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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까칠한 서생 Aug 13. 2022

인간은 어디까지 악해질 수 있을까

<루시퍼 이펙트>가 던지는 질문들


인간의 본성은 선한가, 악한가? 유사 이래 이만큼 많이 제기된 질문도 드믈 것이다. 아무도 명확한 답을 내놓지 않았다고 생각해서이기도 하겠지만 그만큼 인간은 선악의 갈림길에서 하나의 또는 한 번의 답으로 해결할 수 없는 무수히 많은 변수를 지닌 존재여서이기도 할 것이다. 필립 짐바르도의 <루시퍼 이펙트 Lucifer Effect> 이에 대한 하나의 답일 뿐이지만 제법 의미심장한 답이라 할 수 있다. 나는 이 책을 임은정 검사의 <계속 가보겠습니다>에서 알게 되었다. 임 검사는 이 책을 읽고 나서야 일부 특수부 검사들의 잔인한 토끼 몰이식 수사행태가 왜 버젓하게 벌어지는지를 알게 되었다고 한다.      


<루시퍼 이펙트>는 아무리 평범한 사람도 상황과 시스템이 갖춰지면 아무런 죄의식이 없이 악을 저지를 수 있다는 실험 결과를 소개하는 책이다. 이 책의 주된 내용은 워낙 유명해서 누구든 검색엔진에 '루시퍼 이펙트'나 '스탠퍼드 교도소 실험'을 치면 바로 알 수 있다. 가령 아래의 출판사 제공 소개문에는 굳이 책을 볼 필요가 없다고 느낄 수 있을 정도로, 핵심이 너무나 잘 요약되어 있다.     


『루시퍼 이펙트』는 평범한 학생들을 무작위로 수감자와 교도관의 역할로 나눈 다음, 낯선 환경과 새로운 역할에 적응하면서 어떤 심리 변화를 겪는가를 살펴보고자 했던 ‘스탠퍼드 교도소 실험(Stanford Prison Experiment)’으로 유명한 세계적인 심리학자 필립 짐바르도의 문제적 저작으로 스탠퍼드 모의 교도소 실험을 35년 만에 전면 공개하고 세밀하게 분석하여, 인간 본성의 어두운 측면과 악의 근원을 파헤치고 있는 책이다.

1971년 8월, 당시 38세의 젊은 심리학자였던 필립 짐바르도는 ‘반사회적 행동 연구’의 일환으로 모의 교도소 실험을 계획한다. 그러나 실험은 누구도 예상치 못한 방향으로 흘러갔다. 교도소 경험이 전혀 없었음에도 불구하고, 실험에 참가한 학생들은 첫날부터 마치 진짜 수감자와 교도관처럼 행동하기 시작했고 특히 교도관 역할의 학생들은 누가 시키지도 않았는데 수감자들을 가학적으로 대했고, 그 방법도 ‘창의적’으로 악랄하게 발전시켰다. 시간이 지날수록 교도관의 가학 행위가 극에 달하고, 수감자들의 정신쇠약 증세가 심해져 방면되는 사람이 속출하자 결국 실험은 1주일도 안 되어 중단되었다. 저자는 인간은 누구나 자신의 의지와는 달리 순식간에 악의 나락으로 빠질 수 있음을 상기시키며, 인간의 존엄성을 유지하기 위해 경계를 늦추지 말 것을 강조하고 있다.     


그래도 그 상세한 실험과정과 풍부한 함의를 오랫동안 내 것으로 간직하려면 책을 직접 읽어야 한다는 생각을 고수하며, 7백 쪽이 넘는 그 벽돌 책을 펼쳐 들었다. 그런데 거의 1백 쪽을 몰입해서 흥미롭게 읽던 중 돌발변수가 생겼다. 잠시 휴식을 취할 겸 유튜브를 뒤지다가 우연히 보게 된 영상에서 그 실험의 조작 의혹이 제기되었음을 알게 된 것이다. 진위 여부는 알 수 없으나, 허탈해지기도 했고 검색만으로도 책의 주요 내용을 충분히 알 수 있겠다 싶어 책 읽기를 중단했다.     


