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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까칠한 서생 Apr 28. 2022

<정의란 무엇인가>를 여는 두 가지 열쇠

'정의'는 크고 작은 선거가 있을 때마다 어김없이 소환되는 단어다. 정의란 옳고 그름을 가리는 기준을 뜻하는 용어인데, 유사 이래 많은 사상가들이 고심했지만 아직도 뾰족한 해답을 내놓지 못한 문제이기도 하다. 내가 참여하는 북클럽에서 마침 마이클 샌델의 <정의란 무엇인가>를 선정했기에 4,5년만에 이 문제를 살펴볼 기회가 생겼다. 우리나라에서만 200만 부를 넘게 찍은 세계적인 베스트셀러, 상당수는 서점에서 책꽂이로 직행한 채로 먼지가 쌓여있다는 비야냥도 듣지만, 너무나 많은 매체에서 다룬 탓에 많은 사람이 읽지 않고도 내용을 대충 안다고 생각하는 바로 그 책이다.     



내용 하나하나를 받아들이기에 급급했던 첫 번째 때와는 달리 이번에는 망원경과 현미경을 두 손에 들고 좀 더 느긋하게 읽을 수 있었다. 이번에 다시 읽으면서 새롭게 눈에 들어온 점은, 세세하게는 여럿이지만 크게 보면 두 가지였다. 하나는  꼬리에 꼬리를 무는 주도면밀한 구성이고, 다른 하나는 ‘서사적 인간’이라는 개념이다. 전자는 망원경에 포착된 것이고 후자는 현미경에 잡힌 것이다. 공중파든 SNS든 많은 매체에서 이 책을 소개하고 있지만, 이 두 가지 지점에 주목한 리뷰를 나는 아직 보지 못했다.     

 

우선, 독자를 끌어들이고 설득하고 공감시킬 수 있도록 10개 (chapter)의 구성이 매우 주도면밀하다는 점을 확인했다. 먼저 사례를 던져놓고 그 사례에서 정의에 관한 세 가지 키워드(복지, 자유, 미덕)를 추출해서 범주화한 다음, 공리주의와 자유지상주의의 특징과 한계를 지적하며 먼저 교체 아웃시키고, 다시 사례를 던져놓고, 대표적인 자유주의 정의론자인 이마뉴엘 칸트와 존 롤스마저 벤치로 보낸 다음, 아리스토텔레스를 기용해서 미덕과 공동선을 중심에 두는 자신의 공동체주의적 정의관을 자연스럽게 공감하게 만드는 구성. 책 전체를 하나의 목표점을 향해가는 여정이고, 꼬리에 꼬리를 물고 각 장을 이어 달리게 만드는 이러한 주도면밀한 구성이야말로 초특급 베스트셀러의 비결이라 할 만하다.        


새롭게 눈에 들어온 두 번째 지점은 '서사적 인간'이라는 개념이었다. 서사적 인간이란 "나는 내 가족, 내 도시, 내 친족, 내 나라의 과거로부터 다양한 빚, 유산, 정당한 기대와 의무를 물려받는다."라는 인용에서 알 수 있는데, 샌델은 이 ‘서사적 인간’ 개념을 자유주의에서 전제하는 ‘자발적 인간’과 대비시키며 자유주의에서 강조하는 합의와 계약을 넘어서는 의무, 그래서 자연적 의무나 자발적 의무와는 대비되는 ‘연대 의무’를 설득시킨다. ‘서사적 인간’과 ‘연대 의무’라는 개념은 미덕과 공동선을 중시하는 샌델의 정의관을 자연스럽게 정당화하는 강력한 무기인 동시에 이 책의 목표지점을 점령하기 위해 반드시 확보해야 하는 교두보로 보인다.      


나는 샌델의 정의관에 대체로 공감하면서도, 풀리지 않는  가지 의문을 간직한 채 책을 덮었다. 미덕과 공동선은 어떻게 합의되고 실현될 수 있을까? 샌델의 표현을 빌려 말한다면, 그것이 좋은 것(선)이긴 하겠으나 옳은 것(권리)이라고까지 말할 수 있을까? 그것의 실현을 위해서는 정치/권력의 도움이 필수적인데 이를 어떻게 확보할 수 있을까?


샌델이 이에 대한 답을 내놓기를 기대하기는 어렵다고 본다. 그는 현실 정치인이 아닌 학자일 뿐인데다가 학자중에서도 현실에서 가장 멀찍히 떨어진 철학자로, 헤겔이 말한 미네르바의 올빼미 아닌가. 그러니 황혼이 깃든 다음 날아오른 것으로 자신의 역할을 다했다고 봐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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