 떠난 나의 삶은 그로 인해 더 넓고 풍부해졌으니, 그는 여전히 내가 추앙하는 인물 목록에 굵은 글씨로 남아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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