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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까칠한 서생 Sep 10. 2022

미디어라는 이름의 마취제

<소비 자본주의를 넘어서> 역자 서문

1.

얼마 전까지만 해도 우리 사회에는 ‘인문학 열풍’이 거세게 불었다. 제도권에서 퇴출당한 인문학이 제도권 밖에서 맹위를 떨치는 이상 현상이었다. 인문학이라고 이름이 붙은 서적과 강좌가 인기를 끌었고, 인문학 인기강사들은 기업 임원들과 조찬 모임을 갖거나 특강을 준비하느라 바삐 움직였다. 인문학 고전을 기업경영에 써먹도록 가공된 책들이 늘 베스트셀러 목록 상위권을 차지했다. 하지만 한편에서는 인문학의 유행에 대해, 비판정신과 객관적 성찰이 빠진 채 처세와 실용의 도구로만 인문학이 이용되고 있다는 비판의 목소리도 만만찮게 들려왔다.


광고 커뮤니케이션 분야에서 인문학 열풍에 한몫을 한 책이 바로 <인문학으로 광고하다>이다. 광고 제작자인 저자가 다양한 독서와 시청각 경험을 통해 얻은 인문학적 지식과 정보광고를 만드는 데 어떻게 ‘창의적으로’ 용해 왔는지를 보여주는 책이다. 그렇게 해서 성공한 광고 사례들을 통해 저자는 이 세상과 사람들이 조금이라도 더 따뜻하고 진실해지기를 바란다고 했다. 하지만 광고라는 울타리 안에서 이룩한 많은 성과와는 무관하게, 이 책은 광고의 사회문화적 맥락에 대한 비판적 이해와 객관적 성찰 없이 인문학을 다만 실용적 도구로 전락시켰다는 지적을 피하기 어렵다.


2.

인문학의 본령은 비판적으로 사유하기에 있고, 비판적 사유란 자명하다고 생각되는 것들에 대해 ‘왜’라고 묻는 일이며, 따라서 ‘비판적 저항’이야말로 인문학 본연의 임무라고 많은 인문학자들이 말한다. 가령 강남순 교수는 “인문학은 나, 타자, 세계에 대한 근원적인 물음들과 마주하고 씨름하는 치열한 행위이며, 상투성에 저항하고 자명성에 의문을 제기함으로써 존재가치가 부각된다”라고 지적한다. 그렇지 않고 인문학을 단순한 문화활동의 영역으로만 이해할 때, 그 인문학은 탈정치화와 탈역사화의 길을 걷게 된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비판적 저항으로서의 인문학이라는 시각에서 광고를 논하려면, 과연 어떤 상투성에 저항하고 어떤 자명성에 의문을 던져야 할까? 그리고 이를 통해 정의, 평화, 자유 등 인류 보편의 가치를 어떻게 더 확장하고 실천할 수 있을까?



3.

저스틴 루이스의 역저 <소비자본주의를 넘어서>가 바로 그런 책이다. 곧 ‘비판적 저항으로서의 인문학’이라는 관점에서, 광고와 뉴스 저널리즘을 포함한 미디어에 대해 날카로운 메스를 과감히 들이댐으로써, 위 질문에 대해 의미심장한 해법을 제시하고 있다. 이 책에 따르면, 화석연료에 의존해 온 소비자본주의는 우리에게 유례없는 풍요와 편리를 가져다주었지만, 자연 생태계의 유한한 특성 때문에 더는 인류의 발전과 행복을 지속 가능하게 보장해주지 못한다. 하지만 소비자본주의는 인류의 진보에 관한 별도의 모델을 상상하기 어렵게 하는 문화적 체계를 만들어왔기 때문에 경제적, 사회적, 환경적 한계에도 불구하고 계속 유지·발전되고 있다고 보고 있다.


