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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까칠한 서생 Jul 11. 2022

기성세대가 청년세대를 착취한다는 거짓말

신진욱의 <그런 세대는 없다>를 읽고

고대 그리스 신전에 “요즘 젊은것들은 버르장머리가 없다.”라는 의미의 글이 쓰여있다는 사실은 너무나 잘 알려져 있다. 그만큼 세대 담론의 역사는 오래되었다. 세대 담론이 새로운 세대에 대한 기대와 희망을 담았던 시절도 있었으나, 지금은 로마 시대 검투장을 연상케 할 만큼 사생결단의 각축장이 되고 있는 듯하다.

      

우리 사회에서 세대 담론이 세대 간 극렬한 대립과 갈등의 진원지가 된 것은 2019년 ‘조국 사태’ 전후의 시기였지만, 사회적 주요 의제로 처음 등장한 것은 1990년대 초부터로 기억된다. 당시 동구권이 붕괴하고 좌익 이념이 퇴조하면서 ‘포스트모더니즘’이 그 대체재가 될 수 있는지 여부를 두고 학계와 문화계를 중심으로 열띤 논쟁이 벌어졌는데, 기업 차원에서 바로 이 포스트모더니즘을 광고 홍보와 마케팅의 신무기로 활용하면서 만들어낸 개념이 ‘신세대’‘X세대’였다.


비슷한 시기에 정치권에서는 1987년 6월 항쟁 이후 민주화운동에 투신했거나 그 세례를 받은 청년들이 현실정치에 뛰어들면서 ‘386세대’라는 칭호를 얻기도 했다. 이 밖에도 ‘베이비붐 세대’, ‘밀레니엄 세대’, X세대 이후의 신세대를 이르는 ‘Y세대’와 ‘Z세대’, 밀레니엄 세대와 Z세대를 결합한 ‘MZ세대’, 그리고 '88만원 세대' 등 다양한 세대 명칭이 등장했다. ‘386세대’는 당시 성능이 286 컴퓨터보다는 우수하지만 486 컴퓨터보다는 뒤지는 386 컴퓨터에서 유래한 명칭이다. 그들이 나이를 먹으면서 ‘486세대’, ‘586세대’로 성장하였으나 결국 동일한 세대를 지칭하는 용어로 ‘86세대’라고 단출하게 불리기도 한다.

      

위에서 등장한 세대 용어만 해도 10가지가 넘는다. 그리고 그 용어들은 최근 10년간 정치/경제/사회/문화 등 각 부문에서 타깃을 분석하는 유용한 기준이나 변수로 활용되어왔다. 그런데 결국 이들 용어는 ‘청년세대’와 ‘기성세대’라는 큰 범주로 수렴된다. 규정하는 연령대가 조금씩 다르긴 하지만, 신세대 /X세대 /Y세대 /Z세대 /MZ세대 /밀레니엄 세대/ 88만 원 세대는 모두 ‘청년세대’, 386세대 /486세대 /586세대 /86세대 /베이비붐 세대는 모두 ‘기성세대’로 분류할 수 있다.

            

신진욱 교수의 <그런 세대는 없다>는 최근 10년간 갈수록 만연하는 세대 담론의 문제점을 기존의 실증 연구들을 기반으로 조목조목 짚어내는 책이다. 가장 대표적으로 문제가 되는 세대 담론은 두 가지. 기성세대가 청년세대를 착취한다는 것과 기성세대는 과거를, 청년세대는 미래를 대변한다는 것. 뒤에서 더 자세히 살펴보겠지만, 저자는 50대 비정규직 비율이 최고라는 수치로 첫 번째 담론을 가볍게 제압하고, 히틀러의 청년 나치 돌격대의 사례로 두 번째 담론을 간단히 무장 해제한다.


