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홍규 교수가 쓴 카프카 평전, 『카프카, 권력과 싸우다』를 읽고 있다. 주말에는 가벼운 책을 읽는다며 손에 든 책인데, 문체는 가볍지만 내용은 깊고 넓다. 페이지를 넘길수록 카프카와 박홍규 이렇게 두 인간을 동시에 만나는 느낌이다. 두 사람은 지적 수준이나 사유의 깊이 면에서 내가 범접하기 어려운 인물이지만, 외형적으로는 나하고 많이 닮았다. 카프카와는 정체성 혼란과 외톨이로 자란 가정 및 교육환경 그리고 전공 및 직업과 내면의 욕구 사이에 놓인 거대한 간극이, 박홍규와는 경계를 허무는 다빈치 형의 지적 탐구심이.
여기서 카프카의 정체성 혼란은 유대인, 체코인, 독일인 사이에서 그 어느 집단에도 소속되지 못한 근본적인 것인데 비해, 나의 정체성 혼란은 어린 시절과 대학시절 그리고 직장생활 중에 몇 년씩 있었으나 해소가 가능했던 것이니만큼 카프카의 경우와 많이 다르다. 또 결과적으로 그들은 크게 뭔가를 이루었고 나는 한낱 골방 서생일뿐이라는 점도 큰 차이겠다. ㅎㅎ(멋쩍은 웃음)
카프카와 관련해서 대중적으로 잘 알려진 글귀 중 하나가 “책은 도끼다”이다. 그가 김나지움과 프라하대학 법학부를 함께 다닌 동창생으로 한때 절친이었던 폴라크에게 보낸 편지에 들어있다고 한다. 독서에 관한 카프카의 철학을 알기 위해 전체 맥락을 알 수 있도록 인용한다.
“나는 오로지 꽉 물거나 쿡쿡 찌르는 책만을 읽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우리가 읽는 책이 단 한 주먹으로 정수리를 갈겨 우리를 각성시키지 않는다면 도대체 무엇 때문에 우리가 책을 읽겠는가? 자네 말대로 책이 없어도 마찬가지로 행복하게 해주도록? 맙소사. 책을 읽어 행복할 수 있다면 책이 없어도 마찬가지로 행복할 것이다. 그리고 우리를 행복하게 해주는 것이 책이라면 아쉬운 대로 우리 자신이 쓸 수도 있을 것이다. 그렇지만 우리가 필요로 하는 책이란 우리를 몹시 공통스럽게 해주는 불행처럼, 우리 자신보다 더 사랑했던 사람의 죽음처럼, 우리가 모든 사람을 떠나 인적 없는 숲 속으로 추방당한 것처럼, 자살처럼, 우리에게 다가오는 책이다. 한 권의 책은 우리들 내면의 얼어붙은 바다를 깨는 도끼이어야만 한다.”
전체 맥락과 함께 살펴보니, 이 단락 전체가 하나의 도끼 같다. 박홍규 교수도 이 대목을 ‘가장’ 좋아한다며 이렇게 말한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카프카의 이 말이, 20대 초의 청년시절에 나온 점은 하나의 경이다. 나는 독서에 대해, 글쓰기에 대해 위 말보다 절실하고 진실된 소리를 들어본 적이 없다.” 카프카가 한 말 중에서 ‘가장’ 좋아한다는 건지, 독서나 글쓰기에 관한 말 중에서 ‘가장’ 좋다는 건지는 불분명하다.
어쨌든 그들은 아마도 20대부터, 어쩌면 10대부터 그런 도끼 같은 책들을 여러 권 접했을 것이다. 나는 어땠나? 내 삶에서 나의 얼어붙은 내면을 깬 도끼가 몇 자루나 있었을까, 아니 있기나 했나? 내면을 깼다고 생각했지만 겉만 깬 책, 내면을 깨긴 깼으나 핵심을 비껴간 책이 몇 권 기억나긴 한다. ㅎㅎ(아쉬운 웃음) **