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아오지 마라. 우리를 생각하지도 마.
편지도 쓰지 마. 향수에 속지 마라.
무슨 일을 하든 네 일을 사랑하렴.
네가 어린 시절 영사실을 사랑했듯이.”
- 영화 「시네마 천국」 중 알프레도의 대사 -
1.
인생의 어느 길목에서 우리는 한 번쯤 사랑하는 이의 매정한 당부를 들으며 길을 떠났다. 영화 「시네마 천국」에서 알프레도 아저씨가 기차에 오른 토토에게 던진 이 말은, 다시는 돌아오지 말라는 단호한 작별의 선언이자 제자의 삶을 더 넓은 세상으로 밀어 올리는 비정한 축복이다. 고향이라는 아늑한 울타리에 안주하지 말고, 네 안에 잠든 가능성을 끝까지 밀어붙여 보라는 이 독한 당부는 한 소년의 삶을 전혀 다른 궤도 위로 올려놓는다.
2.
알프레도는 토토의 성공을 위해 그의 첫사랑을 가로막는 악역을 자처했다. 그는 소년의 순정을 제물로 바쳐 거장의 날개를 달아준 비정한 연금술사였다. 덕분에 토토는 세계적인 영화감독이 되었지만, 평생 가슴 한구석에 채워지지 않는 결핍을 안고 살아간다. 여기서 우리는 모두의 인생을 관통하는 근본적인 질문 앞에 선다.
만약 토토가 그때 사랑을 선택했다면 어땠을까? 고향에 남아 작은 극장의 영사기사로 살며 소박한 가정을 꾸렸다면, 그는 이름 없는 소시민으로 남았을지언정 매일 저녁 사랑하는 이의 온기를 느끼며 안온한 잠자리에 들었을 것이다. 과연 그 삶이 화려하나 쓸쓸한, 성공한 영화감독의 삶보다 못하다고 말할 수 있을까?
3.
사랑을 얻은 소시민의 소박하지만 충만한 삶인가, 성공을 거머쥔 셀럽의 화려하지만 외로운 삶인가. 많은 사람이 하나를 얻기 위해 다른 하나를 제물로 바치며 살아간다. 세상이 말하는 ‘성공’의 사다리를 오르는 동안, 우리가 뒤에 남겨두고 온 시칠리아의 노을과 소박한 저녁 식탁은 얼마나 많았던가. 성공이라는 화려한 텍스트를 쓰려고 애쓰는 동안, 우리가 생략해 버린 소중한 일상의 각주는 또 얼마나 길었던가. 고향집에서 옛 영화 필름을 돌려보며 흘리는 토토의 눈물은 단순히 흘러간 시절을 반추하는 감상이라기보다, 영원히 선택하지 못한 ‘평범한 행복’에 대한 절절한 동경과 그리움에 가깝다.
4.
내 삶에도 나를 등 떠밀어 세상으로 내보냈던 알프레도 아저씨가 있었을까. 어쩌면 나 스스로 자신에게 가혹한 알프레도가 되어 뒤도 돌아보지 못한 채 앞만 보고 달려온 것은 아닐까.
피츠제럴드의 「위대한 개츠비」가 오로지 ‘데이지’라는 과거의 빛에 닿기 위해 부(富)의 성채를 쌓아 올렸듯, 우리 역시 무언가에 홀린 듯 각자의 마천루를 세워왔다. 하지만 그 성취의 끝에서 마주한 것이 개츠비의 허망한 초록색 불빛뿐이었던 것처럼, 어쩌면 우리가 이룬 성취란 우리를 뜨겁게 했던 ‘사랑’의 기억들을 하나둘 지워나간 대가로 얻은 차가운 훈장일지도 모른다.
광고의 화려한 카피처럼 반짝이는 내일을 약속받기 위해, 정작 내 곁의 온기들을 너무 쉽게 소거해 버린 것은 아니었을까. 더 이상 내 것이 아닌 열망들을 버리고 이제는 돌아와 거울 앞에 선 이즈음에 이르러서야, 내가 놓쳐버린 ‘영사실’의 풍경들을 떠올려 본다. 알량한 꿈을 좇느라 소홀히 했던 인연은 없었는지, 거창한 내일을 준비하느라 오늘 누려야 할 작은 기쁨들을 너무 쉽게 내버리지는 않았는지 말이다.
5.
어느 삶이 더 바람직한가에 대한 정답은 없다. 다만 영화의 마지막, 알프레도가 남긴 선물인 ‘삭제된 키스신 모음’을 보며 토토가 흘리는 눈물에서 우리는 작은 위안을 얻는다. 알프레도는 토토를 매정하게 밀어냈지만, 동시에 그가 포기해야 했던 그 짧고 강렬한 ‘사랑의 순간’들을 버리지 않고 소중히 보관해 두었다가 마지막 선물로 돌려주었다. 성공한 자의 허전함을 채워주는 것은 결국 그가 포기했던 소박한 추억들의 조각들이다.
6.
지금의 우리 삶은 우리가 선택한 결과물인 동시에, 우리가 포기한 수많은 ‘다른 삶’들의 총합이다. 알프레도가 남긴 삭제된 필름 조각들이 토토의 상실감을 메웠듯, 우리 역시 스스로의 영사실에서 버려진 조각들을 찾아내어 ‘인생이라는 총체적 예술’을 완성해야 하지 않을까.
뒤돌아보지 말라던 그의 말과 달리, 이제는 찬찬히 뒤를 돌아보며 길 위에 흘리고 온 소중한 순간들을 하나씩 이어 붙여 보아야 한다. 대단한 명성이 아니어도 좋다. 내 인생이라는 필름을 가장 애정 어린 눈으로 지켜보는 유일한 영사기사가 바로 나 자신임을 깨닫는 것, 그것만으로도 우리 인생은 충분히 ‘시네마 천국’이 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