    

저자는 세대 담론의 문제점으로 크게 허위 일반화, 기성세대의 악마화, 현실의 왜곡, 이렇게 세 가지를 지적한다. 허위 일반화란 한 세대를 동질적인 사회집단처럼 명명함으로써, 세대 내 특정 집단이 세대 전체를 대표하는 것으로 착각하게 만드는 것. 기성세대의 악마화란 기성세대를,  청년세대를 착취하는 탐욕스럽고 이기적이고 비도덕적인 존재로 매도하는 것. 현실의 왜곡이란 불평등의 실체가 은폐됨으로써 계급/젠더/인권의 언어가 공론장에서 배제되는 것.     


저자는 지난 10년간 세대 간 불평등보다 세대 내 양극화가 더 깊어졌다는 점, 고속 성장과 3저 호황의 꿀 빨아먹는 기성세대(86세대)는 존재하지 않는다는 점을 통계자료로 입증한다. 가령 빈부 갈등, 지역 갈등, 이익 갈등, 이념 갈등에 비해 세대 갈등이 심각하다는 응답은 6%에 불과하다는 것. 저자는 이렇게 말한다. “세대주의 담론은 노동자들을 힘들게 만들고 있는 것이 소수 재벌이 지배하는 산업구조, 일자리 창출 없는 수출의존 축적 전략, 나쁜 일자리를 양산하는 원하청 구조, 노동인권을 위협하는 변칙적 노동계약 형태들이라는 사실을 비껴간다.”     


저자는 계보학적 접근을 통해 잘못된 세대 담론 과잉의 배경을 짚는다. 그 결과, 특정한 시점에서 특정한 맥락에서 특정한 집단에 의해 대량 생산되었음을 확인한다. 구체적으로, 세대를 불평등 불공정과 연계하는 담론이 지난 10년간 급격히 양적 팽창하면서, ‘청년세대’ 전체가 집권 세력에 대한 잠재적 반대 세력으로 자리매김되었다는 점을 밝힌다. 그런데 실제로는 비정규직 노동자 중 50대 비중이 가장 높다는 점을 지적하면서, 세대 내 균열과 세대 간 차이를 교차시켜 보아야 한다는 점을 강조한다.      


이와 같이 세대 담론을 전체적으로 조망한 다음, 저자는 청년세대와 기성세대 내부를 각각 자세히 들여다본다. 청년세대를 살펴본 결과, 청년세대 내의 경제적 양극화가 더 심각하다는 점, 이는 세대 간 계층 세습의 문제와 연결되어 있다는 점, 청년은 공정한 경쟁을 선호한다는 ‘청년 공정론’은 허구라는 점, 결과적으로 청년은 단일한 거대 주체도 동질적 사회집단도 아니라는 점을 강조한다. 기성세대를 살펴본 결과, 기성세대 다수는 고졸 노동자라는 점(당시 4년제 대학 취학률은 13%, 50대 다수는 서비스업이나 단순노무직 종사자라는 통계 제시), 자산 빈곤율이 가장 높은 세대라는 점, 우리나라의 고령층은 선진국 중에서도 비정규직 비율과 자살률이 가장 높다는 점을 일깨워준다.  

    

경제적 기준에 따라 상층부와 하층부를 구분했을 때 각 계층이 어떤 세대로 구성되었는지도 살핀다. 그 결과, 상층부에는 중/노년과 함께 3.40대도 다수 포진해 있으며, 하층부에도 중/노년층이 대거 분포해 있음을 밝혀낸다. 따라서 “기성세대가 사회 상층부를 주로 점하고 있고, 청년세대가 하층부에 속한다는 인상은 역사적으로도 현재 상황으로도 타당하지 않다.”라고 강조한다.     

 

‘젊은 부동산 부자들’에 대한 분석 결과도 흥미롭다. 저자에 따르면, 지난 10여 년간 자산증식에 가장 성공적인 연령대는 40대이고, 최근 몇 년간 자산 상위계층이 가장 증가한 연령대는 30대이다. 이는 부모로부터 이전된 자산이며 계급 재생산의 증거가 되는 대목이다. 결과적으로 저자는 자산 격차는 세대 간 불평등이 아니라 계층 간 불평등 문제이며, 결과적으로 “부동산 계급사회는 전 세대 관통한다.”라는 점을 확인시켜준다.

