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석의 ‘눈’, 결핍을 채우는 아름다운 보완물

by 까칠한 서생

가난한 내가
아름다운 나타샤를 사랑해서
오늘 밤은 푹푹 눈이 나린다.
-백석, <나와 나타샤와 흰 당나귀> 중에서-




1.

비는 흘러가고 눈은 쌓인다. 문학과 영화나 노래에서 대개 비는 사건 이후의 슬픈 정서를 상징하는 반면, 눈은 사건 이전의 설레는 감정을 대신한다. 그래서 비는 이별이나 상실의 공간 속에 흩뿌려지고, 눈은 고요와 기다림의 시간 위에 흩날린다. 물론 1963년 살바토레 아다모가 부른 샹송 「눈이 내리네(Tombe La Neige)」처럼, 비가 담당했던 이별의 정서를 눈이 대신하기도 한다. 하지만 이 노래에서도 원가사의 화자는 절망 속에서도 끝까지 기다림의 감정을 붙잡고 있다.


2.

“가난한 내가/아름다운 나타샤를 사랑해서/오늘 밤은 푹푹 눈이 나린다.” 백석(1912~1996) 시인의 「나와 나타샤와 흰 당나귀」는 이렇게 시작한다. 이 구절에서 주목할 점은 ‘가난한 나’와 ‘아름다운 나타샤’ 사이의 거대한 간극이다. 화자가 스스로를 가난하다고 규정하는 순간, 그의 사랑은 초라해질 수밖에 없는 운명에 처한다.


그런데 여기서 반전이 일어난다. 마침 눈이 내리고, 화자는 눈이 내리는 이유가 자신의 사랑 때문이라고 믿는다. 이때 ‘눈’은 가난한 화자에게 부족한 ‘풍요로움’을 채워주는 고귀한 보완물이 된다. 아무것도 가진 것 없는 빈 가슴에 순백의 눈이 가득 쌓이면서, 화자가 머무는 세상은 비로소 아름다운 나타샤와 어울릴 만큼 근사해진다. 이를테면 고급 자동차의 멋진 드라이브나 호화로운 레스토랑의 감미로운 식사 이상의 데이트 분위기가 만들어진다. 이때 눈은 현실의 벽을 허무는 것에 그치지 않고, 가난한 화자의 삶에 ‘아름다움’이라는 장식을 덧입혀 그 사랑을 비로소 가능하게 만드는 필수적인 보완물이 된다.


3.

백석의 눈처럼, 우리가 아는 많은 명작에는 가난한 이의 결핍을 채워 고귀한 대상과의 사랑을 성립시키는 장치들이 등장한다. 이들은 일종의 ‘미적 보완물’로 작용한다. 이 장치들은 화자의 초라함을 가려주는 동시에, 그가 가진 사랑의 무게를 세상에 증명해 주는 역할을 한다.


영화 「타이타닉」에서 ‘배가 침몰하는 극한의 재난’은 주인공인 가난한 잭에게 부족했던 ‘사회적 품격’을 ‘영웅적 헌신’으로 보완해 준다. 재난 속에서 잭이 보여준 용기는 그를 상류층의 품위보다 더 고귀한 존재로 격상시켰고, 이를 통해 로즈와의 사랑은 비로소 균형을 이룬다.


샬럿 브론테의 소설 「제인 에어」에서는 ‘저택의 화재와 로체스터의 장애’가 보완물 역할을 한다. 재산도 신분도 없던 제인이 당당하게 사랑을 쟁취할 수 있었던 건, 화재로 인해 로체스터가 가진 권력의 과잉이 깎여나가고 대신 제인의 도덕적 강인함이 그의 부족함을 채워줄 수 있는 ‘보완적 관계’가 형성되었기 때문이다.

황순원의 「소나기」에서 ‘갑작스러운 소나기’는 시골 소년의 평범한 일상을 단숨에 ‘특별한 추억’으로 보완한다. 도시 소녀의 세련됨에 주눅 들 수 있었던 소년의 세계에 소나기라는 강렬한 색채가 더해지면서, 두 아이의 감정은 어느 한쪽으로 기울지 않는 순수한 균형점을 찾게 된다.

결국 이 모든 장치는 ‘가난한 자아’의 빈자리를 채워줌으로써, 도저히 닿을 수 없을 것 같았던 높은 곳의 사랑과 수평을 맞추게 해주는 상징적 선물이었다.


4.

영화 「비커밍 제인」이 비극으로 끝난 이유도 여기서 찾을 수 있다. 제인과 톰은 둘 다 가난했고, 그 가난을 메워줄 어떤 ‘눈’이나 ‘소나기’도 내리지 않았다. 그들의 현실을 아름답게 꾸며주거나 그들의 결핍을 채워줄 극적인 사건이 부재했기에, 그들은 자신들의 초라한 현실을 그대로 직시하며 사랑을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보완물 없는 사랑은 현실의 무게를 견디지 못하고 무너진다는 것을 이 영화는 아프게 보여준다.


그러나 백석은 운명이나 제도가 빚어낸 질서를 거부한다. 그는 자신의 가난을 한탄하는 대신, 그 가난 위에 ‘눈’을 내림으로써 스스로의 사랑을 풍요롭게 장식한다. 이는 현실의 부족함을 상상력과 미적 의지로 채워 넣으려는 문학적 초월의 정점이다.


5.

우리는 누구나 마음 한구석에 ‘가난’을 안고 산다. 그것이 돈이든, 명예든, 혹은 자존감이든. 그래서 우리는 늘 나보다 더 아름답고 고귀해 보이는 대상을 동경하며 좌절한다. 하지만 백석의 시는 우리에게 말한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더 많은 소유가 아니라, 우리의 사랑을 완성해 줄 ‘나만의 눈’을 내리게 하는 일이라고 말이다.


현실의 눈은 그쳐도 마음의 눈은 언제든 내릴 수 있다. 오늘 밤 우리에게 내리는 눈은 무엇일까. 그것은 누군가에게는 예술이 될 수도, 또 누군가에게는 헌신적인 진심이 될 수도 있다. 나의 가난함을 부끄러워하지 않고, 그 결핍을 아름다운 무언가로 채워 상대와 어깨를 나란히 하려는 그 의지야말로 우리가 이 팍팍한 세상에서 지켜야 할 가장 고귀한 태도가 아닐까. 가난한 우리를 비로소 ‘아름다운 나타샤’와 어울리게 만드는 그 보완물의 기적을 믿어보고 싶다.

수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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