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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까칠한 서생 Aug 15. 2022

이준석의 자유주의 vs. 윤석열의 국가주의

이준석의 선전포고와 정체성 전쟁

1.

22년 8월 13일 이준석 전 국민의힘 대표의 작심 기자회견이 있었다. 대다수 언론이나 전문가들은 이 회견을 단순히 윤통과 윤핵관에 대한 개인 이준석의 도발로만 바라보고 있는 듯하다. 하지만 그들이 놓치고 있는 중요한 관전 포인트가 있다.  기자회견이 자유주의와 국가주의의 동맹 파기 선언이며 자유주의가 국가주의를 향해 던지는 선전포고라는 점이다. 자유주의나 국가주의라는 표현은 기자회견문 어디에도 없으나 이준석이 던진 의제는 바로 그것이었다. 기자회견문을 찬찬히 살펴보자.      


이준석은, “우리 당의 지지층은 이제 크게 둘로 나뉩니다. 태극기를 보면 자동으로 왼쪽 가슴에 손이 올라가는 국가 중심의 고전적 가치를 중시하는 당원과 지지자들이 있다면, 그에 못지않게 자유와 정의, 인권의 가치를 최우선으로 삼는 당원과 지지자도 있습니다.”라고 말했다. 여기서 국가 중심의 고전적 가치를 중시하는 당원과 지지자가 곧 국가주의자이고, 자유와 정의, 인권의 가치를 최우선으로 삼는 당원과 지지자가 곧 자유주의자이다. 이준석이 그 용어를 굳이 사용하지 않았을 뿐이다. 이준석은 국민의힘의 지지기반, 또는 윤석열 정권의 탄생 배경이 국가주의와 자유주의의 동맹이라는 점을 정확히 보고 있다. 이제 자유주의자인 그가 그 동맹의 파기는 물론 국가주의에 대한 선전포고를 외치고 나선 것이다.


나는 3.9 대선 직후 ‘브런치’에 올린 에서, 윤석열의 승리는 (윤석열로 대표되는) 국가주의자와 자유주의자 동맹이 (이재명으로 대표되는) 공화주의자를 이긴 결과라고 말한 바 있다. 그 글에서 나는 패트릭 드닌의 『왜 자유주의는 실패했는가 (Why Liberalism Failed)』를 거로 삼아, “자유주의는 결국 ‘해방된 개인’과 ‘통제하는 국가’라는 존재론적 요소에 도달했다고 이 책은 파악한다. 이것이 바로 국가와 시장의 동맹이다. 즉 자유주의의 확대는 반드시 국가주의의 확대를 동반한다는 것이다.”라고 전제하고 나서 다음과 같이 했다.


“한국의 자유주의자들은 윤석열을 선택했다. 이는 곧 자유의 확대를 위해 국가(혹은 강력한 법치)의 강화를 선택한 것이다. 여기서 자유의 확대란 곧 개인의 이익과 욕망의 확대를 말한다. 따라서 그들이 ‘공화주의자 이재명’이 아니라 ‘국가주의자 윤석열’을 자신들의 요구를 충족시킬 적임자로 고른 것은 너무나 당연한 결과다. 그들의 선택과정에서 후보의 개인적 역량과 자질은 아무런 고려사항이 되지 못했다.”     


이 글에서 자유주의 세력의 대표로 이준석을 꼽지 못했던 것은, 당시만 해도 이준석의 정체가 불분명한 점이 있었던 탓이기도 하지만 무엇보다 나의 실수였다. 하지만 이 기자회견에서 이준석은 자신이 자유주의자임을 분명히 하면서 대선 승리의 절대적 조건이었던, 자유주의와 국가주의 동맹의 파기를 다음과 같이 선언한다.


      


“저는 사람에 충성하지 않는 국민의힘을 넘어서 이제 조직에 충성하는 국민의힘도 불태워버려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오로지 자유와 인권의 가치와 미래에 충실한 국민의힘이 되어야 합니다. 보수정당은 민족주의와 전체주의, 계획경제 위주의 파시스트적 세계관을 버려야 합니다.”     


2.  

3.9 대선이 ‘자유주의+국가주의 동맹 vs. 공화주의’의 전쟁이었다면, 이제부터는 대선에서 이긴 집단 내에서 ‘자유주의 vs. 국가주의’의 전쟁이 시작되는 듯하다. 이는 마치 태평양전쟁 당시 장개석과 모택동이 국공합작을 통해 일제를 물리친 다음 국공내전을 통해 최종 승자를 겨루었던 중국 현대사에 비유할 수 있겠다. 나는 이 전쟁을 ‘정체성 전쟁(identity war)’이라고 규정하면서, 다음 세 가지 점에 주목하려 한다.      


첫째는 이준석의 의제(agenda) 유지 능력이다. 이준석의 선전포고에는 성상납 혐의라는 개인적인 곤경을 자유주의 수호라는 거대담론으로 돌파하려는 계산도 들어있것이다. 결국 이 전쟁의 승패는 이준석이 어떻게 자유주의 세력을 대표해서 의제와 이슈를 이끌어가느냐에 달렸다. 단순히 2.30대 젊은 연령대의 목소리만을 대변하는 똑똑한 정치인의 이미지로는 자유주의자들이 그를 중심으로 결집하지 않을 것이다. 그가 자유주의 이데올로그 (Ideologue)로서 지속적으로 자유주의적 의제를 제시하며 여론을 이끌어갈 수 있느냐에 이 대회전의 운명이 달렸다.


둘째는 윤통 측의 대응 방식이다. 그들이 이준석이라는 미꾸라지 한 마리가 연못을 흐리게 한다며 안이하게 대응한다면 큰 낭패를 볼 수 있다. 윤통 측에서는 자신들의 집권이 자유주의와 국가주의의 동맹으로 가능했으며, 이준석은 대선 승리의 한 축인 자유주의 세력을 대표하는 정치인이라는 점을 인정해야 현재의 위기를 헤쳐갈 수 있다. 이번 8.15경축사에서 윤통이 자유라는 단어를 33번이나 외쳤다고 해서 결코 그가 국가주의자라는 사실이 부정되지는 않는다. 그는 국가주의를 자유주의로 숨기고 싶은, 위장된 자유주의자일 뿐이다.


 

셋째는 민주당의 정체성과 관련된 문제다. 이준석이 벌이는 전쟁에서 그저 반사이익이나 얻자는 태도로는 민주당의 미래가 암울해질 수밖에 없다. 정체성 전쟁은 곧 정치권 전체로 확대될 수밖에 없으며, 이 정체성 전쟁의 당당한 한 축으로 자신의 위치를 확고히 하려면 민주당의 정체성 자체가 분명해야 한다. 그런 점에서 진보정당이니 저소득층과 서민의 정당이니 하는, 낡은 계층/계급론에 입각한 기존의 정체성 프레임에서 벗어나려는 이재명의 문제 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그는 “내가 아는 바로는 고학력, 고소득자, 소위 부자라고 하는 분들은 우리 지지자가 더 많다. 저학력, 저소득층이 국민의 힘 지지가 많다. 부자를 배제할 필요가 없다. 민주주의를 넘어 공화주의로 (가자), 이런 얘기도 많다.”라면서 조심스럽게 공화주의를 언급한 바 있다.


그가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헌법 제1조)”라는 위대한 선언에 담긴, 임시정부 때부터 대한민국 정체성의 근간을 이루는 ‘공화’의 가치를 당당히 말할 수 있을 때, 민주당의 정체성도 분명해질 것이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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