이 책은 그 주된 원인을 미디어를 통해 이루어지는 광고와 뉴스 등 문화·정보산업에서 찾고 있다. 광고는 소비 제도의 제약 아래에서 작동하며, 뉴스 역시 정보의 비즈니스 모델에 의해 형성되어 왔으므로 광고와 뉴스 모두 우리의 비판정신을 제약하고 있음을 밝히고, 새로운 대안을 모색하고 있다. 특히 뉴스의 ‘새로움’이란 단순히 최근의 것이 아니라 새로운 생각이나 새로운 이해 형식이라고 규정하면서 ‘일회용 상품’으로 전락한 뉴스를 질책하고 있는 내용, 그리고 소비자본주의의 핵심 교리로 ‘계획적 진부화(planned obsolescence)’를 지목하면서 소비자를 상품 교체의 빠른 순환 속으로 끌어들이는 광고를 비판하고 있는 내용은 저자가 각별히 공을 들여 치밀하게 논증하고 있는 주제다.


이 책은 소비자본주의의 유지와 발전을 전제하거나 답습하고 있는 기존의 광고, 마케팅, 브랜딩 및 미디어 이론을 가볍게 넘어서고 있을 뿐만 아니라, 환경문제를 전면에 내세운다는 점에서 정치경제학과 이데올로기 론에 기대고 있는 비판 커뮤니케이션 이론의 한계도 거뜬히 극복하고 있다. 또한 2008년 이후 세계적 금융공황과 점거운동(Occupy Movement) 등 소비자본주의 위기 및 저항의 현상을 반영하는 등 실천의 과제도 던져주고 있으며, 광고 수량의 제한, 프로그램 제작비에 대한 정확한 평가, 새로운 회계 형식의 도입 등 구체적인 대안도 제시하고 있다. 다만 최근 급속도로 팽창한 SNS 등 최신 스마트 미디어를 적극적으로 수용하지 못한 점은 아쉬움으로 남는다.


4.

이 글의 앞부분에서 꺼낸 <인문학으로 광고하다>로 돌아가 보자. 만약 <소비자본주의를 넘어서>의 저자 저스틴 루이스가 <인문학으로 광고하다>를 읽었다면 어떤 평가를 내렸을까? 정확히 알 길은 없지만, 다음과 같은 본문의 일부에서 그 단서를 찾을 수 있을 것 같다.


“그 자체만을 놓고 보면 광고 하나하나에는 아무 잘못이 없다. 또한 너무나 많은 정력과 재능을 투입하여 만들기 때문에, 재치 넘치고 매력적이며 기발하고 구경거리가 될 만하다. 하지만 일단 광고를 집합적 존재로 바라볼 경우, 광고는 은근히 정치적이다. (...) 행복, 성공, 건강, 지위, 인기 등은 소비의 세계라는 하나의 장소에서만 생겨난다고 광고는 말한다. 반면 상품이 생산되는 비참한 근로 조건부터 현재의 소비 수준이 환경에 끼친 결과에 이르기까지, 소비의 부정적인 결과에 대해서는 전혀 말해주지 않는다.”

-<소비자본주의를 넘어서> 9장 중에서-


<인문학으로 광고하다>는 인문학적 자료를 통해 행복, 성공, 건강, 지위, 인기를 유지하거나 확장하는 방법을 알려 줬을지는 몰라도, 인문학의 본령인 ‘비판적 사유’를 발휘해서 소비의 부정적인 결과에 대해서는 결코 말해주지 않았다.


<인문학으로 광고하다>는 광고가 좋은 삶이 가능하다고 말하지만 <소비자본주의를 넘어서>는 광고가 “삶에서 모든 좋은 것들과 모든 문제에 대한 해결책이 물질을 소비하는 일과 관련된다는 생각을 부추긴다.”라고 지적한다. 또한 <인문학으로 광고하다>는 광고를 통해 행복하고 의미 있는 삶을 누릴 수 있다고 말하지만, <소비자본주의를 넘어서>는 “행복과 의미를 추구하기 위해 우리가 이용할 수 있는 시간은 한정되어 있다.”라고 경고한다. 우리의 상상력이 건강하게 살아있다면 어느 쪽이 옳은지는 분명하다.**


저스틴 루이스(엄창호 옮김), <소비 자본주의를 넘어서>, 커뮤니케이션북스(2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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