굥이 한 대학 졸업식에 가서 현란한 유체이탈 화법을 구사했다. 기득권 카르텔을 깨고 자유롭고 공정한 시스템을 만들자나 뭐라나... 그렇게 헛소리를 지껄이는 동안 아무 일도 벌어지지 않았다고 한다. 아무 말도 하지 않으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는 말은 들어봤어도, 그런 험한 말을 했는데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니. 거기 서식한다는 독수리는 뭐 하나, 고 대가빡을 팍팍 쪼아주지 않고.
내가 다닌 그 대학을 원래부터 난 별로 좋아하지 않았다. 내가 그 대학을 다니는 내내 자리를 지킨 총장 안세희가 김구 암살범 안두희의 동생이라는 점도 씁쓸한 기억으로 남아있는 데다, 굥의 아버지가 내가 소속되었던 단과대학의 교수였음을 안 다음부터는 마음의 거리가 더 멀어졌다. 거슬러 올라가면, 희대의 악녀 민비의 하사금으로 시작된 부끄러운 역사도 있다. 나는 그 대학과 그저 몇 년 동안 캠퍼스 안에서 돈을 내고 시설물과 관련자를 활용한 정도로 인연을 맺었을 뿐이다. 그 대학은 강의를 개설했고 나는 수강신청을 해서 들었으며, 그렇게 학점을 받았고 학점이 쌓여 졸업 요건을 충족해서 졸업장을 받았을 뿐이다. 내가 강의를 듣거나 대학생활을 하는 과정에서 생긴 개인적 고민과 고충을 그 대학의 행정시스템이나 그 대학에서 봉급을 받는 인물이 해결해준 기억이 없다. 그 학교와 나는 공식적인 관계의 범위를 절대로 벗어나지 않았다.
졸업 후에 그 대학의 후광효과를 누리지 않았냐고? 그건 알 수 없는 일이다. 하지만 여태까지 내가 거쳐온 직장의 자리가 그 대학 출신이 아니었다면 차지할 수 없었다고 말할 만큼 대단한 적은 없었다. 오히려 그 대학 출신이기 때문에 불이익을 받은 기억도 많다. 역차별이라면 역차별이다. 그 대학 선배인 상사와의 갈등 때문에 사표를 던지고 나온 적도 있다. 직장 내에서나 사회생활을 하면서 만난 그 대학 출신이라는 사람들과도 깊은 인연을 맺은 적은 거의 없다. 오히려 그들 중에는 동문 이전에 한 인간으로서 최소한의 기대도 채워주지 못한 사람도 있다.
그 대학과 동문들에 대한 실망 때문에 나는 직장생활 초기부터 출신대학을 자랑하기는커녕 알리는 것도 꺼렸다. 한 번은 이런 일이 있었다. 어느 직장 선배와 둘만 있을 때 이런 대화가 오갔다. "엄 대리, 어느 학교 나왔지?" "대충 나왔어요." "그러니까 어디?" "대충 나왔다니까요." "그러니까 어디냐고?" 그는 집요했다. 나는 거짓말을 할 수는 없어서 그 대학 이름을 댔다. 그는 또 물었다. "무슨 과?" "대충 나왔어요." "대충? 그럼 신학과?" "암튼 대충 나왔다니까요." "그 대학 신학과구나." "..." 더 재미있는 일은 그다음에 일어났다. 그는 다른 사람으로부터 내가 나온 학과를 들었다며 왜 그렇다고 진작에 말하지 않았냐고 했다. 그리고는 나를 이전에 비해 더 정중하게 대했다. 학교뿐만 아니라 학과까지 서열화하는 태도가 몸에 밴 사람이었다. 물론 나는 그런 사람에게 그러지 말라고 요구한 적은 없다.
내가 가끔 지인들에게 던지는 퀴즈가 있다. 봉준호, 백종원, 나영석, 김영하, 김미경... 굥이 다녀간 그 대학 출신으로 나름 자기 분야에서 한 가닥 한다는 것 말고 이들의 공통점은? 답은 자신의 전공학과와는 전혀 무관한 분야에서 일가를 이루었다는 점. (이들의 출신학과가 궁금하면 검색해 보시길.) 이 말인즉슨, 이들은 그 대학에서 공식적으로 가르치는 걸 외면하고 딴짓을 해서 성공했단 야그다. 한 마디로 이들은 그 대학으로부터 받은 건 없고 다 자기들이 잘나서 자기들의 실력과 노력으로 잘 되었던 거다.
그래도 그 대학 졸업생인 이들 중 한 사람에게 졸업식 축사를 부탁했다면 난 싫어하는 마음을 조금은 누그러뜨렸을 것이다. 하지만 그 대학 측이 그렇게 하지 못한 건 자기네가 해준 게 없다는 걸 스스로 알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그럼 굥은? 앞으로 해주기를 기대해서겠지. 아니, 축사를 하겠다는 제안을 거절하면 조국 일가나 이재명 대표처럼 도륙당할까 봐 두려워서였겠지. 이해는 하지만 적어도 그건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는 성경구절을 교훈으로 내세운 대학이 취할 태도는 아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