하지만 조작 의혹에도 불구하고 내가 읽은 일부분과 각종 서평 등 검색을 통해 알게 된 내용을 종합해보면, 이 책은 선악에 대한 중요한 생각거리들을 제공한다. 인간의 본성은 선이나 악 중 하나가 아니라는 것, 인간은 누구나 선과 악의 특성을 모두 지니고 있지만 그것이 어떻게 발현되는가는 상황과 시스템에 따라 결정된다는 것, 악행의 원인을 알려면 인간의 본성보다는 환경에, 궁극적으로는 권력관계가 작동되는 시스템에 주목해야 한다는 것, 인간에게는 한나 아렌트가 말한 ‘악의 평범성’에 비견되는 ‘성스러움의 평범성’도 발견된다는 것 등이다.     


<루시퍼 이펙트>를 영화화 한 '익스페리먼트'의 한 장면


보통 사람에게 안전장치가 없는 권력이 주어지면 아무런 죄책감이나 죄의식 없이 악이 행사될 수 있다는 사실은 동서양의 역사에서 수없이 확인된다. 현대만 살펴봐도 나치의 홀로코스트, 크메르루주 군의 캄보디아인 대학살, 미군의 아프가니스탄 칸타하르 대학살이 있었다. 우리나라에서도 여순사건 당시 이승만 정부 군경에 의한  민간인 학살, 한국전쟁 중에 일어난 이승만 정부 고위관리들에 의한 국민방위군 사건, 광주 민주화운동 시 전두환 신군부의 계엄군에 의한 민간인 학살 등이 있었다.     

 

그런데 실은 짐바르도의 ‘루시퍼 이펙트’라는 개념이 그리 새로운 것은 아니다. 그는 다만 실험을 통해 이를 확인하헸을 뿐이다. 지나친 의욕에 따른 무리한 실험으로 조작 의혹까지 받고 있지만 말이다. 앞에서 언급한 한나 아렌트의 ‘악의 평범성’도 '루시퍼 이펙트'의 선배이거니와, 이들보다 훨씬 거슬러 올라가서 기원전 5세기 무렵 중국 춘추전국시대 맹자의 성선설과 순자의 성악설도 알고 보면 루시퍼 이펙트의 대선배 격이다. 많은 사람이 맹자의 성선설과 순자의 성악설을 오해하고 있지만, 이들의 선악관은 짐바르도나 한나 아렌트의 인식 이상으로 라운 성취에 도달했음을 기억해야 한다. 다음 인용문을 보자.      


맹자의 성선설이나 순자의 성악설 모두, 인간이 선하거나 악한 본성이 그저 타고났다고 주장하지는 않았다. 다만 맹자는 인간이 선하게 살아갈 수 있는 선한 실마리인 사단(四端)을 타고났다고 했을 뿐이다. 그런데 세상 사람들 가운데 선하지 않게 살아가는 사람들이 있는 이유는, 그렇듯 타고난 선한 실마리를 잃어버리거나 놓쳐버렸기 때문이라 했다. 그러므로 학습을 통해 타고난 착한 실마리를 잘 넓히고 확충해야만, 인간이 착하게 살아갈 수 있다는 게 맹자의 가르침이다.

순자의 성악설도 인간 모두가 나면서부터 무조건 본성이 악하다고 주장하지 않는다. 악한 본능을 타고난 것이 아니라 인간을 악하게 만드는 주변 환경 때문에 인간이 악하게 될 뿐이라 했다. 그러므로 인간을 악하게 만드는 주변 조건들을 극복할 수 있도록, 스스로 열심히 학습해 선한 삶을 살아가야 한다고 한 것이 성악설의 요점이다.     

-문승용, “성선설·성악설…善·惡 본성, 모두 타고나지 않아”

https://www.junggi.co.kr/article/articleView.html?no=24064     


이제, 처음 질문으로 다시 돌아가 보자. 사람의 본성은 선한가, 악한가? 사람은 선과 악의 본성을 모두  소유하고 있으므로 선할 수도 있고 악할 수도 있다. 다만 악한 본성이 극대화되지 않기 위해서는 먼저 권력이 일방적으로 작동되지 않도록 견제와 균형의 시스템을 갖춘 다음, 선한 본성이 발현될 수 있는 환경을 갖춰야 한다. 이것이 지금 내가 말할 수 있는 답이다.


그런데 이렇게 말하고 나니 너무 뻔해서 하나마나한 얘기 같이 들린다. 그런 시스템과 환경을 결정할 권력을 가진 세력이 악을 극대화하는 세력과 동일하다면 끝없는 도돌이표의 악순환에 빠져들기 때문이다. 하지만 맹자도 순자도 아렌트도 짐바르도도 어차피 거기까지 아니었나? 아 참, 마키아벨리는 좀 달랐던가?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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