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한 변호사 우영우> 시즌2 제작 결정 소식을 듣고
최악의 노예주는 노예들에게 친절을 베푸는 자들이었다.
그 친절로 인해 노예제에 고통받는 이들은
그 체제의 끔찍함을 자각하지 못했고,
그 체제를 지켜보는 이들은
이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게 되었기 때문이다.
오스카 와일드, 『사회주의에서의 인간의 영혼』 중에서
1.
2022년 방영된 드라마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가 남긴 잔상은 길고 강렬했다. 한창때는 모이면 우영우였고 켜면 우영우였다. 시즌2의 제작이 결정되었다는 소식에 솔직히 나는 떨떠름하다. 이 드라마를 지금껏 심히 못마땅하게 생각했기 때문이다. 자폐 스펙트럼을 가졌으나 놀라운 암기력과 추론 능력, 미모와 따뜻한 심성까지 갖춘 주인공을 ‘이상하다’라고 명명한 제목부터 못마땅했다. 사실 관계를 따져보자면 그녀는 이상한 게 아니라 특출 난 것이다. 영어 제목으로 선택된 ‘extraordinary(비범한)’가 차라리 정직하다. ‘이상하다’라는 역설적 수사는 실재하는 장애의 고통을 거세하고, 대중이 소비하기 좋은 ‘무해하고 신비로운 천재’라는 기호로 치환한 것에 불과하다.
2.
내가 못마땅하게 생각한 진짜 이유는 따로 있다. 이 드라마가 우리 사회를 짓누르는 ‘법 지상주의’에 가장 달콤한 기름을 부었다고 보기 때문이다. 법은 특히 ‘검찰 공화국’이라 불린 시기를 거치며 상식과 도덕 위에 군림하는 정도가 도를 넘었다. 그 3년간 대통령은 물론 행정부처 및 산하기관의 수뇌부 대다수가 법조인 출신으로 채워졌고, 유독 법무부와 검찰청 그리고 국회 법사위원회의 일거수일투족이 주목받았다. 행정부의 정책이든 정당의 결정 사항이든 모두 법 절차에 따른 기소와 판결의 대상으로 전락하며 정치는 실종되었다.
법치가 무도한 권력 행사의 도구가 되어온 그 일련의 흐름 속에서,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는 바로 ‘법 지상주의’가 정점에 도달한 시점의 시대적 산물이었다. 정치의 사법화가 일상의 사법화로 폭넓게 전이되는 현상을 말해주는 결정적 증거였다. 작품이 선사한 무해한 위로를 부정하고 싶지는 않으나, 그 무해함 속에 숨겨진 ‘법의 비대함’을 직시하는 일은 이제 피할 수 없는 숙제다.
3.
드라마 속 우영우는 인간적인 체온이 느껴지는 법, 소외된 이웃을 품어주는 너그러운 법을 통해 아름다운 세상을 실현하는 듯 보인다. 그러나 여기서 놓치기 쉬운 사실은, 그 아름다운 세상이 오직 고소와 고발, 변론과 판결이라는 ‘사법적 깔때기’를 통과해야만 허락된다는 점이다. 이는 우리가 꿈꾸는 공동체의 가치가 결국 ‘법 지상주의’라는 거대한 프레임 속에 갇혀 있음을 의미한다.
“법은 도덕의 최소한이다”라는 엘리네크의 말을 인용할 것도 없이, 법은 아름다운 세상을 만드는 작은 도구일 뿐이다. 아름다운 세상은 법리가 아니라 비판적 이성을 통한 사유와 성찰, 공감과 배려, 관용과 절제라는 시민적 덕성으로 만들어진다. 하지만 우리가 우영우에 환호하는 동안, 법은 도덕과 윤리 그리고 학문과 예술 등 인류가 쌓아 올린 다른 모든 지혜 위에서 군림하는 ‘슈퍼 갑’의 지위를 획득해 버렸다. 이렇게 보면, 드라마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는 법 지상주의 시대를 이끈 주요 임무 종사자나 교사범까지는 아닐지라도, 방조범이나 단순 가담자의 책임에서 벗어날 수 없다.
4.
아무리 자상한 노예주라도 노예제라는 굴레 자체를 부정하지 않는다면, 그는 결국 노예제를 강화하는 부역자에 불과하다. 노예에게 진정 필요한 것은 주인의 따뜻한 배려가 아니라 노예제 자체의 철폐이기 때문이다.
아일랜드 출신의 시인이자 소설가 오스카 와일드는 일찍이 이 모순을 꿰뚫어 보았다. 그는 1891년 발표한 정치 철학적 에세이 『사회주의에서의 인간의 영혼』에서 최악의 노예주란 노예에게 친절을 베푸는 자들이라고 일갈했다. 와일드의 이 서슬 퍼런 통찰을 빌려오자면,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는 우리 시대의 ‘친절한 노예주’와 닮아있다. 법치가 권력의 도구로 전락한 현실에서, 법을 통해 감동적인 세상을 보여줌으로써 역설적으로 사람들이 법 지상주의라는 제도의 폭력성과 기만성을 깨닫지 못하게 가로막은 탓이다.
5.
‘검찰 공화국’이라는 형식상의 틀은 깨졌을지 모르나, 사법 시스템의 전면적인 개혁은 여전히 갈 길이 멀다. 그러나 설사 완벽한 제도적 청산이 이루어진다 해도, 우리 마음속에 뿌리내린 ‘법 지상주의’까지 저절로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법이 모든 가치의 최종 심판관이라는 믿음이 이미 우리 마음속에 단단히 똬리를 틀고 있기 때문이다. 갈등을 마주할 때마다 법전과 법봉에 해결의 열쇠를 넘겨준다면, 우리는 스스로 삶의 주권을 포기한 채 법의 노예로 전락하고 말 것이다.
6.
내가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 시즌 2의 제작 소식에 떨떠름해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시스템의 결함은 가린 채 개인의 선의만을 찬양하는 서사가 반복될수록, 우리가 마주해야 할 진실은 자꾸만 뒤로 밀려난다. 드라마 속 우영우가 연출하는 아름다운 법정극에 박수를 보내는 동안, 현실의 법은 더 촘촘한 그물이 되어 우리의 일상을 옭아맬지도 모른다. 이제는 ‘우영우’라는 환상에서 걸어 나와야 한다. 아름다운 세상은 법리가 지배하는 극장이 아니라, 인간의 온기와 숨결이 가득한 광장에서 시작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