    

하지만 정치권의 5,60대 세대 쏠림현상은 명백한 사실이며 1987년 이후 점점 더 강화되어왔다고 말한다. 저자는 이를 두고, “30년밖에 안 된 젊은 민주주의 사회에서 기득권 집단의 정치적 수명이 다하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분석한다. 즉 청년세대에 기성정치를 바꿀 구상과 세력이 아직 성장하지 못한 탓에 발생한 어쩔 수 없는 현상이라고 본다.      


“누가 왜 ‘청년’을 말하는가?” 제5장의 제목이기도 한 이 질문과 그 답은 이 책의 하이라이트에 해당한다. 정치/경제 거대 권력자들이 청년에 대한 가장 큰 마이크와 스피커를 가지고 그릇된 청년 담론을 생산함으로써 그로부터 많은 이익을 얻어왔다고 분석한다. 그 거대 권력자란 구체적으로 정치권과 기업이다. 그들은 청년을 말함으로써 기대할 이익이 많음을 인식하고 이를 적극적으로 활용해왔다는 것이다. 정치권에서는 청년의 환심을 사고 정적을 ‘청년의 적’으로 돌리며 대중의 분노를 유발하는 일을 유력한 득표전략으로 활용해왔고, 기업은 마케팅과 홍보를 통해 청년을 적극적 소비자로 활용해왔다. 즉 거대 권력자들은 청년 담론을 통해 청년을 유권자와 소비자로서 득표와 매출을 높일 수 있는 도구로 활용했다는 것이다. 이로써 ‘청년’은 서로 대립하는 세력들 간 권력 경쟁과 이념 갈등의 전장이 되었으며, 보수세력이 청년 담론의 정치적 주도권 장악하게 되었음을 파헤친다.  

    

저자는 마지막으로 정치 담론과 세대 담론의 융합을 지적한다. 원래 긍정적 기대 담론이었던 세대 담론이, ‘조국 담론’을 정점으로 부정적 비난 담론으로 바뀌는 과정을 상세히 살펴본다. 86세대는 원래 진보성향의 새로운 엘리트층의 의미했으나, 기득권/갑질/꼰대/운 좋은 베이비붐 세대 등의 담론과 결합하면서 악의 축으로 지목되었고, 결과적으로 86세대 담론은 정치적 비난 담론으로 전락했다고 본다. 이 과정에서 정치 담론과 세대 담론이 결합되었고 결국 86세대의 기득권론, 무능론, 청년 착취론이 생산되었다는 것이다. 저자는 결론적으로 “정치 담론과 세대 담론의 융합을 해체하고, 정치의 문제를 정치의 언어로, 세대의 문제를 세대의 언어로 정의할 수 있어야 한다.”라고 강조한다.     


 

이렇듯 저자는 세대 담론과 정치 담론과 융합에 많은 페이지를 할애하며 세대 담론의 문제를 찾아내고 많은 혜안과 통찰을 보여준다. ‘불평등 시대의 세대와 정치 이야기’라는 부제에 그 의지를 담고 있다. 하지만 세대 담론은 정치 담론 이상으로 마케팅 담론과의 융합을 통해 우리 사회를 지배하고 있다는 것이 나의 판단이다. 세대 담론과 마케팅 담론의 융합은 1990년대 신세대/X세대론이 등장할 때부터 우리 사회의 특징적인 현상인데, 이 책에서 이 부분이 소홀히 다루어져서 매우 아쉽다. 이에 대한 진전된 논의가 이어지기를 기대한다.      


이 책의 제목은 ‘그런 세대는 없다.’이다. 세대 담론 자체를 부정하는 것이 아니라, ‘특정 집단이 특정한 맥락에서 특정한 이익을 목적으로 생산하는 왜곡된세대 담론을 부정한다는 뜻이다. 세대 간 소통을 활성화하고 공동체의 공동선에 기여하는 세대 담론은 바로 ‘그런’ 허위의 세대 담론에 대한 부정 위에서 비로소 가능할 것이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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