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혜수는 역시 명불허전이었고 이성민도 선전했으나, 이정은은 좀 실망스러웠다. 김무열의 섬세한 연기도 신선했다. 넷플릭스 오리지널 10부작 <소년심판> 얘기다.
이 드라마는 소년부 판사의 주된 역할이 처벌인가 교화인가라는, 답이 뻔히 보이는 질문을 깔아놓고 시작한다. 이 질문에 누구라도 교화라고 답할 것이다. 그래서 교화를 강조하면서 유연한 법적용을 주장하는 차태주 판사(김무열 분)가, 처벌을 강조하면서 엄격한 법적용을 주장하는 심은석 판사(김혜수 분)보다, 처음엔 도덕적으로 우위에 서 있는 듯이 보인다.
"저는 소년범을 혐오합니다. (...) 연쇄살인범도 아니고 국제사기범도 아니고, 고작 미성년자 소년범들입니다. 그 놈들 짓거리에 국민도 경찰도 다 놀아났어요. 적어도 법원만큼은 제대로 밝혀야죠. 그게 진짜 우리 역할 아닙니까?"(심은석)
"소년에게 비난은 누구나 합니다. 그런데 소년에게 기회 주는 거? 판사밖에 못해요. 그래서 더 의미 있고 중요한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그게 제가 판사가 된 이유거든요."(차태주)
하지만 심은석 판사(김혜수)는 엄격한 법적용이야말로 가장 훌륭한 교화의 수단임을 판결 하나하나를 통해 보여준다. 이를 위해 싸우고 설득하고 조사하고 수난을 겪는 과정이 이 드라마의 골격을 이룬다. 달리 말하면 고립무원의 상태에서 동료와 상사, 피해자 및 가해자와 그 가족 그리고 마침내 시청자까지 설득해내는 심은석 판사의 고독한 집념, 곧 김혜수 배우의 서슬 퍼런 연기력이 바로 이 드라마의 미학적 원천이다.
그녀의 설득은 논리적이면서 매몰차다. 일단 머리를 강타한 다음 서서히 가슴으로 퍼지며 깊은 울림을 남긴다. 가령 이런 식이다. "소년사건이 속도전이라고요? 그래서 아이들이 저 모양인 겁니다. 왜 재판을 속도로 처분합니까? 그 속도를 맞추지 못해 놓쳐버린 아이들, 그 피해자들은 대체 누가 책임지나요? 그거야말로 일의 효율이 아니라 무책임 아닌가요? 왜 부장님은 사명감이 없으십니까. "
그녀의 그런 화법 중, 특히 마지막 회에 징계위원회에서 한 다음의 발언은 명대사 중 명대사로 꼽을 만하다.
"저는 소년범을 혐오합니다. 그런 저의 태도에 누군가는 질타할 것이고, 누군가는 상처를 받겠죠. 혐오. 사전적 의미로 싫어하고 미워함을 뜻합니다. 싫어하고 미워할지언정 소년을 위해서라면 최선을 다할 겁니다. 싫어하고 미워할지언정 처분은 냉정함을 유지할 겁니다. 싫어하고 미워할지언정 소년에게 어떠한 색안경도 끼지 않을 겁니다. 그러니까 처음 마음가짐... 그대로 또는 그 전과는 다르게, 저는 소년범을 혐오합니다."
이 드라마는 이렇듯 처벌이 곧 응징이 아니라 교화이고, 혐오가 곧 배제가 아니라 포용이라는 역설을 보여준다. 이 드라마가 처음부터 끝까지 강한 몰입과 긴장을 유도하는 이유는, 바로 기존의 상식을 뒤집는이러한 반전에 있다. 여기에소년부 판사의 세계라는 소재의 신선함과 법과 인간의 관계라는 묵직한 주제의식까지 더해져서, 이 드라마는 수작의 반열에 오를만한 조건을 갖추게 된다.넷플릭스 비영어 시리즈 중 시청시간 1위라는기록을운이 좋아 세운 게 아니다.
하지만 나는 긴장과 몰입 속에서 전편을 만족스럽게 시청했음에도, 다음 두 가지 이유로뒷맛이씁쓸했다는 말을 하지 않을 수 없다. 이는 텍스트가 아니라 콘텍스트로 인한 불편함이다. 내가 별점을 매긴다면, 별 다섯 개 중에서 하나 아니면 하나 반까지도 빼고 싶은이유이기도 하다.
첫째, 정치검사들과 함께 법조 카르텔의 한 축인 정치판사들에게 도덕적 면죄부를 줄 수도 있다는 점. 최근 몇 년간 건전한 상식으로는 이해할 수 없는 판결을 한 그들이, "어때, 판사들은 늘 이렇게 양심을 걸고 고뇌에 찬 결단을 하는 사람들이야. 봤지?"라고 의기양양해할까 봐,그래서 이 드라마가 사람들로 하여금 현실의 부당한 판결을 받아들이게 만드는 이데올로기적 장치로 작용할까 봐 걱정스럽다.부패한 정치검사의 행태를 고발하는 영화가 숱하게 나왔지만, 검사의 권력과 기득권은 오히려 갈수록 강화되어 바야흐로 검찰공화국에서 살게 될 지경에까지 이르지 않았는가.
둘째, 이제는 스테레오 타입화 된 '기성세대의 악마화'라는 상투적 원리에 기대고 있다는 점. 물론 이 드라마의 경우 악마화 된 인물(두 명의 부장판사)이 나중에 개과천선한다는 점에서 좀 다르다고 하겠지만, 기성세대가 젊은 세대에 의해 그렇게 교화의 대상이 된다는 것 자체가 악마화의 일종이다. 경향신문 강진구 기자가 '후배 권력'이라는 용어로 실태를 공개한 바와 같이, 현실에서는 오히려 젊은 세대가 보수화된 이익집단으로 전락한 사례가 더 많을 수도 있다. 기성세대의 일원으로서 기성세대의 악마화를 지켜보기란 불편함을 넘어 억울한 일이다.TV 드라마라면 시청률과 광고의 시장원리에 눌려 이 억울한 일이 반복될수있겠으나, 넷플릭스라면 좀다를 수도있지 않았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